1996.9 | [문화저널]
세계화의 허와 실
문화저널(2004-02-12 12:24:49)
김은정 지방정부의 문화정책을 검증해 나가는 그런 기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기구가 없기 때문에 이런 시행착오가 자꾸 일어나는 것인데 일년동안의 시행착오가 재연되지 않으란 법 없지요. 제가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도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세계서예대전이라는 행사가 있습니다. 그 행사는 처음부터 도에서 기획한 사업은 아니었습니다. 이 사업을 처음 발의했던 사람들은 창암 이삼만이 전라북도 서예의 뿌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순수한 서예인들 이었거든요. 물론 의도와는 달리 기획이 다소 무리스럽기는 했지만 저는 이 행사의 의미가 참 중요하다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 사업이 동계U대회 기념사업에서 탈락하고 나서 이번에 도에서 세계서예대전을 발표한 겁니다. 앞에 ‘세계’자를 붙이면 세계화가 되는 것입니까. 창암서예대전이야말로 전라북도 고유의 것이면서 전북을 세계화하는 그런 바탕이 아닐까요?
김용택 세계화의 구호에 문제가 있어요.
김은정 도가 내세운 문화사업의 프로그램이 전부 ‘세계’예요. 지금 현재 전라북도에서 하고 있는 비슷한 성향의 국제적인 행사가 두 개가 있어요. 하나는 오궁리 미술촌의 국제조각심포지움이고 또 하나는 한국의 흙·불전이에요. 그런데 ‘한국의 흙·불전’은 국제라는 말만 안붙였지 그것도 국제규모의 성격이에요. 10여개 국가에서 30여명의 외국작가들과 124명의 한국작가들이 참여했지요. 그 가마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무척 감동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행사가 처음부터 대규모로 준비되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하다보니까 주관측이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된 것이지요. 그 외국작가들이 한국의 흙을 가지고 작품 만들기가 무척 힘들다고 하더군요. 흙의 재질이 다르기 때문인데 그 사람들은 직접 한국의 흙을 만지고 작업하면서 한국의 흙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바로 이런 것이 그 지역의 독창적인 문화를 알리는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유기하 조금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도정 전반에도 세계화가 잘못 가고 있는 사례가 많이 발견되고 있어요. 예컨대 해외 마케팅을 떠났는데 수출계약을 따온 것이 여행 경비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많고, 이런 점들은 문제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첫술에 배불기를 기대할 수야 있겠습니까?
김은정 오궁이 미술촌의 행사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어요. 광주비엔날레에는 사실 실패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행사에는 중심을 추려나가는 하나의 과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오궁리 행사의 경우는 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불과 몇 개월만에 세계 조각 심포지움을 한다는 거예요. 웬만한 작가들의 경우 보톤 일년이년은 이미 스케줄이 잡혀있어요. 그렇게 본다면 이 행사는 처음부터 졸속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적어도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한 행사가 이런 그릇으로 담겨져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문화기반사업의 실패
윤덕향 문화재 이야기를 한 번 해 볼까요. 소위 문화재쪽에서 우리나라 전국을 나누는 문화권 개발계획이라는게 있어요. 그 자체가 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문화권 개발계획중에 포함이 안된데가 전라북도하고 강원도 두 군데 뿐이에요. 전라북도가 포함된 곳ㅇㄴ 익산 정확하게 울포면과 금마밖에 없어요. 전북에 문화는 익산만 있고 나머지 지역은 문화가 없다는 얘기거든요. 이 문화재와 관련된 경우 예산은 중앙정부로부터 오거든요. 그러니까 실제 중앙정부 예산을 따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한데 그런 노력이 전혀 없어요. 그냥 백제문화속에포함되어 가지고 조금밖에 않된다고 아우성은 치지만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이 없습니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문화재 정책의 경우 인식이 전혀 바뀌지 않았지요. 기왕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또 아까 문화공간 말씀하셨습니다. 전북에서 문화예술인들중에 예산적고 공간 부족하다고 말씀 안하신 분 안계실 겁니다. 그렇지만 서울과 광역시 빼고 전라북도만큼 문화공간 넓은 데가 없고 문화행사가 전라북도 만큼 많이 이루어지는데가 없어요. 통계 자료에 그렇게 나타납니다.
박병도 제대로 된 공간이 있느냐가 중요하죠. 양보다 질을 얘기했을 때 말입니다.
윤덕향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그점입니다. 그러니까 공간은 분명히 많이 있는데, 실제 쓸 수 있는 공간은 있는가 하는 점이지요. 그 다음에 예산 말씀하셨는데 예산의 경우 문화쪽은 모르겠습니다만 문화재쪽의 경우 다른 시도와 비교했을때 결코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쓰는가 그리고 어떻게 쓰는가 하는 점인데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얼마간은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안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문화행정에서 결과만 있지 설득과정이 없는 겁니다.
김용택 제가 궁금하게 생각한 것이 있어요. 그게 예를 들어 어떤 단체에 지방정부가 지원을 한다 그러면 그것을 누구하고 상의를 해서 지원을 하는지, 정말 이러이러한 행사가 우리에게 꼭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지 누구에겐가는 물어봐야 할 것 아닙니까. 전문적인 자문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박병도 민선 지방정부가 들어서면서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 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과를 떠나서 민선 이전의 시대와는 다른 차별성이 분명히 발생하는데, 그것은 아마 정책마인드의 구체적 접근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책 브레인의 문화적 경험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러나 입안된 정책의 구체성 만큼이나 실질적인 행위가 진행되고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이벤트 신드롬에 걸려 있는 문화운영은 한시적일 뿐입니다. 이벤트가 극복해 줄 부분은 결과에 대한 홍보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정책이 먼 안목을 대비하는 기반 사업에 눈을 돌릴 때, 지원정책 또한 사고의 대전환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김은정 문화정책을 점검하고 감시하려면 그런 모임이나 기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나마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기구가 바로 도의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도의회를 보십시오. 문화예술정책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누가 견제를 하고 누가 감시를 합니까. 그런 역할을 거의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도의회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런 역할을 하는 민간 기구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환경이나 경제를 지키는 단체가 있듯이 문화정책이나 행정도 역시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지요.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 이를테면 전문인들이나 문화를 사랑하고 건강하게 지켜갈 수 있는 사람들의 단체를 만들어서 도에서 하는 문화행정을 꼼꼼히 감시하고 비평을 했으면 합니다. 지방정부나 지역언론이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이런 모임이 시어머니 노릇도 하고 감시도 제대로 한다면 전북의 문환ㄴ 분명히 지금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김용택 좋은 의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사실 문화저널 자체도 이제는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해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에요. 지금 김은정 기자 말씀대로 정말 사심이 없이 전북도의 문화 한 가지라도 제대로 감시하고 점검해주고, 입안자들에게 바른 소리가 들어가서 정책이 바르게 되서 우리들이 정말 좋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장치가 필요하지요.
전북학에 거는 기대
이종민 이제 지금까지의 좌담을 마무리하면서 도에서 추진하는 전북학이랄지 향토축제, 동계 U대회 10대 이벤트 등등 중요한 몇가지 문제들을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전북학의 경우 일종의 구호화된 듯한 느낌이 있는데요.
윤덕향 우선 기획이 나와있는 상태지만 아직 집필을 하지 않은 조건에서 뭐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저 자신이 기획단계에 참여를 했었습니다만 이번 『전북학』집필 작업에서 중요하게 의미를 두는 것은 현재 도에서 갖고 있는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관광의 경우 전북을 찾은 관광객의 수가 얼마고 수입이 얼마인지 통계청 자료에 전라북도만 자료가 빠져 있어요. 그런데 도청에는 있을 거거든요. 그리고 전북에서 일년에 문화예술 행사나 공연이 몇건이고 또 사람들이 얼마나 왔고 이런 것도 통계 자체가 거의 똑같아요. 그리고 제가 아는 분야에서 문화재의 경우도 90년부터 하나도 안 늘어난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분명히 우리가 지방문화재로 지정을 해서 몇건씩 매년 늘었는데요. 그래서 저는 전북학 작업이 그런 아쉬운 부분을 보완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상품화, 대형이벤트의 결과는
이종민 지금까지 이야기는 주로 지역문화의 객관적인 조건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그동안 자생적으로 성장해왔던 문화단체들이 이같은 변화속에서 혹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걱정도 있습니다. 특히 이제 그것과 관련해서 문화의 상품화 또는 세계화가 선언되면서 문화행사들이 대형화, 이벤트화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런식의 대형화에 지역문화가 휩쓸려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김용택 나는 계속해서 문화가 상품화 된다는 자체가 자꾸 마음에 걸려요. 물론 그것이 현실이니까 고민이 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단체장들이 자치시대를 맞으면서 온통 문화까지도 경제논리도 풀어서 보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박병도 문화라는 것은 정착이 되어 있어 가지고 독특한 지역문화를 추구하자는 것 아닙니까. 지역특성에 맞는 자연스러운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 찾아오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상품화라는 이름으로 지금 도마에 올려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설명되어지기 나름아닌가 생각해요. 말하자면 우리 것으로 우리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잘 개발시켜놓고 있을 때 상품화도 가능하겠지요. 지금은 어쩌면 그 내수를 위해 문화상품을 개발해가는 과정에 있지 않은가 싶어요. 그 과정이 험난하지요. 다만 그 과정에서 상품화라는 부분이 너무 앞서있기 때문에 상황이 어려워져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송만규 문화관광국이 설치되면서 문화를 특별화시키는 것을 저는 예술인으로서 반가와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문화관광하면서 상품화시키지 않겠는가, 그런게 혹시라도 부여되면 예술을 단지 이렇게 경제논리로만 바라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우리가 전주를 두고 말로는 천년고도 운운하지만 고도로서 살아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건강한 개발이나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요. 그래서 정말 우리가 지역을 드러내고 전북지역이 특별하게 안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이미지화 시키면서 부각시켜낼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지자체 이후에 우리 지역 독자성을 유지하고 지역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원도연 저는 대형화, 이벤트화, 상품화, 세계화 이런 것들이 하나의 맥락이라고 보는데요. 이런 문제들이 궁긍적으로는 그 자체로 나쁘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그런 문제가 사실 우리 모두에게 감성적으로 익숙치 않은 면이 분명히 있지요. 그런데 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문화정책의 핵심이 세계화의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하나가 빠져있다고 생각해요. 아까 이 PD 말씀대로 〈쥬라기공원〉한편으로 현대자동차 150만대몫을 했다는 이야기가 한동안 화두가 되어 왔는데 사실 한국적인 조건에서 보면 지금〈쥬라기공원〉한편이 만들어지기에는 문화적인 토양이 단단하게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문화적인 토양이 단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상품화로 가고 세계화, 대형화로 가는 것이 문제가 있지요. 전북의 경우 요즘 무대를 보면 한결같이 대형극의 추세로 가는데 소극장이 활성화되고 그속에서 얻어진 성과들로 대형공연이 올라가는 것과 대형극을 위해서 소극장 무대를 포기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손익계산에 분명한 차이가 있지요. 지금 조금 힘들어도 작은 무대가 튼실해야 대형화도 가능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