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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9 | [문화저널]
거무줄에 걸린 나비의 꿈 「나비의 꿈」(윤정모, 한길사, 1996)
글/ 강도은 모스크바 국립대학 철학과 대학원 (2004-02-12 12:24:20)
칠월과 팔월 두 달 동안 돈 버는 일을 뺀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책을 읽었다. 무슨 거창한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였고 그냥 남들처럼 피서를 갈 형편이 못됐고 다른 특별한 즐거운을 찾을 능력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거의 일년 만에 서점이나 책 대여점에 붙박혀서 혹은 딸이 잠든 뒤 더위를 쫓으며 새벽까지 그간 새로 나온 한국말 소설과 시들을 이것저것 들춰보는 재미는, 돈도 별로 들지 않으면서 더위도 잊게 해주는 나름의 피서법이었다. 그러다가 간혹 근사한 소설이나 시집을 발견할 때의 기쁨은 시원한 소나기 맛에 비할 수 있을까? 우선 눈에 띄는 것으론 신세대라 불리는 작가들의 빛나는(?)활약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빛은 그다지 내가 느끼는 더위를 잊게 만들어 주질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은 현란한 네온사인처럼 더위를 더욱 그악스럽게 부채질했고 애써 눌러 온 내 안의 우울을 잡아 울리려는 듯해 때로 몹시 언짢기도 했다.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는 우연한 사건들의 뻔한 나열. 소비 만능시대의 찰나적이고 일회적인 사랑(섹스)에 대한 지나친 묘사와 집착, 그 인물을 그 인물이게끔 해주는 상황(내면적이든 외면적이든)에 대한 철저한 무시, 빈곤한 세계관을 감추려는 안감힘처럼 보이는 여러 상징과 은유와 감상들...... 언어와 수사법이 훨씬 정교해지고 화려해졌다 해도 내겐 , 그 안의 내용물이 플라스틱 포장에 담긴 인스턴트 음식처럼 쉽게 사고 쉽게 버릴 수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와중에 읽은 윤정모의「나비의 꿈」(한길사)은 좀 남다른 독서 경험이었다. 나 역시 문화저널 편집장의 추천이 아니였다면 올 여름 이 책을 읽을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우선 이 책은 분단 때문에 비극적 삶을 살다간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에 대한 ‘전기체소설’인데다가 두 권짜리(!)장편이잖는가(긴 호흡의 장편은 아무래도 겨울밤에 읽는게 낫다는 내 나름의 편견!) 그렇지만 ‘너무 좋은소설’이라 평한 어느 시인의 말을 믿어보기로하고 무작정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두권을 다읽어 내려가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역시 소설은 쉽게 읽어야 해!) 다 읽고 났을 때는 8.15광복절 즈음이었고 ‘통일 대축전’인가 뭔가 때문에 한총련과 경찰과의 전쟁 같은 싸움과 덕분에 신바람난 언론들의 널뛰기가 한창이었다. 편가르기와 헐뜯기의 여전함! 우리에게 ‘통일’은 대체 무엇일까. 반세기가 가까워오도록 한반도를 댕강 분질러 놓은 이데올로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이념과 정치의 틈바구니에 끼여 피흘리며 죽어 간 이들과 여전히 피흘리며 고통 받는 이들은? 머리가 몹시 무거워지며 가슴이 답답해 왔다. 그러나 그 무거움과 답답함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네세우며 쓰여진 작품들을 읽을 때와는 영판 다른 감정이었다. 윤정모의 3년 간에 걸친 치밀한 취재와 세심하고 서정어린 필치로 쓰여진 「나비의 꿈」은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동백림 사건으 피해자라고만 알려진 윤이상을, 꿈꾸며 고뇌하고 노력하며 고통받는 ‘인간 윤이상’으로 생생히 살아 나게 만들었다. 새삼 소설이란 장르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도 되었다. 또한 도를 넘는다 싶은 지나친 미화에 대한 경계도 함께. 먼저 윤이상하면 떠오르는 것은 위대한 한 예술가의 모습이다. 그는 <류퉁의 꿈>, <나비의 미망인>, <심청의 땅 나의 조국>등의 많은 걸작을 남겼다. 유감스럽게도 음악의 문외한인 나는 그의 음악을 전혀 모른다. 그러나 그이 음악세계는 노장사상에 바탕한 동양정신이고 전위적인 세계로 표현한 것으로 소설 속에서 매우 잘 그려지고 있다.(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매우 흥미롭게 읽을 부분들이 많다) 다른 하나는 양심적인 민족 통일 운동가 윤이상의 모습이다. 그가 쓴 작품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달리 그는 죽을 때까지 민족 통일과 민주화에 강한 열망과 애정을 품어 온 사람이다. 왜 그랬을까? 그 때문에 그토록 커다란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된 , 그는 유명한 동백림 사건(1967)의 주동자로 찍혀 강제로 납치-고문-투옥-자살미수-사형선고-무기감형-석방 등의 끔찍한 수모. 그 후 범민련과의 관계, 남북한 범민족 음악회 개최 시도와 좌절, 생전 북한 김일성의 존경을 받았던 윤이상의 모습 등이 「나비의 꿈」에선 비교적 생생히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신념에 찬 투사는 아니었다. 적어도 소설 속에서 윤이상은 고향 통영이 갯냄새와 바닷바람과 그 속에서 들리던 우주의 신비로운 음(音)을 잊지 못하는소박한 한 낭만주의자의 모습이다. 그리워하고 상처받고 노력하는 인간 윤이상!「나비의 꿈」이 제일 감동적으로 그려낸 모습이다. 소설의 구성은 말년의 윤이상이 평생 끊임없이 그리워했으나 끝내 가보지 못한 고향에 대한 절절한 회상을 큰 축으로 삼고, 그 사이사이 가족사와 개인사가 씨줄로, 음악에 대한 집요한 노력과 입지적인 성공이 날줄로 역여 있다. 특히 첫째 권 그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은 민족의 수난기인 일제시대와 겹쳐져 있는데, 작가 윤정모의 치밀한 조사와 연구에 의해 되살아난 당시의 여러 풍속등은 매우 흥미로웠다. 가령 이순신 장군과 통영선비들에 대한 독특한(?)견해, 1920년대 서당의 모습고 등불제전의 묘사, 연날리기 풍속에서 세밀히 그려진 연의 문양과 내력 등등. 그러나 소설적 긴장은 후반부 동백림 사건에서 더 잘 느껴졌다. 절대 권력과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희생양들과의 끔찍하고 억압적인(폭력적)관계가 윤이상의 입을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아직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유지해야 할 권력을 위해 히생양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는 생각! 더 나아가 역사 이래 인간의 힘(권력)을 갖기 시작한 후로 희생제의 는 늘 있어 왔다(?!) 연민이나 배려 같은 인간다움이 조금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이 편갈라 싸움박질하기, 우리 모두 경쟁하여 너죽고 나살자 하는 판에 통일은 어느 세월에?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윤이상이 (혹은 윤정모가)꿈꾸듯 그렇게 아름답고 절대적인 화합의 기쁨을 누릴 수나 있을랑가> 에고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내 같잖은 회의들...... 어쨌든 윤이상은 통일을 못보고 갔다.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나비는 이승을 벗어나며 비로소 하늘로 날아올랐으나, 여전히 이 땅의 거미줄에 총총히 걸려 있는 우리들은? 그런 줄조차 모르는,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 우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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