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9 | [문화저널]
문화적 토대가 위태롭다
글/전성진 전주문화방송 PD
(2004-02-12 12:21:18)
문화가 상품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이미 많은사람, 단체 기관들의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기 삶의 형태, 역사들을 적절히 팔아가며 잇속을 챙기고 있다. 그것은 우리보다 훨씬 세련되고 앞선 나라들이 오래전부터 해 오던 수법이기도 하다. 몇 해 전부터 휴가철, 아니 연중대를 가리지 않고 해외로 나가는 인파들이 공항을 메우는 모습은 돈벌러 나가는 일꾼들보다는 돈쓰러 나가는 해외 문화탐방객(?)들이 훨씬 많아진 때문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지탄받는 졸속 해외 관광을 비롯 그럴듯한 이름을 앞세워 너나할것없이 문화의 이름을 앞세우는 이즈음 우리 지역은 무엇을 문화의 이름으로 팔 수 있는지? 그래서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아 지역의 주름진 경제를 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런지.
최근에 전라북도가 펴낸「21세기 전북비전-21세기 전북 이렇게 발전합니다」라는 문건은 전라북도가 안고 있는 4가지 고민을 상대적 소득하락, 삶의 질 수준 하락, 인구 감소, 그리고 그에따른 정체성의 위기를 들고있다. 그러면서 이를 극복할 미래의 청사진으로 몇몇을 내세우는 가운데 중요한 테마로 문화 우위 시대에 문화의 비교 우위 확보를 내세우고 있다. 아마 현실적 인식과 대응책은 턱없이 부족하면서도 문화적 토대에 대한 자신감만은 남못지않은 탓 아닌가 싶다. 도데체 무엇이 도정의 입안자드에게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 주는 근거가 되었을까?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 진부하기까지만한 ‘예향’의 자긍심. 한국전통문화의 진수라 표현될만한 판소리 또는 국악의 본향. 어느 집 안방, 자그마한 다방 한켠에도 자리하는 낯익은 시화, 멋들어진 합죽선과 태극선을 만들어 내던 그 솜시, 정갈함과 맛깔수러움을 비견할 수 없는 음식 문화 등등..... 그리고 그 모두를 향유하며 한마디쯤 평할 수 있는 식견을 지닌 지역 사람들에 대한 믿음인가?
그러나 이제 많은 전북인들이 옹그라드는 전북의 삶과 함께 문화적 토양마저 터무니없이 피폐해져 가고 있음은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웃 남도에서 거세게 예향에 앞서 전제된 데로 문화가 상품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필지의 사실이 되어 벌니 지금, 우리는 왜 넉넉하고 기름진 문화적 토양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가? 잘못 이러다가는 넉넉한 토양마저 척바해져 그 좋던 토대마져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우려되면서 조급한 마음이 생기기도한다. 전라북도가 기안한대로 비록 남보다 돈이 넉넉하지는 못할지언정 향수하는 문화적 수준만은 남보다 우월하게끔 만드는 노력이 우리 모두의 몫일 수 있다. 그중 어느 부분보다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화정책의 입안, 집행자들이 부분 부분 끼치는 문턱, 지원 요청의 문턱을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문화정책을 입안 집행하는 분들이 가장 불만스러워 하는 부분이 앞서의 상충되는 두 문턱이 아닐까 싶지만 결국 지역 문화의 한 단계 높은 질적 발전을 위해서는 아쉽지만 두 문턱을 낮추워 가는 성숙한 문화행정의 집행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것이다. 너무도 뻔한 이치이지만 행정을 통해 문화의 수준을 높일 수는 없지만 수준 높은 문화 활동의 공간과 역량을 키우는데 일정하게 기여할 수 있음도 사실이다.
이제 문화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언저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그것을 향유하고 싶어하고 또 알게 모르게 그 사이를 헤 짚고 사는 우리 모두가 문화가 상품인 시대를 제대로 공유하여 덕을 봤으면 한다. 불과 몇 해 사이에 가우언도 춘천이 세계 판토마임제와 인형극제를 너끈히 개최하며 명성을 쌓아가는 모습에서 우리 지역은 특색있는 문화적 토양속에 잘만 기획해 낸다면 지역의 성가에 걸맞는 문화 상품의 개발과 명성을 쌓기는 어려운일만은 아닐 것이다.
입는 것, 먹는 것, 사는 모습의 곳곳에서 보여지는 우리 전라북도의 기름지고 넉넉한 문화적 토양이 더 이상 피폐해지지 말고 값비싼 상품으로 톡톡히 제값 받고 몫을 찾길 함께 기대한다. 물론 그 제값 받는 노력은 어느 한 부분의 몫이 아니고 우리 도민 전부의 몫일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