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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9 | [문화시평]
절망의 변주언어 연극 <한놈 두놈 삑구타고>
글/김길수 연극평론가 순천대 교수 (2004-02-12 12:20:18)
자유를 향한 갇힌 자들의 열망, 그것이 눈에 보이는 유형적인 공간 탈출로 해결된다면 오죽 좋으랴...... 일상의 일차원적 갇힌 공간이 제일의 감옥이라면 나병환자들에겐 삶 그 자체가 영원한 감옥으로 다가온다. 갇힘의 상황, 절망의 상황, 이를 상황그의 해법으로 변주시켜 나간 공연이 있다. 극단 ‘황토’의 <한놈 두놈 삑구타고>(이만희작, 조승철 연출, 창작소극장)공연 무대는 폐쇄된 공간, 절규의 공간, 아픔의 공간, 죽음의 공간을 상징적으로 그려 나가기 위해 무겁고 어두운 신체 이미지를 주요 무기로 삼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외형은 한마디로 추하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얼굴이며 몸 전체가 곪아 터져 있고 부스럼 투성이다. 손가락, 발가락은 한 두개를 제외하곤 그 흔적마저 찾기힘들다. 그러나 이런 외형에 대한 편견은 극이 진행되면서 진한 동정과 감동으로 뒤바뀌기 시작하낟. 감독관을 속여 마약을 타올 수 있음을 좋아라 하는 나병 환자들, 마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들의 웃음은 오히려 진한 비극성을 자아낸다. 무대 전면 좌측은 나병 환자 세 사람이 힘들게 사역해야 하는 작업 공간이다. 무대 후면 뒤쪽은 이들이 헐떡거리는 숨을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공간이며 더 나아가 그 누구의 도움의 손길도 없이 서서히 죽어가야하는절망의 공간이기도 하다.동적인 공간과 정적인 공간, 이 두 영역은 절망과 희망의 공간 구도 , 불평과 용서의 공간 구도, 다툼과 사랑의 분할 구도로 확대되어 나타난다. 이 연극은 다양한 반동적 상황과의 만남과 충돌로 이루어져 있다. 추위에 떨며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신체 이미지, 속옷 차림으로 벌을 받아야하는 상황, 감독관 ‘사이또’의 소리만 들어도 주눅들어 벌벌 떠는 상황, 이는 감상층 모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 댈뿐아니라 ‘그 극복 처방이 무엇일까?’하는 창조적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감독관의 부당한 대우, 동료들의 처참한 죽음에 격분한 달수(강성필 분)는 탈출을 결심하낟. 탈출 방법은 연극위문단에 합류하는 길이며 이를 위해 그는 연극연습을 펼쳐 나간다. 각설이 타령이 질펀하게 벌어지고 어둡고 절망적인 무대는 오랜만에 밝고 익살스런 분위기로 급전된다. 곱사춤이 벌어지는가 하면 각설이들만이 행하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해프닝이 벌어진다. 연습 도중의 말싸움이 벌어진다. 협박성 언어, 익살스럽게 회유하는 언어, 나병환자들만의 욕설에 가까운 은어, 서로를 '문씨‘라고 욕설하며 씩씩거리는 모습 등은 객석의 질펀한 폭소를 불러 일으켜 준다. 탈출을 위해 야간 노동까지 감행하는 달수, 그러나 자신의 행위가 실없는 짓이었음을 깨닫는 달수, 절규에 가까운 한탄, 신세타령, 비애얼니 회한의언어, 회상의 시어, 그 절정은 연극연습을 중단하는 것이며 야간노동을 포기하는 것이다. 아, 이 모든게 끝이 났단 말인가. 달수는 풀썩 주저 앉으며 일 도구는 내팽개친다. 감상층 모두를 놀라게 했던 ‘쾅’소리, 이는 희망의 끝, 삶의 종말을 상징하는 것은아닐까. 그는 울부짖으며 스스로를 저주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한다 회한의 언어, 울부짖음의 언어, 저주의 언어는 한편의 시를 방불케 한다. 강렬한 시적 침착의 분위기가 무대를 감싸면서 절마의 농도는 극에 달한다. 비록 완벽치는 않았다 할지라도! 혹독한 겨울 추위, 강풍, 높은 파도를 무릅쓰고 달수는 제 2의 탈출을 감행한다. 겨울 탈출, 이는 그의 죽음을 의미한다. 서서히 죽어가는 낙중(백민기 분), 육지에서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뇌인다. 아내, 자식, 온 가족에게마저 버림받은 낙중, 그의 임종을 호준(김준 분)이 맞아야 하낟. 호준, 그를 부둥켜 앉고 기도한다. 거친 호흡, 가늘어진 호흡, 떨리는 손마디 하나하나, 그 움직임 하나 하나에 호준 역시 숨을 죽인다. “아, 우리가 죽으면 어릴 적의 모습일까? 지금 이 모습일까?”어렸을 적 자유롭게 뛰놀며 불렀던 동요가 배면에 깔린다. 선율이 감상층의 가슴을 파고들어 유년기의순결했던 추억을 떠올린다. 시공의 경계를 뛰어 넘어 관객은 이들의 아름다운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호준, 곁을 더난 친구들이 그립다. 건달 달수가 떠벌이던 평소 언어를 그는 되풀이한다. 뒤뚱거리다 못해 안스러버기까지 한 몸짓, 오열을 자제하며 내뱉는 저 언어가 시사하는 바는 무얼까......“한놈 두놈 삑구타고 민들레 찧다 짜리떻다 뚱땡”이 언어는 이 곳을 도망쳐 한 세상 멋있게 살아보고자 했던 건달 달수의 언어로 그치지 않는다. 이는 달수의 언어 영역을 뛰어 넘어 소록도에 갇혀 죽어 가는 모든 나병환자들의 한맺힌 언어, 절규의 언어로 확대된다. 그 한을 풀지 못하고 죽어 갔던 친구들, 이제 마지막 남은 호준 자신 혼자 삭여야 하기에 되뇌이는 그 언어의 파장은 오래간다. “아, 귀가 있지만 이런 절망의 변주언어를 듣지 못한단 말인가......”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면서 관객은 진지한 사유의 항해를 하기 시작한다. 온 몸이 서서히 문드러져 가는 나병 환자들의 비정상적인 몸짓(공연 내내 이 연기를 계속 유지해 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를 배면에 깔면서 중노동의 아픔을 육화해 내는 문제, 걸쭉한 저자 거리의 익살 언어, 갇힘과 죽음에 대한 절망적 토로, 그 강&#47155;나 대조 묘미가 완벽하게 살아났었느냐의 여부, 강렬한 부딪침 뒤에 이어지는 시적 침잠 언어, 즉 일상의 부딪침 언어와 시적언어 간의 대조 효능 여부, 죽음의 순간 배우의 호흡 하나하나로 관객을 사로잡았느냐의 여부, 이를 위한 무대 이미지 설계가 더 섬세하고 정밀하게 구현되었으면 이 공연엔 완벽한 예술작품으로서의 향기가 더욱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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