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9 | [문화시평]
달리 보면 달리 보이는 문학의 너비
여름시인학교의 추억
글/정철성 전북대 강사■「문화저널」편집위원
(2004-02-12 12:19:47)
계절을 바꾸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엊그제까지도 땀을 훔치며 지냈는데 벌써 소슬한 기운이 느껴지니 공영ㄴ히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그런 까닭인지 여름의 기억이 저절로 멀리 숨는다. 팔월 중순 주말에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에서 재최했던 제4회 여름시인학교에 다녀왔다. 주제는 “삶의 바다, 문학의 바다”였다. 협의회의 회원인 작가, 비평가와 애호가들이 참가하여 새삼스럽게도 문학을 주제로 주말을 함께 보냈다. 시인학교를 다녀온 뒤에 남은 몇가지 생각들을 여기 정리해 두려고 한다.
민족문학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오해의 대상이다. 문학을 아끼는 순수한 마음들은 문학 앞에 수식어가 붙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문학이 그저 문학으로 족하다고 말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은 인간 정신의 고귀한 영역이야말로 문학이 추구해야할 궁극적인 목표이자 본래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담긴 순수한 비순수에 대해서 시비를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민족문학에 대해 한마디 변명을 붙이는 것으로 충분할 것같다.
내 생각으로는, 민족문학은 문학의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문학의 하위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민족을 앞에 붙이는 것은 현단계의 한국문학이 민족의 현실을 고려하지않을 수없다는 사태의 반영일 것이다. 민족문학의 시와 소솔과 희곡이 표현하려고 애쓰는 민족의 현실이란 계층 사이의 갈등과 남북분단의 현실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의 화두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그 크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 섬세한 문학이 다루기에는 벅차다는 느낌을 준다. 이렇게 큰 문제를 어떻게 시인의 작은 입으로 말할 것인가, 요즈음의 용어를 빌리자면 거대담론의 무게를 시인의 신경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그러나 우리가 시인을 종족의 시인이라고 부르거나 시를 시대의 성감대라고 지칭하는 것은 시와 시인의 사명이 작지않음을 인정한 결과였다. 부족의 희로애락을 노래하고 공동체의 운명을 노래하는 것은 처음부터 시인의 몫이었다. 좋은시잉ㄴ은 언제나 큰 감동을 작은 목소리로 노래했다.
거대와 짝을 이루는 단어는 미시이다. 미시의 세계, 개인적인 일상의 은밀한 세계가 정서적 공감의 형성에 적합한 유일한 장소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공감을 느끼기 쉬운 자리임에는 틀림없다. 개인적인 공감 - 나도 그래! -보다 더 울림이 큰 것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요구를 조화시키는 것이문학이 감당해야 할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칠, 팔십년대의 전달사항이 많은 작품들에 대해서 예술적 형상화의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구호처럼 읽히는 시와 목소리만 높은 소설이 외면당하기 시작했던 때가 바로 우리 사회가 변화의 모퉁이를 돌아간 시기였다.
시는 깨달음을 느낌으로 표현한다. 시는 과학이 포착하지 못하는 원시적인 지혜를 표현한다. 이번 여름시인학교에서 특강을 했던 평론가 김사인은 “시를 읽거나 쓰는 일은 추상적인 개념을 매개로 한 논맂거 추리 분석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실물적 상상력을 토대로 한 정서적 공감과 일치에 주로 의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감상의 예로 든 작품은 서정주의 「영산흥」이었다.
영산흥 꽃잎에는/山이 어리고
山자락에 낮잠 든/슬픈 小室宅
小室宅 툇마루에/놓인 놋요강
山넘어 바다는/보름 살이 때
소금 발이 쓰려서/우는 갈매기
확실히 미당(米堂)은 미당이다. 그의 솜씨는 이런 소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 시에 대한 김사인의 풀이를 들어보자. 상상려의 산물인 시를 다시 상상력을 매개로 재구성해본 이러한 풀이는 시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동시에 독자를 시인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방편이 된다.
읍내에 본가가 있는 면사무소 주사쯤이나 됨직한 바깥 사람은 며칠째 들르지를 않고요. 집안팎을 정갈하게 가다듬어 두고 딱히 오늘이라고 내일이라고 기약도 없는 사람을 기다리던 소실댁은 오뉴월 긴 낮에 설핏 낮잠이 드었던 것인데, 울 옆의 영산흥은 곱기도 고와서 서러울 지경이고요. 불쑥 찾아와 하룻밤을 묵고 갈 남정네를 기다려 윤이 나도록닦아 놓은 저 툇마루 위의 놋요강이라니! 서정주는 여기에 더 말을 붙잊 않고, 그 오두막 산너머(에)는 바다가 있고, 사리 때인 그 바다에는 소금기가 절은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가 산다고 일러줍니다.
미당은 시어의 사용에 있어 감탄이 아깝지 않은 재주를 보여준다. 그의 시는 삶의 현장을, 그 한 가운데를 뚫고 지나간다. 그러나 미당의 시르 읽으면 어딘지 껄끄러운 뒷맛이 남는데, 이 시만을 두고 보더라도 그렇다. 기막힌 묘사력에도 불구하고 「영산흥」에 그려진 것은 어딘가에 기댈 곳이 없으면 그림자처럼 가라앉아 낮잠이나 자고 있는 첩의 마음이다. 가엾고 애잔하여 동정심이 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첩살이가 그런줄 몰랐더냐는 비난을 피할 수도 없는 것이 그녀의 처지가 아닌가.
김사인이 미당의 시를 다시 보여준 것은 민족문학의 정신이 한국문학의 전통 속에 이미살아있음을 재확인하고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려는 의지 때문일 것이다. 그는 미당 이외에도 소월, 만해, 백석, 지훈의 시를 언급하였다. 다시 보면 다릴 보이는 것이 시가 아니었던가. 늘 그 모습이면서 날마다 새로운 사람이 바로 시인일 것이다. 아니 그의 시인가?
여름시인학교의 담임시인은 정양, 김용택, 이병천, 박남준이었다. 일반 참석자들이 담임작가와 함께 보내고 있는 시간에 나머지 회원들은 서로 근황을 묻고 담소하였다. 창밖에는 여름 바다의 밀물이 가득 밀려와 해안을 쓸고 있었다. 실눈을 뜨고 보면 앞바다 섬들의 푸른 윤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