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9 | [문화비평]
근엄한 비평, 껍질뿐인 발전
글 / 원도연 「문화저널」편집장
(2004-02-12 12:15:50)
‘흐르지 않는 물’은 전북의 문화계가 벌써 수년째 붙들고 있는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흐르지 않는 물’의 정점에는 물론 지역문화의 구조적인 제약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속에는 인색하기만한 비평문화의 문제도 자리하고 있다. 간혹 눈에 띠는 비평도 하릴없는 ‘주례사’에 그치고 마는 소득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말은 많지만 정작 멍석을 펴면 대부분 근엄한 인사치레로 끝나고 만다.
소설가 이병천씨는 전북지역에 비평문화가 활발하지 못한 까닭으로 “이 지역이 농경 문화에 기반한 오랜 공동체 생활을 겪어왔고, 사람들이 심성이 서로 돕고 부조하는 문화적 토양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로 부조하는 것이 아니라면 삼가는 지역적 정서가 비평문화를 위축시켜왔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비평은 “문화풍토가 근대화된 도시 문화의 산물이지 농경문화의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지역풍토가 활발한 비평문화를 수용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전문적인 비평이 서구적인 오리엔테이션에 경도되어 있고, 공격적인 비평이 우리 정서에 잘 어울리지 못한채 나름의 비평이 우리 정서에 잘 어울리지 못한채 나름의 비평문화가 성립하지 못한 현실을 보면 일견 수긍할 만한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형태의 예술창작이 활발해지면서 비평문화의 활성화가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업에 대한 평가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자극으로 외화시키는 것은 문화가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다. 창작의 과정이 아무리 치열하고 실험적이라 한들 그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평가해 주는 이가 없다면 창작정신은 위축되고 작가는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지역의 창작자들은 비평다운 비평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비평가들은 창작자의 질을 문제 삼는다. 걱기에는 우선 창작자들이 비평집단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비평가들 역시 비평의 범주를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비평이 활발하지 못한 근본적인 문제를 창작자들과 비평자들의 자세로부터 찾는 것은 자칫 문제를 왜곡시키고 창작자들과 비평가들을 압박할 할 수도 있다. 비평이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 것은 단지 이 지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미술평론가 이영욱 교수(전주대)는 “비평을 ‘생동하는 움직임’에 관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아직 그 생동하는 움직임이 결여 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토론되고 또 그것을 즐기는 최소한의 단위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근본적인 문화적 토대가 여전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비평 이전의 단계, 즉 문화예술을 소유하고 즐기되 자기의 눈을 갖고 있는 대중적인 문화의식이 무척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문화적 행위를 진정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식쯤으로 여기는 왜곡된 허위의식이 문화적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셈이다. 물론 문화예술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낙후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이같은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비평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비평은 궁극적으로 창작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향유하고자 하는대중들을 향해야 하며 대중들의 길잡이로서 기능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평가들이 사명감과 애정을 가지고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풍토를 만들겠다는 자세로 인맥과 학연을 떠나 객관적으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창작자들 역시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하고 왜소한 비평은 결국 자신에게도 그 피해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지방자치의 실현과 함께 답보를 면치 못하고 있는 지역문화 역시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가고 있다. ‘흐르지 않는물’의 물꼬를 어디서 열어야 할지 새로운 비전이 창작과 비평집단 모두로부터 나와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인욱 교수는 “서울 중심적이고 작가중심적인 사고를 버리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되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유형의 창작물만이 아니라 그 과정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평가들은 비평활동 뿐만 아니라 문화활동가로서의 자기역할과 위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평의 영역은 보다 확장될 필요가 있다. 창작물에 대한 비평뿐 아니라 그 과정을 둘러싼 지역의 문화정책이 총괄적으로 비평되어야 하고, 전통 문화에 대한 비평영역이 개척되어야 하며 다양한 관점에서의 분석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다양하고 폭넓은 비평문화의 정착은 궁극적으로 문화적 토대를 강화시키는 긴요한 조건이다. 최근 들어 신진 비평가들이 등장하면서 지역문화에 대한 비평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는 현실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이병천씨는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아직은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지역문화의 힘은 자기점검과 비평을 통해서 나올 수있다. 지금의 조건에서 가장 건전한 비평은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를 갈라 놓는 것이 아니라 눈에 띠는 가치를 일깨워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창작자들을 이해하고 그 미덕을 일깨워주는 것으로부터 비평은 시작되어야 한다. 아직은 시작이지만 새로운 풍토를 만들기 위한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