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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지연된 눈물의 의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김경태 영화평론가(2014-02-05 10:41:02)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의심의 여지없이 친자로 알고 6년 간 키워온 아들이 사실 출생 당시 병원에서 바뀌어버린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 겪게 되는 가장의 ‘기른 정’과 ‘낳은 정’ 사이에서의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재만 놓고 보더라도 이 영화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신파적인, 그리하여 가장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닌 작품으로 손꼽힐만하다. 특히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201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서 이 영화에 심사위원상을 수여하고 일찌감치 리메이크를 결심했다는 사실이 이러한 측면을 단적으로 보증한다. 그러나 정작 고레에다 감독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지름길을 두고서 애써 에움길로 돌아간다. 즉 영화는 울 준비가 된 관객들에게 눈물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감독은 이토록 신파적인 소재를 가지고 와서 어떻게 덜 자극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을 조금이라도 덜 슬프게 만들까를 실험하는 듯하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말

 

영화의 전반부, ‘료타’와 그의 아내 ‘미도리’는 병원에서 자신의 아들 ‘케이타’가 친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그 다음 장면에서 영화는 료타 가족이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한 것처럼 여느 때와 다름없는 화목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뒤이어 유전자 검사를 받고 친자가 아님이 기정사실이 된 순간에조차 부부는 쉽게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케이타를 맡겨 놓은 친정집에 도착해 불단 앞에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는 순간에야 마침내 미도리가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린다.

그런데 이처럼 눈물을 통한 감정의 정화작용은 미도리에게는 서사적으로, 관객에게는 형식적으로 줄곧 몰입의 방해를 받는다. 불단 앞에서는 그녀의 어머니가 개입해 무거운 분위기를 보다 가볍게 만들고 피아노 학원에서는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린 미도리의 모습이 유리창을 통해 소리 없이 흐릿하게 비춰진다. 하물며, 남편인 료타의 눈물을 보기 위해서는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어른들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 즉 케이타와 친자로 확인된 ‘류세이’의 눈물은 화면에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감독은 (등장인물과 관객 양쪽 모두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을 최대한 지연시킨다. 이것은 심리적 지연으로서 감정적 판단의 유보이며 당연히 흘려야할 눈물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말한다. 지금 당신이 너무 성급하게 흘려보낸 그 눈물은 내가 원하는 눈물이 아니라고. 아직 눈물을 흘리기엔 이르다고.

 


설명하지 않는 이유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가 추구하는 미학은 등장인물들을 줄기차게 응시하는 다큐멘터리적 우연성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우연성은 그의 카메라가 <아무도 모른다>(2004)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처럼 특히 어디로 튈지도 모를(!)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담아낼 때 가장 빛이 난다. 감독은 부모에게 자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기 위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아이들을 열심히 관찰한다. 그리고 그들의 꾸며지지 않은 몸짓들을 ‘탐미적’으로 담아낸다. 이와 맞물려 당연하게도 아이들에게 극적으로 과잉된 연기를 주문하지 않으며 그 아이들이 영화를 통해 감정적으로 소모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누군가의 자식이라서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운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미 카메라는 ‘혈연’에 대한 료타의 고민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카메라는 일찌감치 답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누구를 키울지 선택할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응시의 대상이지 주체가 될 수 없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료타가 카메라를 통해 케이타가 찍은 자신의 모습들, 즉 아이의 시점으로 자신을 바라본 순간, 료타는 자신의 딜레마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존재만으로 아름다운 아이가 진심을 담아 나를 사랑해 주는데, 그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그리고 바로 그때, 관객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료타의 눈물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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