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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9 | [문화저널]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도 있다.
글 / 김명성 KBS준저방송총국 기자 (2004-02-12 12:14:12)
알아주기에서 알리기로 주민이 직접 단체장을 선택하는 민선자치시대 들어서 민과 관의 간격이 좁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행정기관에서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다. 행정기관이 주관하는 소규모의 시민위안공연에서부터 대형이벤트행사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인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거의없다는 것이다. 주민이 뽑은 단체장이 이끄는 행정기관에서는 주민을 위한 공연에 예술인들이 돈타령만 늘어놓는다는 푸념이다. 물론 행사에는 예산이 따르고 문화예술인들도 공연에 참여하는데 돈이들기 마련이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간다. 그래서 문화예술계를 ‘값비싼 서비스 직종’이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이런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면 풍부한 상상력과 고매한 품격으로 예술적 삶을 살아가는예술인들이 어느덧 물질에 구애 받지 않는 예술적 기질이라는 미덕을 잃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전국에서 정상급 교향악단으로 성장한 전주시향은 예술회관에서만 공연해야 하는가. 부문별로 나누어 객사 앞에서 덕진공원에서 대학가에서 시청광장에서 그리고 문화적 해택을 덜 받는 다른 시군에 순회하며 보다 많은 지역민들이 보도록 하면 안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왜 놀이패들은 풍남제나 전라예술제와 같은 행사 때만 선보이는가. 예술인들은 지역민들이있는 곳에서 댓가 없이 ‘청중을 사로잡는 기술’을 발휘하면 안되는가. 예술인들이여, 잠시 잊었던 겸손의 미덕을 이제라도 되돌아보자. 남이 ‘알아주는 자’가 아닌 남에게 스스로 ‘알리는 자’로 겸허하게 낮추자. 군림할 때 생명력을 잃는 것은 정치나 종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방화 시대가 도래했건만 유독 문화예술계만이 지방화시대에 걸맞도록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서서히 그러면서도 거세게 일고 있음을 알자. 교섭력을 길러라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행사를 앞두고 문화예술인들은 독지가나 기업체의 문을 두드린다. 어느 기업체에서 얼마를 지원해 주었다고 극찭하는가 하면 어느 기업체에서는 외면했다고 원망한다. 그런데 정작 기업체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이 원칙과 계통, 대표성도 없이 무조건 손만 벌린다고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건수(?)를 올린 뒤에 희비를 논하는 예술인들과 귀찮아서 줘 버렸다는 생각 속에 씁쓸함을 삼키는 기업체들의 입장이 너무나 상반되게 나타나는 현실이다. 물론 이것이 전북지역 매세나의 현주소이지만....... 예술인들은 예술의 추구하는 떳떳한 명분을 갖고 있는 만큼 예술단체로 창구를 단일화 해 교섭력을 키원야 한다. 예총이 그 역할을 못하면 예술계를 망라한 기칭 ‘메세나 추진위원회’를 별도로 교섭창구로 만들어 교섭에 임하라. 그래서 지원이 필요한 예술인들은 위원회를 통해 떳떳이 요구하고 위원회는 지원 받은 내역을 공개해 지원한 업체에게는 자랑스러움을 , 지원받은 예술인들은 떳떳함을 지역민들에게 공감하게 하라.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주거 형태가 아파트로 급변하는 추세에서 그림 한점 정도 걸어두는 것은 필수적이다(전주시 지역의 아파트는 전체 주택의 절반이다). 예술단체가 교섭력을 발휘해 그림 한점을 아파트 선택품목으로 지정하도록 건설업체와 협상할 수는 없을까. 해마다 화단에 쏟아져 나오는 수백 명의 에비화백들의 그림을 저렴한 가격으로 매입하도록 타결지어 집집마다 그림 소품 하나 마련하도록 한다면 일거양득 아닐까, 수천만원짜리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10-20만원대 그림 하나 선택하도록 권장한다 해서 크게 반발할 입주자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교섭력이다. 가진자는 내놔라 최근 강원지역 수해민들에게 보내는 성금행렬에는 초등학생의 10원짜리 동전에서부터 환경미화원들이 재활용품으로 마련한 5백만원의 성금, 그리고 수천만원씩 기탁하는 기업체의 성금 등 다양하다. 그런데 왜 예술인들은 성금에 인색한가. 수해를 당한 이웃의 이웃들이 정성담긴 그림 소품을 받으면 버럭 화를 낼까 두려워서인가. 불우이웃돕기 성금모금을 위한 기획전시뢰를 열 수도 있지 않은가. 문제는 예술인들의 베풀기보다는 움켜쥐려는 심성이 있다. 그 심성이 주민들에게 문화예술을 베풀려는 아름다움에 앞서 댓가만을 요구하는추함으로 들춰지고 거리의 예술보다는 무대의 예술만을 고집하며 대중과 간격을 두게 하는 괴리로 드러난다. 이것 역시 지역민들에게 비춰지는 전북예술계의 이기심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문화 예술인들의 인식의 전환은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곧 전북지역 문화예술인들은 태고로부터 이어져 예향으로 그 맥을 잇고 있는 이 고장의 예술적 가치를 소중하게 지켜 나가는 주인이라는 소명의식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전북예술인들이여 이 고장의 문화예술이 보다 높게 뛰어오르지 못하는 원인이 우리들 깊숙한 곳에서 자라고 있었던 어떤 질환에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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