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9 | [문화칼럼]
1996년 9월호 1
문화저널(2004-02-12 12:12:16)
지방마다 빠짐없이 해마다 향토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향토의 전통성을 고양하고 문화적 긍지를 선양하면서 주민들의 일체감을 조성한다는 데에 뜻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런 만큼 지방자치시대에 이런 행사를 자발적인 주민의 주도로 개발하고 추진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 남원의 춘향제나 전주의 풍남제 등을 비롯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관주도로 이뤄지거나 아니면 민간을 허울로 내세우고 실상은 관이 주관해 나가는 따위의 행사가 더 많다. 행사의 재정적 뒷받침을 지방 자치단체가 부담해야 되기 때문에 부득이한 일이라는 설명이지만, 이런 행사일수록 무사 안일의 연례행사로서 전혀 독창성이 없는 그저 일과성 행사로 되풀이 되고 있을 뿐이다.
향토적 특성으로 무엇을 내세울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이벤트로서 충분한 연구와 개발이 뒤따라야 되는데 도무지 그러한 적극적인 문화의식이 없다. 그러다 보니 매년 치르는 행사 종목이라는 게 그게 그것인 천편일률의 고정 메뉴가 되어 마냥 식상을 느끼게 한다. 관주도의 행사일수록 관료주의적 타성으로 이러한 폐해는 더 크다. 향토 문화제로서의 중요한 가치를 생각한다면 기획단계부터 좀더 전문적인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문화를 발굴 계승한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불만을 전제로 하면서 우성 생각되는게 문화제가 일시적인 볼거리로서 상업주의에 치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오락성만을 추구했지 생각하고 깨닫게 하는 계몽적 기능은 도무지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 중의 대표적인 예가 미인대회이다. 근래에 와서 유행병처럼 번진 경향으로 문화제치고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는 일이 없다. 마치 방송에서 시청률에 신경을 쓰듯 구경거리 중 으뜸이라는 얄팍한 판단으로 이를 선호하는 모양인데 여성의 미를 상품화한다는 논의를 제쳐 두고라도 그 발상 자체가 얼마나 치졸하고 퇴폐적인가를 생각하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도대체 그 고장 특산물 홍보까지도 굳이 미인을 뽑는 대회를 곁들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은 이 풍속이 왜 생겨야 하는지 도시 이해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검토할 것은 주민들의 참여도다. 향토문화를 자랑하고 밖으로 크게 알리고 싶은 진정한 향토애를 유발하기 위한 문화제라면 당연히 문화의 주체인 주민들이 긍지를 지니고 이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주민들은 행사의 주체가 아닌 한갓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단적인 참여를 전제로 하는 민속놀이 같은 경우 연희자는 대개 동원된 학생들이다. 물론 이에는 주민들의 동원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없지는 않겠으나 일시적으로 동원돼 훈련을 통해 연출하는 학생들의 경우, 우러나는 향토애를 기대할 수 없는 데다 실상 체험의 한계로 행사 자체의 진가나 사랑을 모를 뿐 아니라 지속적인 보존과 계승에도 한계가 있다.
세 번째로 생각할 일은 행사가 지닌 성격의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연구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이에는 전문성을 지니 학술적인 검증이 마땅히 뒤따라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문화의 진실을 왜곡하여 자칫 허상만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문화적 대상이 인물일 경우 사실과 허구의 관계에서 그 성격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판소리계 소설의 자랑스러운 고전 ‘춘향전’이나 ‘흥부전’이 어디까지나 허구로서 이루어졌음을 기본적인 인식으로 삼아야 된다. 그런즉 그러한 작품의 배경이 다름 아닌 우리 고장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여길 일이지 그 작품에 나오는 작중인물을 그 고장 출신으로 비약해 생각한 나머지 그 실존성까지 추구하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실상(實像)과 허상(虛像)의 관계로 작가가 어느 특정한 모델을 썼느냐의 여부에 걸려 있는 문제로서 그걸 해명하기가 어려운 것인데도 굳이 인물에 실제 모델이 있는 양 상정하는 자제부터가 자칫 넌센스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의욕이 과잉하면 형식이 타락한다는 니체의 말마따나 욕심이 지나쳐 허구적 인물의 무덤을 설치한다든지, 작중인물의 성씨만을 가지고 서로 우리 마을이 그 배경입네 하고 우격 다툼을 벌이는 따위의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전설적 인물이나 소설 속의 인물은 그 자체로서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이지 실존인물로서만이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지극히 기본적인 이 상식이 무시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가 있다.
또한 실존일문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분의 위업이나 미담을 흠앙한 나머지 분별없이 과장 포장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된다. 본시 설화의 속성상 추앙의 대상이 곧 영웅화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위에서 설정되어야 한다. 문헌적인 자료의 뒷받침 위에서 추론되는 그런 인물의 설정만이 진실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도리어 거꾸로의 현상인데 마지막으로 한 에를 들겠다. 장수 출신인 논개(論介)의 경우다. 논개의 순절을 추앙하여 출생지인 장수와 순절의 현장인 진주에 ‘의암사(義岩祠)’가 있고 매년 장수에서 ‘논개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논개의 신분을 기생으로 하여 진주 촉석루 뒤에 있는 ‘의기사(義妓祠)’의 사액정문에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논개는 기생인가? 그렇지 않다. 그녀는 비국한 형편으로 장수현 관아에 관비로 들어갔다가 현감 최경회(崔慶會)의 애첩이 되었고, 최장군이 진주성 싸움에 나가자 뒤이서 그에게 갔다가 성이 함락되어 그가 투강자살 하자 복수하기 위해 왜장의 연회석에 기생으로 위장하여 마침내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순절했던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논개의 신분은 일시적 위장책인 기생이었을 뿐 그녀의 신분이 기생이 아님에도 그렇게 쓰여져 있고, 그렇게 알고 있으니 이야말로 빨리 시정되어야 한다. 일시적 위장술이 결코 그의 신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수군민은 추모행사와 더불어 이의 바로잡기를 서둘 일이다.
「문화저널」100호의 발간을 축하하며
깨어있는 정신으로 파종한 건강한 문화의 생명력
글/한승헌 변호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참으로 장하고 대견스럽도다”-지령 100호를 맞는「문화저널」앞에 이 말을 먼저 바치고 싶다. ‘친권자’도 없이 고생하며 제 힘으로 자라 왔다는 점에서 마치 성년의 나이에 접어든 소년소녀가장을 보는 듯이 감격스럽다.
「문화저널」이 87년 6월 항쟁의 최루탄 속에서 잉태되어 그해 11월에 창간된 지 햇수로 어언 10년째. 그동안 한 번의 결호도 없이 100호까지 발간해 온 그 놀라운 끈기와 남다른 노고에 대해서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인가 좀 달라진 듯 하면서 노상 그렇지만도 않은 이 척박한 한국의 풍토에서, 더구나 이 나라 안에서 가장 가난하고 설움 많은 전북 땅에서 「문화저널」 은 들꽃같은 생명력을 과시하며 전통과 현대 속의 ‘문화’를 파종하고 가꾸어 왔다.
내고향 젊은 친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내는「문화저널」에 대해서 나는 은근한 자랑스러움마저 느끼고 있다. 인간의 생활양식 전반을 아우르는 넓은 의미의 문화 개념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 공감을 느낀다.
또한 ‘전북’이라는 지역적 토양과 숨결 속에서 지역문화 창달의 기수임을 자임해 온 그 당당함이 믿음직스럽다. 서울 중심의 중앙집권적(?) 문화의 통폐를 깨고 문화예술의 전통적 본고장으로서 자부심을 되찾아 지역문화의 중흥에 선구적 역할을 다해 온 그 기개야말로「문화저널」의 큰 밑천임을 나는 확신한다.
붓끝에 애향심이 넘치다 보면 자칫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이 흐려지기 쉬운 법인데, 문화저널에 실린 글들은 그러한 걱정을 기우(杞憂)로 돌려놓기에 모자람이 없다.
전북이라는 지역성을 살리되 소재나 필자의 폭을 전북에 국한시키지 않은 점도 바람직하다. 제논에 물대기, 또는 자화자찬에 빠지다보면 사고(思考)의 균형을 잃기 쉽다는 것을「문화저널」은 익히 명심하고 있을 줄 안다.
전북문화저널사의 민주적 운영방식도「문화저널」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바탕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언론매체의 굴절 요인으로 흔히 자본 또는 권력에의 종속을 드는데,「문화저널」은 내가 알기에는 그따위로 섬겨야 할 ‘신주(神主)’가 없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재정적 고충이 크겠지만 그 대신 자유롭고 독립된 논의구조와 지면 제작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문화저널」의 가장 큰 강점일 것이다.
이런저런 덕목 중에서 나의 마음을 끄는 또 하나의 요소는「문화저널」이 풍기는 서민성이다. 먼저 편집일꾼들의 체취에서 드러나는 이 서민성을 잡지의 겉모습으로부터 그 내용에 담긴 정신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배어 있어 독자들을 친근하게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그 서민정신이 자각과 비판으로 이어지는 시민정신과 배접(褙接)되어 있어서 여간 미덥지가 않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100호의 지령을 쌓기까지 그야 말로 백번의 산고(産苦)를 함께 해 온「문화저널」식구들과 후원자 여러분께 뜨거운 갈채를 보내며 앞으로도「문화저널」의 의욕에 찬 깃발이 더욱 힘차게 펄럭이기를 기원한다.
제 뿌리와 땅과 공동체제에 대한 믿음
글/김종철『녹색평론』발행인·경북대 영문과 교수
온갖 자원이 서울로 집중되어 있는 시대에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지방지로서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많은 분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망본초란(忘本招亂)의 시대인지라 뿌리 없는 겉치레 문화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무섭게 다가오고 있는 사회적·생태적 위기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사람이 제 뿌리와 땅의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광범위한 사회적 각성이 언젠가는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많은 뜻있는 이들의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겠지요.
「문화저널」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지역에 뿌리를 둔 문화의 중요성을 애기하고, 그 문화의 정신적·물질적 토대를 되살리는 일에 더욱 크게 기여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 확신은 그동안의 편집에서 보여준 건전한 사회의식과 비판정신에 근거하는 것입니다만, 앞으로도 구체적인 지역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되 그 시각(視覺)만은 세계적인 것으로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문화형성을 위한 교정제
글/박명규 서울대학교 교수·사회학과
문화저널이 100호를 맞게 된 것을 축하하며 함께 기뻐합니다. 거의 매일 책상 위에 놓여지는 여러 형태의 우편물들 속에서「문화저널」을 발견하는 날은 웬지 즐거워집니다. 그것은 전주에서 개인적인 추억들이 새삼스레 떠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역시「문화저널」이라는 책자가 주는 은은한 향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껍지도 않으면서 그러나 만만치도 않은 이 책자를 넘기다 보면 마치 가을날 들녘에서 마주 대한 들국화와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문화저널」이 만들어지던 당시에 비해 오늘날은 과히 ‘문화’라는 말의 천국이라 할 만합니다. 내가 가르치는 사회학 분야에서도 문화에 대한 연구가 가장 중요한 주제로 떠오를 정도입니다. 다만 몇 년 전만 하더라고 ‘문화’는 비교적 관심의 바깥에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거대한 문제들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던 80년대에, ‘정치·경제·사회’가 아닌 ‘문화’를 그것도 전국의 문제가 아닌 자기 지역의 현실에 초점을 맞춘 잡지를 간행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가히 도전적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그 도전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는 100호를 맞는「문화저널」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문화저널」은 돈과 재주로 만드는 책이라기 보다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책입니다. 화려한 선전과 함께 나타났다가 어느 날 사라져 버리는 책자들이 허다한 요즈음에, 정성으로 지켜져 나가는 이런 책자가 있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새로움의 추구라는 이름으로 온갖 이국적인 것들을 ‘문화’인양 착각하고 있는 오늘, 자기 삶에 충실한 생활인의 문화를 진솔하게 담아 내는「문화저널」은 더욱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화 담론이 자칫 경박한 또 하나의 외국문화숭배로 이어질까 걱정스러운 요즈음「문화저널」의 잔잔한 목소리는 건강한 문화형성을 위한 교정제로서도 중요할 것입니다. 진부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유행에 민감하게 튀지도 않는 주제, 높은 수준의 내용이면서도 어려운 말로 독자는 주눅들게 하지 않는 글쓰기, 유명인으로부터 일상 생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필자들「문화저널」의 이 소중하고도 놀라운 균형감각이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잡지의 간행을 위해 거의 매일 고민하며 동분서주해 온「문화저널」의 식구들께도 축하의 말씀과 함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다시 한번「문화저널」100호 발간을 축하하면서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호남문화’의 구심점으로 서라
글/문순태 소설가·광주대학교 교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동안「문화저널」을 의욕적으로 이끌어 온 분들께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몇 년 전 나는「문화저널」이 주최한 문화강좌에 참석하는 자리에서 전북 사람들이 지역 문화에 대한 애착이 참으로 뜨겁다는 것을 느꼈고, 그렇게 유도한 것이「문화저널」이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내가 알기로「문화저널」은 그동안 전북 지역의 사회·역사·문화적 역량을 축적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보다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데 앞장을 서 왔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밖에도 지역의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를 논의하고 의견들을 통합하는 일과 전북 사람들이 보다 아름답고 정의롭게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를 열어 가는 데 구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나는「문화저널」의 200호를 생각하면서 다음 몇 가지를 주문하고자 합니다. 사실 전북은 전북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전북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전북문화의 중심부에는 전통문화라는 큰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고유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역문화의 강점은 고유성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요즘에는 문화의 보편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보편성이라는 것은 서구적 가치기준으로 보는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세계적 보편성이라는 서구인 문화의식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문화저널」은 전북문화의 고유성과 보편성의 조화를 잘 이루어 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각을 보다 넓혀 지역 문제를 전국화 또는 세계화하고 세계적인 것 전국적인 것을 전북화하는 노력도 필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전북지역문제로 국한시키는 것보다는 ‘호남문화’ 전체를 생각해 달라는 것입니다. 전북문화와 전남문화는 한 뿌리입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문화저널」은 호남으로 시각을 확대시키기 바랍니다. 어차피 전북문화를 역사적으로 조명하자면 백제정신이라 동학 농민정신을 따지지 않더라도 ‘호남’전체와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문화저널」이 호남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광주·전남의 문화단체들과 서로 협력 연대의식을 갖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국 어디에서나「문화저널」을 받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모든 호남인들의 아름답고 정의로운 마음들이 한데 모여 <문화저널>이라는 이름의 큰 마당에 함께 모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민중삶과 함께하는 문명전환의 씨앗
글/채희완 부산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부산민족미한연구소 소장
전북에 아는 이가 있어 『南民』을 가끔씩 받아 보고 전주에도 지역 문화를 위해 애쓰는 이들이 한곳에 모여 있어 참 반갑고 고맙구나 싶었는데, 지령 100호를 내는「문화저널」이라니 “저절씨구나 얼씨구” 추임새가 절로 납니다.
이태 전에 동학 백주년기념행사의 한가지로 고부·정읍 일원에서 벌이는 ‘역사맞이 굿’ 준비 차 문화저널 사람들을 만났는데, 옹골차고 야무지게 뒷일을 맡아 하는 것 보았습니다. 여러 덕분에 그 행사가 큰 탈없이 치러졌지요. 그런데 이제 문화저널의 사업 및 행사 연혁을 보니, 94년 동학농민혁명 백주년의 탄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그 몇 해 전부터 3회에 걸쳐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와 현재’에 관한 시민문화강좌를 용의주도하게 열었던 것이 아니겠어요? 이제야 알겠네요. 그 큰 굿판이 뒷탈없이 보란 듯이 버젓하게 열리게 된 그 음덕을.
문화저널이 ‘계획적으로’ 규모있게 벌이는 사업 중에 알뜰살뜰 지역 문화의 역사 현장을 몸으로 모듬는 ‘백제기행’도 그러하고, 숨은 예인을 찾아, 무대로 모시는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도 그러하고, 문화저널이 있어 전라도 문화의 ‘자존심’ 문화저널이라 내세우는 것도 가당하고 그게 또 참 부럽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문화의 본향은 전라도이고, 또 그게 우리 민족문화의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그런 자존심은 온 나라 사람에게 내놓을만 합니다.
회의와 여자치마는 짧을수록 좋다지요? 문예행사판에서도 늘 느낍니다만 예우상 대접받아야 하는 축사나 격려사도 짧을수록 좋고,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본행사를 그르치게 질질 빼면 안돼지요. 그래도 한 마디, 만수무강하옵시고, 오늘 찌들고 쩔은 민중삶 속에 새로운 문명전환의 씨앗이 숨어 있다 하지요.
진정한 ‘홀로서기’의 길잡이
글/임진택 연극 연출가·소리꾼
‘홀로서기’라는 제목의 시집이 있습니다. 나는 그 책을 읽지 않아서 그 시들이 어떤 의미로 쓰여졌는지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베스트 셀러였던 그 시집의 명성이 거의 시들어가는 요즈음 또 다시 ‘홀로서기’라는 단어가 부각된 것은 다름아닌 ‘전라북도’의 장래와 관련되어서였습니다.
나는 일부 정치인들의 그러한 주장이 무척이나 가소롭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전북 홀로서기’는 사실상 ‘전라고 갈라놓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홀로서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라도를 갈라놓으려는 그들의 행태가 실로 괘씸하기 짝이 없지만, 한편으로 그들에게 그러한 명분을 주게된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오랫동안 차등과 멸시를 받아온 아픈 역사에 대해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치유책을 강구하기 보다는 혹 조급하고 감정적인 대응을 해 온 부분이 없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돌이켜 볼 때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지역자치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지금 ‘홀로서기’는 매우 중요한 명제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의 내용이 전라남도에 대한 북도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매우 천박한 발상일 뿐입니다. ‘홀로서기’는 중앙정부에 대한 자치단체의 대응이어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중앙정부가 넘어뜨리면 넘어지고 일으켜 세우면 일어나는 자치단첼면 존립할 이유가 도대체 없습니다. 나는 전라도만이 아니라 경상도, 충청도 할 것 없이 모든 지역들의 스스로 홀로서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할 때만이 올바른 의미의 민주주의와 국민통합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홀로서기’에 대해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홀로서기’가 마치 ‘외발로 서기’인양 혼동하는 경우이죠. 홀로 서는 것은 두발로 버티고 설 때 가능할 것이지 외발로 서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인들은 전라북도더러 홀로서라고 요구하면서 외발로 설 것을 강요합니다. 전라도의 ‘홀로서기’는 북도와 남도가 두 발로 버텨설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며 나아가서는 전라도와 경상도가 함께 두발로 설 때 가능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지금 전라도는 시급하게 ‘홀로서기’의 내용과 방식을 정립해야 할 때인 듯 싶습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모두 깨져나가고 그 삶의 뿌리이자 터전인 농촌공동체가 와해되어 가는 오늘날 전라도야말로 뜻을 모아 지켜 나가야 할 과제가 더욱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전라도가 먼저 올바른 의미의 ‘홀로서기’를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나라 전국 각 지역이 제각기 홀로 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저널」은 그와 같은 ‘홀로서기’를 실천하는 길잡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습니다.「문화저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빠리에서 -
안쪽 문화를 살려 바깥 문화를 성찰하는 일
글/정과리 문학평론가·충남대 불문과 교수
한동안 한국 사회의 중앙 편주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난 후 그런 얘기는 좀 수그러든 듯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역간의 평등이 이뤄졌다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문화의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문화적 주제, 문화적 운동, 문화적 사안의 대부분이 여전히 서울의 손바닥 안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 단위의 차원에서 한국 문화가 미국 문화에 지배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 문화의 서울 편중을 우려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문화 제국주의의 동심원적 구조 내에 그것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 문화의 지도 안에서 이 문화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 있는 지역을 찾기란 아주 힘듭니다만, 그렇다고 아예 부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북은 지방자치에 관한 논란과 무관하게 훨씬 이전부터 지역문화의 독자성을 살려 온 희귀한 고장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그것을 80년대 초엽 마산에서 여러 전북사람들을 만나면서 느꼈습니다. 노래방이란 게 없던 그 당시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뽕짝이 주류인 그 노래판에서 느닷없이 한 분이 판소리 가락을 뽑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주 기이한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지방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때 처음 지역문화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80년대 중반의 열풍이 지나고 얼마 뒤에 저는「문화저널」이라는 잡지를 받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수준이 놓은 데 놀랐습니다. 그 수준은 지역문화를 폐쇄적으로 고집하는 데 있지 않고 지역문화의 독자성으로 미국화의 물결에 휩쓸려 있는 한국 문화 일반과 당당하게 겨루려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의 독자성이 일상의 감각이자 리듬으로 생활화되어 있는 고장이라면 능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장은 아주 드물게만 있습니다. 안쪽의 문화를 살려 바깥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일은, 때문에 외롭고 힘겨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문화저널」이 벌써 100회를 맞는다고 합니다. 그 숫자 속에서 저는 외로움과 고투의 주름살을 봅니다. 바깥 문화의 잠식력은 그곳에서도 위협적인 숨결을 내뿜고 있을 것입니다.「문화저널」의 주름살도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름살은 생의 지혜와 경험이 새겨지는 자리입니다. 저는「문화저널」이 그동안 몸에 새긴 지혜와 경험으로 더욱 깊고 넓은 작업들을 향해 나아가리가 믿습니다.
시
어느 게으른 사람의 농사법
박형진
여러 날 장마에 깨 심은 것 다 떠내려가버리고
오뉴월 염천에 밭을 다시 갈아 엎는다.
늦은 콩이나 혹은 죄다 매밀을 심어야 이제는
김 덜 매고 나중 팔아먹기 좋다해도
이런게 무슨 수확이 된다고 어머니는
일많은 개포리 돈부니 녹두, 들깨, 쥐눈이 콩을
심으시겠다 한다.
“밥 위에다 한 주먹씩 놔 먹으면 좋지야,
너그 누님집에는 어떻게 빈 손으로 간다던?“
듣고 보니 어머니 말씀이 딴은 맞는 말씀이다.
콩이니 깨니 하는 것은 팔아 한 번 돈써 버리면 허망하지만
가을이 되면 들깨밭 들깨는 제 홀로 노랗게 익겠지.
들깨 냄새 맡으며 잎도 파고 베어눕히고
또 터는 일은 저도 좋아합니다.
녹두 낭아와 드문드문 섞인 반식기 쥐눈이 콩밥은
참 맛이 있지요.
하기사 농사지어 돈 벌려는 생각은 않해 봤으니
그럼 이제는 좀 쉬었다가나 합시다.
문화가
「한국의 흙·불」공동창작작업
한국의 흙과 불에 담긴 도전과 희망
‘흙과 불’은 인류에게 미래에 대한 도전과 희망을 의미하며 새로운 창조를 대변해왔다. 한국의 흙과 불이 가지는 도전과 희망은 무엇일까?
8월1일부터 12일까지 열린 ‘97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기념 국제 조각·도예 공동 심포지엄은 외국작가 26명, 통역작가 8명, 국내작가 104여 명, 작업조교 1백 60여 명 등 연인원 3백여 명이 넘는 수가 참여한 유례없는 공동창작 축제의 마당이었다.
한국의 흙·불전 공동심포지엄은 조각과 도예, 지역과 지역, 국가와 국가간의 경계를 넘는 화합과 이해의 공동체 의식을 끌어내는 공동창작 생활을 통해 한국 조각·도자 예술의 진면목을 발휘하고 환경도자조각예술의 새로운 문을 여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지난 2월과 3월간 초대 작가 참가 신청과 최종확정을 통해 선정된 국내외 조각·도예가들은 지난 8월 1일 원광대학교 기숙사에 각각 입소를 마치면서부터 황등작업장과 숙소를 오가기를 꼬박 열이틀. 아침 8시 20분에 작업장으로 출발해 오전 작업과 오후 작업이 끝나고 버스가 돌아오는 시간은 저녁 6시 20분, 저녁식사 뒤엔 작가들간의 자유로운 토론시간이 있지만 심포지엄기간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적지 않은 수의 작가들이 작품 완성을 위해 작업장에서 밤을 새기도 했다.
경기장 트랙 모양의 대형 가마를 중심으로 가마 내부 140여 평과 외부 공간 700여 평 등지에 설치된 작업대에서 땀과 열정으로 빚어진 작품들은 이미 소성(굽는 과정)을 위해 건조 과정에 들어가 있다. 11박 12일동안에 완성된 크고 작은 작품 250여 점이 13일부터 조심스럽게 가마 안으로 옮겨져 제자리를 잡고 건조와 소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부 초대형 작품들은 가마 입구가 작아 외벽 일부를 헐어내고서야 내부로 들여놓을 수 있었다.
이번 국제 조각·도예 공동 심포지엄 및 기념전에 초대된 작가들은 심포지엄기간 동안 제작된 작품을 1점에 한하여 한국의 흙·불 운영위원회에 기증하게 되는데 건조와 소성과정을 거쳐 11월까지 무주U대회 야외 전시장에 설치된다. 무주전시는 12월 20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70일간 전시된다. 개장과 동시에 이틀 동안은 참여작가들이 다시 모여 한국의 흙·불전에 대한 국제 심포지엄을 연다. 대학인들의 겨울 축제 기간동안에 또 하나의 조형예술 축제의 주인공이 될 이 작품들은 U대회 전시를 마치고 그런 크로스 전북지역본부가 익산 금마 국민관광 휴양지(미륵산 입구)에 조성할 예정인 환경조형예술공원에 옮겨져 상설 전시되면서 영구보존된다. 아직 건조과정에 있는 미완성 작품들이 거쳐야 할 단계는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또한 이번 공동심포지엄은 동계U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함과 동시에 장기간의 방치로 훼손 일로를 걷고 있는 성광요업 대형가마의 새로운 보존과 활용 가치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말엽에 지어져 80년대까지 벽돌을 생산해온 성광요업의 가마는 너비 2.8m, 높이 2.32m, 길이 170m의 호프만식 대형가마로 내부에 들어서면 잘 다듬어진 대형 동굴을 연상하게 된다. 해방과 함께 국가재건, 국토개발, 경제발전으로 이어지는 우리 현대사의 작은 부분을 담당했을 이 가마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전력과 규모를 가지고 있다. 가마가 10여년 전부터 방치되면서 ‘또 하나의 우리의 모습’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조각가와 도예가들이 지역 문화예술의 새로운 터전으로 되살릴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해 오늘의「한국의 흙·불」공동심포지엄 및 기념전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작업기간 동안 도예가 메어리 뢰타이저(미국 보스톤, 이화여대 교환교수)는 “이러한 가마를 헐리게 놔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슬픈 일이며 이는 당신들의 역사가 아니냐”고 역설하고 미술관 혹은 관광 자원으로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2개월간의 건조기간에 이어 작품완성에 가장 중요한 불작업(소성과정) 그리고 수정, 운송·설치, 도록 제작, 무주 전지, 환경조형예술공원의 상설전시 등 아직 많은 손길과 지원이 필요한 상태지만 동계U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고 스포츠 축제와 함께 조형예술의 대축제가 될「한국의 흙·불展」은 이 지역 문화예술적 토양에도 커다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북서예 어제와 오늘」전
세계 속의 전북을 위한 다지기
예향 전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이러한 전시회가 있을 수 있으니 다행한 일이었다.
작게는 지방자치 시대에 예향 전주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받쳐 주는 차원에서 서예라는 특징적 예술을 가질 수도 있고 크게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따른 문화의 획일화에서 벗어나 독특한 문화로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예향 전북이 아무런 특징도 없는 말만의 예향이 된지도 오래이며 그 어떤 예술 분야도 서울에 집중되는 현실에서 이를 벗어나기 위한 작으나마 뜻이 깊은 기초 작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예가 안고 있는 무서운 혹이 필기도구로서의 서예를 구별하지 못하는 일부 서예가와 다수의 대중이라 할 수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러한 혹을 떼어 내지는 못했음을 볼 수 있다.
전북 출신으로 국전 초대 작가급 이상이라는 작가 선정의 기본틀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또다른 가능성에 대한 시도를 약화시키는 요소가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가 세계속의 전북을 향한 정리와 다지기 즉 준비의 의미에 비중을 둔다면 앞으로의 전시는 보다 진보적이기도 할 것이며 서예를 통한 차별화 또는 서예를 통한 세계화를 추구하고 있는 주최측의 당찬 계획을 보면 이러한 문제점은 일시적 장애일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또한 대부분의 관객들이 서예에 있어서 어제와 오늘의 의미를 형식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 구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작가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단순한 문자를 통한 예술인 까닭에 극복할 수 없는 서예의 한계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시대의 삶에 어울리는 생활 속의 서예도 필요하고 삶에 응용된 서예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계속된다면 모든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속의 서예로 우뚝 설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어제와 오늘전은 분명 내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보는 글씨 읽는 그림」전
현대 서예의 대중화, 그 실험의 세계
서예의 현대화와 예술적 창의력을 새로운 실험의식으로 발휘해온 서예가들의 모임인 한국현대조형서예가협회(이사장 이용)가 「보는 글씨 읽는 그림전」을 8월 3일부터 24일까지 열었다.
현대 서예의 대중화를 위해 기획력을 모아낸 이번 전시회는 7월 11일부터 시작된 서울전과 대구전에 이어진 세 번째 자리. 전통 서예의 바탕과 정신을 중시하면서도 일정한 ‘틀’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모색해온 작가들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서예의 조형성과 독자적인 미학을 현대예술의 영역에서 어떻게 확보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모색하고 그 방향을 제시했다. 참여작가는 전국 각지에서 활동 중인 56명, 대부분의 회원들이 한국 서단에서 돋보이는 역량으로 탄탄한 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작가들이다. 전통 서예의 바탕을 튼실하게 다져내면서도 서예의 현대적 창출 작업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이들은 문자예술의 조형성 확보와 미학을 다양하고 신선한 감각으로 표출해낸 작품을 선보였다.
지난 91년 창립한 이후「墨에 의한 탈 장르전」을 비롯한 주제전과 대한민국 현대서예대전 등을 개최하면서 현대서예의 인식을 확산시키고 발전시키는 작업을 주도해온 한국현대조형서예협회의 올해 작품들은 한국 현대 서예의 가능성을 넓히는 결실들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순한 형태 변화와 변용으로부터 한 걸은 더 나아간 조형세계와 미의식들이 돋보이는 이번 작품들은「보는 글씨 읽는 그림」이란 주제를 분명하게 이해시키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에의 표현들로 관객들을 현대서예의 세계로 안내했다. 글씨와 그림의 한계를 창의력으로 극복한 언어들이 주는 새로운 감동이 이색적인 이번 작품들은 특히 중견,청년서예가들의 미의식을 통해 한국서예의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산민(山民) 이용(李鏞)이사장은 “미의 가치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천하듯 서예의 가치 변화는 곧 시대적 요청이다”며 “자유로운 창의성으로 천진성을 담아내고자한 회원들의 이번 작품들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문자의 조형성이나 묵법에 눈을 뜨게 됨으로써 원시로의 본질적 회귀라는 대명제앞에 다시 서는 정신의 표출이다”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에는 강철희·곽정우·김문식·김병규·김보성·김선기·김성길·김연희·김인청·김지섭·김찬호·리홍재·석순기·석용진·손인식·손호근·송동옥·송현수·송홍범·신수자·안종중·양택동·여태명·위성민·유경식·유수종·윤점용·윤환수·윤효석·이경숙·이계자·이병남·이영래·이원동·이용·은혁·이종균·이창수·이철우·전경택·전종구·전찬덕·정양호·정판기·정현식·조명웅·조사형·조용희·진영근·최문규·현병창·황석봉·황성순 씨등이 참여했다.
국립전주박물관 용담댐 수몰지구내 고인돌 유적 발굴
청동기 시대 고인돌 문화의 복원
국립전주박물관 학술조사단(안승모 책임조사원)은 지난 2월 26일부터 3개월동안 발굴 조사한 적 있는 진안군 안천면 일대의 발굴조사를 8월5일부터 3개월간 다시 시작했다.
진안군과 전북대학교 박물관의 의뢰를 받아 재개하는 이번 발굴조사 지역은 용담댐 완공으로 수몰되는 곳으로 해안·평야지대와는 다른 내륙지방 고인돌문화의 독특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안천면 일대의 고인돌은 전북에서 정식발굴된 첫 유적이라는데 또하나의 큰 의의가 있다.
2월 26일부터 5월 25일까지 3개월동안 발굴 조사된 안천면 삼락리 안일대에서는 22기의 고인돌과 함께 붉은간토기, 민무늬토기, 돌검, 돌살촉, 반달돌칼, 숫돌, 대롱옥 등의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전북지방은 고창군 내의 8천기가 넘는 고인돌을 비롯해 남원·임실 등 동부산간 지역에서도 고인돌이 발견되는 등 고인돌의 보고(寶庫)로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지만 그동안 정식 발굴된 고인돌이 거의 없어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고인돌 문화를 복원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이번 발굴의 재개가 부족한 전북지역 청동기시대 문화의 체계적 연구와 함께 수몰지구 내의 고인돌 등 주요 유적의 구체적 이전 복원으로 도내 문화·교육적 전체성 찾기에 도움을 줄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특별좌담
지방화 1년, 지역문화 어디로 가고 있나
참석자
김용택(시인)
김은정(편집위원·전북일보 문화부 기자)
박병도(전북도립국악원 국악장)
송만규(화가)
유기하(전주문화방송 기자)
윤덕향(운영위원·전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이규현(KBS 전주방송총국 PD)
사회 이종민(편집위원·전북대 영문과 교수)
정리 원도연(문화저널·편집장)
일시 1996년 8월 9일(금) 오후 6시
장소 전주 우진문화공간
이종민 안녕하십니까. 저희 문화저널이 9월호로 통권 100호를 맞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 것도 100호를 기념해, 여러 선생님께 축하받고 문화저널이 그동안 해왔던 일에 대한 평가도 듣고 또 한편으로는 지방자치제 1년을 넘긴 이 시점에서 지역문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고자 하는 뜻에서 입니다.
오늘 주제는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과 우리의 문화 상황이 되겠습니다. 우선 편집부에서 준비한 전북도의 문화정책에 대한 개괄을 듣고 지역문화란 말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원도연 지난1년 민선지방정부가 내세운 문화정책의 핵심은 전북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라북도는 민선지방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체성 회복을 위해 이른바 ‘자랑스런 전북만들기’라는 캠페인의 성격이 짙은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쳤습니다. 자랑스런 전북만들기 사업과 함께 또 한가지 전라북도 문화정책의 특징은 세계화 전략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북도가 지방정부 1년을 지나면서 21세기 3대전략 50대 사업이라는 것을 밝혔는데 여기서 3대 전략은 첫째 세계로 뛰는 전북경제, 둘째 선진수준의 사회복지 추구 셋째, 전북인·전북문화의 국제화라는 전략속에 전북도 문화정책의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셈입니다.
이종민 도의 문화정책을 보면 우선 개발중심적 전략이라는 느낌이 짙군요. 어쨌든 우선 오늘의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현재 상황에서 지역 문화라는 개념이 유용한가 혹은 타당성이 있는가라는 문제를 검토해보기로 하죠.
요즘의 상황을 보면 문화의 홍수시대 라고 이야기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이제 정치의 시대는 가고 문화의 시대가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흔히 보면 문화적 환경이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이 되고 또한 TV 등 전파매체가 갖는 위력 때문에 우리들 정서 자체가 획일화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지역문화를 어떻게 바라 보고 평가해야 할까요.
지역문화란 살아있다는 것의 증거
이규헌 지역문화란 그 지역에 있는 사람의 살아있음, 즉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음으로써 당연히 추구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문화예술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 문화란 살아있다는 것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역문화란 지역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그 자체가 아닐까요?
이종민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일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내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지역문화의 타당성 혹은 유효성은, 크게는 지방자치의 필요성, 작게는 지역언론의 유효성과도 연결될 수 있을텐데요.
유기하 지역방송의 경우, 로컬 프로그램의 편성비율이 낮으면 낮다고 비판합니다. 그래서 로컬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면 또 사람들은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 대해 누가 옳고 그르냐를 말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봐요. 지역문화 역시 그런 딜레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정보화 시대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고, 또 일본사람들이 많이 쓰는 용어 가운데 정보발산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보 혹은 문화의 수용도 꼭 중앙으로부터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방송이나 문화 역시 바꾸어 생각하면 얼마든지 지역성을 살릴 수 있지요.
김은정 문화가 삶과 언어와 모든 것의 총합체라고 할 때 거기에는 공간적인 문제도 있고 시간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시대의 문화 그대로를 가지고 지금 시대에 살 수 없듯이 공간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의 문화를 전라북도에 살고 있는 우리 삶의 한 양식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요. 이 지역의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땅의 정서나 문화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삶의 언어가 있기 마련이고 바로 그 지역적인 고유성으로부터 창출되는 문화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존중되어야 하지요. 우선은 서울문화와 지역문화가 이중적이고 배치되는 가치로서가 아니고 각각의 고유한 문화가 가지는 시간과 공간을 따져야 하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중앙과 지방이라는 문제에 자꾸 빠져들곤 하거든요.
김용택 지역문화가 모여야 그 나라의 문화가 되는 것이고, 그 나라의 문호가 모여야 또 세계문화가 되지요. 지역문화는 분명하게 있지요. 그것이 또 한나라의 문화의 바탕이 되는 것이구요.
이종민 자본주의 사회는 문화생산자와 수요자들 사이에 항상 전문화와 분업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문화예술조차도 생산자와 수요자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전 시대에 일과 놀이가 하나의 문화로 어우러졌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문화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시간과 문화를 즐기는 시간이 따로 배치되고 일터를 떠나서 어느 일정한 공간으로 가야하지요.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를 생산할 수 있는 자본의 힘이 열악한 지역의 경우, 자본력에서 우세한 중앙문화에 의해서 지역문화가 위축될 수도 있고 지역문호가 낮게 평가될 수 있는 우려도 있을 수 있겠는데요….
송만규 우리의 역사는 식민지 시대에는 일제에 의해서 단절과 왜곡을 겪어왔고, 해방된 이후에는 군사문화나 독재문화에 의해서 아래로부터의 지향이 단절되고 마비되어 왔습니다. 지역문화의 경우도 중앙집권적 형태로 흘러왔던 것들이 90년대 이후에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비로소 지방이 어떤 독자성을 갖고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그 지역의 독특함을 끌어내고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습니다만, 이제는 UR이라는 더욱 강력한 장애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국가가 형성하고 있던 전통과 문화라는 것들이 공존하면서 지구촌을 형성해 왔는데 이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UR 이후에 문화와 경제를 같은 재화로 놓고 보기 시작하면서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의 파시(波市)로 형성되지 않을까 그런 우려를 갖게 됩니다. 한 나라로 보자면 그 나라의 독특한 전통과 역사성을 가진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들이 그런 것들에 대항할만한 문화라고 볼 수 있겠고, 그것을 협의적 차원에서 보자면 지역은 지역대로 지방정부가 형성되었든 안되었든지간에 나름대로 삶의 현장에 끈끈하게 묻어있는 땅과 거기에 스며있는 향기를 일구어내고 변화, 발전시켜나가는 지역문화의 역할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시 그런것들이 또한 전통적 지역문화가 갖는 재부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김용택 저도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데요. 예를 들어서 전라북도의 문화적 특색이 뭔가를 보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고 또 오늘날 많이 활성화 되어있는 국악 또는 판소리가 아니겠습니까. 그것들은 결국 농경문화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문화 형태를 바탕으로 생성된 것이랄 수 있겠는데요. 그것이 오늘에까지 생명력을 얻고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재창조되고 또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놓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지역문화가 아닐까요. 따라서 이러한 자산을 살려내는 노력이 아까 송만규 씨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UR이라는 거대한 세계화의 흐름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것만이 그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우리가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세계적인 것을 만들수는 없잖아요. 예컨대 우리가 가지고 있던 판소리의 문화는 우리만이 발전시킬 수 있고 우리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럴때 지역문화라는 것이 보편성을 획득하고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지요.
지방자치 1년, 지역 문화행정 1년
이종민 지역문화의 소외는 문화가 하나의 통치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분업화나 전문화와 연관이 되겠습니다. 어쨌든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지역문화의 활성화에 대한 많은 기대가 있습니다. 우리가 뽑은 민선지방정부가 문화정책을 입안할테니까 뭔가 구체적이고 지역민들의 정서에 합당한 지역문화가 활성화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속에 1년이 지났습니다. 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지역문화의 현황은 어떤가를 이야기해보지요.
유기하 민선자치단체장 취임 이후 지역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평가한다는 것이 아직은 좀 이르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도청을 출입하면서 지방자치 1년 특집 평가를 얼마전에 했는데, 지난 1년을 놓고 지방자치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조금 무리스럽지 않은가 싶어요. 변화를 요구하기에는 1년은 너무 짧은 기간이 아닌가요. 예를 들어 예술회관같은 문제도 지금 이야기 하기에는 진도가 너무 안나갔고, 문화정책이 지방자치의 틀안에서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기도 어렵지요.
김용택 분위기가 어떤가 하는 정도가 되겠지만 저는 그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은정 그렇지요. 그런데 너무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과 이번 1년을 비교해보면 지난 10년동안 이루어졌던 것보다 훨씬 큰 변화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지자체가 우리에게 이러게 무서운 급류와도 같구나 실감했는데요, 다른 부분 정치, 경제 같은 부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90년대가 지니는 의미는 무척 크잖아요. 지자체 출발 1년의 성과라는 표현 보다는 그 시작이 갖는 의미와 방향 이런 문제들을 충분히 가늠하고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기하 민선단체장 출범 이후에 가장 중요한 행정의 변화로는 어제(8월 8일) 내무부장차관 회의에서 5개 시도에 문화관광국 신설을 허가해준 일이겠는데요. 제가 오늘 토론을 위해서 문화예술계에 들러서 각 시도별 문화예술 예산현황을 뽑아보았는데, 거의 1조에 가까운 전체 도 예산 가운데 3억을 약간 넘기는 정도, 그러니까 대단히 미미한 정도에 지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제 민선지사 취임 이후에 많이 변했다고 이야기 하고 또 문화관광국도 신설되었으니, 앞으로 예산도 많이 늘어날 것 아닙니까 했는데 막상 담당자들은 그렇게 큰 기대는 아직 하지 않는 분위기에요. 문화관광국 역시 우선 기구만 만들어 놓았지 실제로 거기서 무엇을 하고 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확신을 갖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송만규 제가 느끼기에도 아직은 가시적으로 큰 변화가 왔다 이렇게 체감되지는 않아요. 이제 일년이 조금 지났는데 지자체가 들어오는 초기 단계 아닙니까. 지금 시기는 뭔가 장단기적인 계획이 없이 누가 지원 요청하면 들어주고 또 이게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속에서 예산이 투입되고 이런 식의 가시적인 사업들이 펼쳐지는 단계가 지금 아닌가 생각되요. 아까 처음 이야기하면서 전북도가 21세기를 내다보면서 계획을 세웠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지금 지사나 시장 각 단체장들이 임기중에 실현시키지 못할지라도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을 완벽하게 만들어 낸다면 이후 지역문호가 탄탄하게 세워질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이규헌 저는 지방자치제 1년과 연관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치가와 행정가는 심리적으로 업적 위주지요. 투자되면 효과가 나야하고 반응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문화예술은 투자를 해도 잘 보이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당분간 지방정부가 문화예술쪽에 많이 투자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해결방법은 문화예술인들이 앞서야 합니다. 문화예술인들이 뭔가를 만들어내고 행정에 요청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춘천에 10년 동안 있다 왔는데 춘천인구가 20만이 못됩니다. 그런데 이런 도시에서 국제 인형극축제를 합니다. 인형극축제를 하는데 시가 먼저 앞장서서 하지는 않아요. 거기 연극하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하지요. 선진국에서처럼 문화가 곧 경제다. 또는 <쥬라기 공원> 한편이 자동차 150만대를 판 수익과 맞먹는다랄지 뭐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저는 당분간은 문화예술쪽이 뭔가 기획을 하고 그 사람들이 단합을 하고 만들어내고 요청을 하고 그래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도연 그런 과정이 정상이라고 보는데요. 지난 1년 동안 도는 상당히 많은 일에 앞장을 서왔지요.
이규현 민선지방정부의 의욕이 넘치는 경우가 꽤 있었지요. 어쨌든 도지사가 살아있다는 증거 아닙니까.(웃음)
문화예술 전문관료가 필요하다.
박병도 당장의 성과를 내다보는 에드벌룬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아직은 관에서 주도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런 정체적 기획들이 어떤 목적으로 어디서 나오고 있으며 실현 가능성에 대한 타당성은 조사가 된 바가 있는지, 또 이런 것들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정책적 모토가 내세워져 있다면 그것에 대한 주위 여론이나 공청회는 거친 바가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울러, 지방정부가 문화예술 파트에 지원을 할 때 그런 일들은 어떤 채널을 통해서 진행되는지, 그리고 그 지원의 구체적 진행상황은 어떤 그라프를 그리고 있는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김용택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대로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정책화시키는 팀이 대개 어떤 분들이 있나요.
유기하 바로 그점 인데요. 제가 이번에 취재를 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확인했는데, 담당계장이나 문화예술계 행정 공무원들이 그런 일들을 맡는 것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요. 그런데 세계소리축제라는 행사는 봅시다. 지금 준비되고 있는 서예대전이나 소리축제 이런 행사들이 모두 기획단으로 모인 행정 공무원들이 서둘러서 하는 일인데,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교육청에 출입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현재 도교육청에 있는 장학사나 장학관들이 실제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이미 자식들이 대학교를 졸업했다거나 시집,장가 다 보낸 사람들이거든요. 교육현장의 문제들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요. 지금 제 아이가 중학교, 국민학교 다니는데 저는 실제로 문제를 피부로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청 장학사나 이런 사람들은 젊은 40대나 30대로 해야한다 이렇게 이야기 했었는데, 문화정책 역시 마찬가지라고 봐요. 실제 문화예술에 관한 행정을 도에서는 예산집행만 하고 이것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선정되어야 제대로 효과가 있을 것이예요.
김용택 그렇죠.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아요.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관리들이라는 사람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잘못된 관행과 분위기속에서 안주해왔다고 봅니다. 이번 도에서 내놓은 자료도 군대식으로 도표화되어 있고, 사고의 범위가 너무나 좁아요. 문예에 대한 인식이나 문화 전반에 대한 종합능력도 없고 제가 보기에는 이런 식으로 문화정책을 입안하다 보니 정작 바람직한 성과는 가져오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때문에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정책화한다고 했을 때는 전문인 집단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이 직접 입안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조언을 들을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정책 나오는 것을 보면, 그게 없고 그냥 자기들이 앉아서 만들어내다 보니까 너무 얄팍하게 되지요. 그런 것이 너무 많이 보여요.
윤덕향 지금 말씀하신 중에 근본적으로 정책의 문제다 이런 말씀인데, 여기 도에서 나온 두권의 책자를 보면 이것은 정책이 아니라 문화행사 기획안이지요. 문민정부가 되었다 어쨌다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문화정책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 있는가 싶어요. 정부 자체가 정책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지방정부 역시 마찬가지로 정책을 고민하고 그 방향을 연구하기보다는 문화행사에 대한 계획만 있지요. 도에서 이제 문화관광국을 신설하고 그 앞에 ‘문화’자가 들어갔습니다만 그것 역시 어떻게 운영될지 걱정이 됩니다. 지방정부 역시 그 정책을 어떤 식으로 잡아나갈 것인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한 논의도 없이 문화행사만을 연구하고 도에서 문화관광국을 신설했지 않습니까? 혹시 문화관광국의 궁극적인 목표가 관광정책이라든가 관광행사를 위한 것은 아닌지, 문화는 단지 그 앞에 수시거로 들어간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원도연 중요한 것은 문화예술인들와 정책입안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봅니다.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어떻게든 지사나 시장만 만나려고 하고 또 단체장들은 여러 가지 경로로 얻어진 정보들에 대해서 그것을 판별하는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지요. 그럴 때 관료조직이 기능을 다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는 거지요. 일선에서 문화행정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관료들이 정보를 종합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또 지사가 그들의 의견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조건에서 문화정책의 핵심은 어떻게 그같은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민주적으로 가져갈 것이냐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요.
윤덕향 아까 이종민 선생님도 문화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문화라는 것이 어떤 행사나 공연을 말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 것만이 문화라면 한국문화도 필요없지요. 미국문화를 옮겨다 놓으면 되지요. 또 아까 김용택 선생님 말씀하실 때 문화관료들이 히트쳐서 좋은데로 가겠다는 생각이다 하셨는데, 그 사람들은 히트쳐서 좋은데 갈 생각은 아닙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지금 문화를 기획하거나 행사를 주도하는 문화팀의 경우는 재수없이 밀려와서 그 자리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시간만 지나면 가면 됩니다. 히트칠 생각도 않고, 사고 없이, 거기서 더 나쁜 곳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어쨌든 시간만 채우고 다른 곳으로 가면 그것은 영전이니까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문화예술이라는 분야에 대한 행정공무원들의 인식은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어떤 요구가 있어서 요청을 한다해도 대부분 수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은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까 예를 들어주신 춘천이나 전남의 경우 가능한 수용하겠다는 자세라고 갖고 있어서 우리보다는 훨씬 교감이 있지요.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의욕을 가지고 있지 않고 주변에서 어떤 안을 제시했을 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수용하겠다는 의지 자체도 극히 빈약한데 어떻게 문화행사가 제대로 설정될 수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문화정책이 입안될 수 있겠습니까. 이 부분에서 저는 문민정부 이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예컨대 춘향제의 경우 관주도에서 벗어나서 민간으로 넘기겠다 이렇게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을 기획하는 공무원들의 경우 이러이런 것들은 해야하고 또 하지 말아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전라북도에서 향토축제라는게 똑같아 지지요. 미스 춘향 뽑고, 미스 고추장 뽑고….
문화예술인과 문화정책의 관계는
이규현 그 말씀에 공감을 하는데 언뜻 생각하니까 쉽게 말해서 건설쪽의 경우 인기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돈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인기가 있거든요. 그런데 문화예술의 경우 돈이 없지요. 거기에 가면 그림이라도 한 장 잘 얻을 수 있다 그런 소문이라도 났다면 좀 다를 수 있을텐데.(웃음)
이종민 그대도 조금은 안바뀌었을까요. 지방자치제 전과 지금을 놓고 보면.
유기하 저는 어쨌든 문화정책이든 문화행사가 되었든 현재 자치단체장들의 의지는 상당하다고 봅니다. 문화진흥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는 얘기입니다.
윤덕향 물론 저도 비관적으로 생각을 않고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뭔가 비판을 했는데 대안을 제시한다면 예컨대 제도적인 장치 같은게 마련되어야 합니다. 관료들이 이것 저것 다 감독하려고 하지 말고 어떤 기획에 대한 목표나 의식을 확실하게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화기반사업이 절실하다.
박병도 어쩌면 행사로 보여지는 것들 또는 행위로 보여지는 것들 모두를 문화라고 단정짓기는 좀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 안목의 문화적 토양의 형성이 더 시급할 것입니다. 바탕없는 진보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회간접자본처럼 문화의 기간산업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의 하부구조라고 하는 문화인프라(Infra)에 먼저 눈을 돌려야 한다고 봅니다. 창작행위의 충돌현상은 자연적이어야 합니다. 자연스레 일어나고 도태되고, 그러면서 문화구성의 역학적 관계가 자리를 잡아 가는 것인데, 문제는 시민정신의 총화처럼 문화에 대한 장기적인 목표설정이 하드웨어 쪽으로 심도 있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이규현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선 필요한 것은 관심었는 사람들이 빨리 모아지고 거기서 어떤 안이 나오는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