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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8 | [특집]
농촌의 위기, 문제는 경쟁력이 아니다
문화저널(2004-02-12 12:08:05)
농촌과 농업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정부의 자만과 방심으로 마침내 쌀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문제의 심각성을 안식한 정부는 서둘러「쌀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농민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문제의 심각성을 커다랗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국민소득 만불시대에 농촌은 버려진 땅인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신농정이 엘리트 농업이라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펼쳐지고 있을 때 농민들과 농업학자들은 조만간 쌀부족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애견하고 있었다. 거기에 농민들은 통일 이후에 대비하는 쌀농사의 조건들을 따지면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쌀은 여전히 안전한가. 문제는 한국의 농업을 어떤 태도로 바라볼 것인가에 있다.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이른바 선진국형 신농정은 벌써부터 실패의 조짐을 보이고 있고, 농촌은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다. 농민들은 “농촌에 대해 치밀하고 조직적인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농촌은 황폐화되어 마치 거대한 종합병원이 되어있다. 어느 한곳 성한 데가 없이 무너져 가는 농촌이 이번 호 특집으로 주제이다. 버려진 집들은 물론이고 벌써부터 버려진 땅들이 농촌 곳곳에 보이고 있다. 그 버려진 땅들을 보고 우리는 본능적인 아픔을 느낀다. 그 땅들은 성장의 모태였고, 우리들 존재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고, 또 잊고 싶어한다. 그들의 고통에 눈감고 있던 사이에 오늘의 농촌에는 사람이 남아나질 못했다. 사람이 없는 농촌은 그 존립의 기반을 위협받는다. 그리고 그 존립의 기반이 무너지는 날, 우리는 무서운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그 조짐은 현실화되고 있다. 농가인구와 경지면적의 지속적인 감소, 경쟁력에서 월등하다던 외국쌀의 가파른 쌀값 상승은 그동안의 정부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묻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21세기의 미래형 선진농업이라는 장미빛 프로잭트가 아니라, 농민들의 희망이다. 그 희망에 기대지 않는 정책은 21세기 한국 농업을 회생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 이번 특집의 첫 번째 글은 한국 농촌의 문제와 쟁점을 개괄적으로 점검해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글은 최근 발표된 정부의 「쌀 종합대책」에 대한 평가로 전북대 양병우 교수가 점검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 글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 농민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호응을 바란다. 농민이 무너지는 날, 우리의 삶과 터전도 무너진다. 글/원도연 「문화저널」편집장 쌀농사를 버려라! 지난 7월 22일자 조선일보는 1억6천만원의 연소득을 올리는 군산의 한 농부의 이야기를 ‘농촌도 기회의 땅’이라는 제목으로 실어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다음날 전북지역의 쌀 전업농 1천5백66명 가운데 77명은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식용쌀의 수입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전업농 자격을 집단 반납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7월 23일자 한겨레 신문은 ‘쌀농사만 지으라더니 쌀 수입’이라는 제목을 붙여 94년 전업농으로 지정된 한 농부의 쌀포기 선언을 실어 본격적으로 쌀 논쟁의 불을 지폈다. 쌀논쟁의 제2라운드는 곳곳에서 벌어졌다. 어느쪽이 진실에 가까운가. 모든 열악한 조건을 딛고 쌀농사 하나로 일구어낸 인간승리인가, 아니면 ‘힘들여 농사 지어봤자 생산비도 못건질 판’이라는 전업농들의 극잔적인 저항인가. 과연 쌀농사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지니고 있는 걸까. 이틀을 사이에 두고 보도된 두 개의 엇갈린 사례는 한국 농업의 상반된 전망을 기묘하게 대변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언론이 선호했던 인간승리의 드라마(성공하는 농민의 사례)들은 과감하게 ‘쌀을 포기’했다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지난해 전남도지사는 정부의 수매체 축소에 맞서 심지어 한국 농업의 살 길은 수출농업이며 따라서 쌀농사가 수지가 안맞으니 전남은 쌀농사를 포기하고 모두 특작으로 전환하겠다고 정부에 엄포를 놓기도 했다. 수지가 안맞으니 쌀농사를 버리겠다는 발상이나, 농협과 정부기관들이 공들여 뽑아준 성공사례들은 모두 경쟁력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경쟁력 개념으로 본다면 한국의 농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농사짓는 농민들과 의식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오늘의 경쟁력 사회는 농민들에게 ‘쌀을 버려라!’고 힘차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경쟁력, 김영삼 정부 최대의 히트상품(?) “저의 경쟁상대는 덴마크 농민입니다.” 세계화 담론이 한동안 대히트를 치고 있을 때 TV와 시내버스 광고판을 장식했던 세계화 광고의 카피는 화려했다. 그 세계화 광고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었지만 견고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억대의 소득을 올리는 농민들이 김제, 철원, 익산 등의 대평야 지대에서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들의 특별한 삶은 보편적인 타당성을 갖지 못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농민들이 땀흘려 일한다고 해서 성공을 거둘수 없다는 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가 생생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한국의 농민들에게 있어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덴마크 농민이 아니라 정부정책과 정치였다. 한국 농촌의 위기야 근대화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던 문제이지만, 지금 한국 농업에서 가장 치열하게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94년 정부가 발표한 6·14농어촌발전대책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내놓은 농어촌발전대책의 정책목표는 바로 경쟁력 강화에 있었다. 농업에 있어서 시장원리를 도입하고 구체적으로는 소수의 정예화된 농민들로 최대의 성과를 얻어내겠다는 이른바 선진국형의 야심적인 농촌 프로잭트였다. 정부측의 입장이 경쟁력에 포인트를 맞추는 것이었다면 농민들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농민들이 내세웠던 것은 첫째는 농업이 국민들에게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농민 소득을 적정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농민들의 문제인식은 궁극적으로는 식량안보와 무너지는 쌀 농가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입장은 지금까지는 한국농업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대립점이 되어 있다. 농촌, 수탈과 배제의 역사 한국사회에서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농촌은 산업화를 뒷받침하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왔다. 경제성장의 방향을 제조업 중심의 2차산업으로 설정한 이상 농촌은 끊임없이 산업인력의 저수지가 되어왔고, 수출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생산비 절감의 마지막 화살은 농민들의 희생을 담보한 저곡가 정책이었다. 수출한국의 빛나는 명예의 뒤안에서 농민들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번번히 밀려났다. 도시로 돈벌러 떠난 자식들 논팔고 소팔아 뒷돈 대주느라 바빴던 농민들의 한맺힌 스토리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떠나는 농촌’은 산업화 정책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단적으로 1960년 1백70만이었던 전라북도의 농가인구는 80년대들어 1백만 이하로 줄어들었고 95년에는 48만 명으로 떨어졌다. 60년에 비해서 72.1%의 인구가 농촌을 떠난 것이다. 산업화 우선전략 속에서 정부는 농가인구의 감소를 정책적으로 유인 또는 방조했다. 정부는 공공연하게 1차산업의 농업인구를 전체의 10% 이하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대신 덕지덕지 붙어있는 논과 밭은 끝이 보이지않는 드넓은 대평야로 바꾸고, 최첨단 농기계로 무장한 소수정예의 농업인력들이 그림 같은 대저택을 짓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선진국형 농촌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꿈이었다. 90년대 들어 우르과이라운드로 농민들이 생사를 걸고 투쟁에 나서자 정부는 결과적으로 더욱 강력한 엘리트 농업정책으로 맞섰다. 농민들의 투쟁과 확산되는 농촌의 위기의식 속에 정부는 대통령직속의 ‘농어촌발전위원회’를 설치하면서 97년 6월 14일에는 ‘농어촌발전대책 및 농정개혁방안’을 확정했다. 이 정책의 핵심은 농업의 수출시장 확대를 목표로 하는 경쟁력 강화에 있었다. 전문적인 농어가 10만호를 2004년까지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여 기업적 경영기법을 도입케하고, 농지소유 상한선의 폐지와 자격완화를 통해 농업의 규모화를 이루어 현재의 난관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98년까지 42조원을 투입하여 구조개선사업을 펼치고, 농어촌특별세를 신설 10년간 15조원을 농어업경쟁력 강화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농촌의 위기는 어쨌든 한국농업을 다시 변화시키고 있었다. 누구를 위한 농정개혁인가 94년 농어촌발전대책이 발표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성과는 어떻게 평가되고 있을까. 정부에서는 “WTO출범 등 변화된 여건에 대응하기 위해 농지, 양정, 협동조합, 시장유통제도를 개혁하는 등 농정의 새로운 틀과 장치를 마련”하는 획기적인 농정의 변화를 이루어냈다고 자평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과 농민들은 정부의 정책이 명백하게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정부가 농업정책을 농촌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경쟁력 개념에서 접근함으로써 농민들의 현실적인 요구와 맞아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농정의 목표와 수단이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장원리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시행에서는 농민의 자율권을 묶는 규제가 오히려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쌀자급 실패와 식용쌀 수입결정은 정부의 전업농업정책이 완전히 실패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농어촌발전 대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문제가 먼저 짚어져야 한다. 농어촌발전대책의 핵심인 농지법의 제정은 농지취득조건을 완화시키고 농업진흥지역을 지정하여 농지제도의 구조개선을 노린 것이었다. 이 정책은 결국 영세, 생계농 보호위주의 소유제도를 질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현재의 영농 주체인 다수의 가족농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가능성 있는 땅은 자본을 중심으로 모으되 짜투리 땅은 과감하게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부는 전업농의 양성과 구조개선을 위해 42조원의 투융자를 98년 까지 앞당겨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문제의 이 42조 투융자는 실제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선 투융자사업이 정확한 현장검토와 장기적인 전망을 결여한 채 현장중심이 아닌 중앙정부의 지침에 따라 이루어지면서 사업자 선정과정과 집행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여기에는 지방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마인드와 자율성 부족, 그리고 취약한 재정 기반도 실패에 한몫하고 있었다. 또한 농지에 대한 이런저런 제한들이 풀리면서 비농가소유가 급증하고 이에 따라 경자유전의 원칙이 무너진 것도 불길한 조짐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예측되었던 쌀 부족의 문제였다. 마침내 쌀자급 실패로까지 농어촌발전대책이 발표되고 정부가 농지의 48%만을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할 깨부터 학계와 농민단체들은 쌀자급 실패를 예견했다. 또한 예견되는 쌀자급 실패 속에서 살의 민간유통 활성화를 통해 시장경제에의 적응력을 높인다는 정책도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정부정책의 핵심사항이었던 2004년 까지의 전업농 10만호 육성도 불발되어, 이제는 정부 스스로가 6만 호로 수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쌀자급에 관한 한 정부는 상당한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80년대 풍작이 계속되었고 90년에는 쌀재고가 1천 4백만 석이나 될 정도였다. 그러나 93년 수해를 거치고 지난해 가뭄과 냉해를 만나면서 올해 재고가 2박 78만 석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여기에 가을 이후 가파른 쌀값 오름세는 ‘쌀 과잉’을 염려하던 정부를 다급하게 만들었고,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현실화되면서 철썩같이 약속했던 식용쌀 수입불가를 스스로 철회했다. 마침내 정부는 지난 6월 14일 ‘쌀 종합대책’을 확정 발표하고 일련의 대책을 마련했다. 정부로서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고 농민들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정책변화였다. 버릴 수 없는 쌀, 개념을 바꿔라. 전북대 농경제학과 소순열 교수는 정부가 시행해 온 일련의 농업정책으로 부분적인 생산기반의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농업과 농민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소수의 전업농민을 위한 것이며, 결국은 자본의 이익을 위한 정책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어촌발전대책은 결국 농민들의 탈농을 권장하고 있지만, 사람이 없는 농촌은 심각한 문제를 낳을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정책이 계속되는 한 쌀 부족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쌀자급 실패와 함께 ‘식량안보’라는 개념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직접적인 소득이 전혀 없음에도 국방을 지키는 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듯이 농업과 식량을 지키는 데도 같은 개념이 적용되어야한다. 무작위적인 경쟁력 개념은 농촌의 피해뿐만 아니라 민족의 자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 가격경쟁력이란 국가가 농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지원하느냐에 달려있다. 농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생각하는 한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 농민들은 고단하다 중앙정부의 농정에 대한 치밀한 검토와 함께 지방정부의 역할도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중앙 정부가 농업 관련부서를 축소했고, 전북도는 유종근 지사 취임 이후 농정국의 규모를 대폭 감축했다. 그것이 농업에 대한 경시 때문이 아니라 할지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지자체 역시 중앙정부와 똑같이 농업을 경쟁력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수출농업의 기치 아래 지방정부는 농업을 지역사업으로 바라보고 있다. 문제는 중앙정부와 마찬가지로 지방정부 역시 농업문제를 지역주민의 이해와 관련시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적 규모에 맞는 적정한 단위의 규모화와 생간의 조직화를 위해 지방정부는 농업문제를 보다 치밀하게 고민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조선팔도를 먹여살렸다는 농도의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는 전북도의 경우에 더욱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전북의 농산물을 듣고 말도 안되는 곳에 팔러 다니는 그 다음의 문제다. 그리고 그 문제해결의 열쇠는 농민과 지역주민들 공동의 몫이다. 올해 초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올해의 전략사업으로 의료보험통합실현과 쌀 자급을 위한 정책 마련을 내세웠다. 전농은 농민들의 삶에 전례 없이 강렬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위기 속에서 ‘이제는 경쟁력을 가지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단한 생활 속에서 어떤 희망도 바라보이지 않지만 농민들은 굳세게 버티고 있다. 그들이 무너지는 날, 우리의 삶과 민족의 터전도 같이 무너진다. ‘말짱 도루묵이’와 ‘기우’의 농업경제학 쌀, 왜 또다시 문제인가? 글/양병우 전북대 교수·농경제학과 조물주는 참 비상한 재주도 가졌다.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또한 꼭 필요한 것은 기억하게 하시고 필요없는 것은 잊게하여 편안히 살 수 있게 해 주셨으니 말이다.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되는 생각들을 지울 수 없다면, 우린 자꾸 되살아나는 그 고통에 파묻혀 헤어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질 것 같은 두려움 속에 사는 ‘기우’같은 사람 밖에 될 수 없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과거의 쓰라린 잘못된 행동들을 너무도 쉽게 기억 속에서 의미 없이 없애버린다면, 우리 모두는 생각 없이 사는 ‘말짱 도루묵이’밖에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기우’와 ‘말짱 도루묵이’들이 너무 많은 게 탈이다. 정부의 식용 쌀 수입 결정으로 다시금 농민들이 정부 정책에 대한 배신감만 늘려가고 있는 것은 분명 ‘말짱 도루묵이’들의 착상으로 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지난 대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 후보자는 만약 당선된다면, 대통령직을 걸고 어떠한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쌀 수입은 막겠다고 공언을 하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93년에는 버젓이 쌀과 모든 농산물류의 수입을 승인하고 UR협상 타결안에 조인하였다. 이 공언 불이행에 대해 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용서와 국민의 이해를 구했던 기억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결국 국민과 농민을 속인 기만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불감증이라는 심한 중병을 앓고 있는 탓에 이런 기만에 너무도 관대하게 쉽게 잊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의 이러한 관대함이 또다시 ‘말짱 도루묵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정부는 95년 가을, 앞으로 10년 동안 최소시장 접근의 이행에 의해 수입되는 쌀 전체물량을 가공용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수입된 쌀은 생산농가에 영향이 없도록 국내 쌀 시장관리를 철저히 함으로써 농민들의 증산 의욕을 높이고 국내산 쌀 가격은 보장될 것이라고 대국민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러던 정부가 이제는 올해 수입쌀을 가공용이 아닌 주식용으로 대처하기로결정하고 조달청을 통해 국제입찰에 들어갔다. 문자 그대로 국민과 농민에 대한 기만을 밥먹듯이 계속 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30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정치인과 행정관료의 무책임적이고 태만적인 정책 관행이 문민 정부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관행이 지속되는 한 우리 농정의 정책적 신뢰 회복은 요원한 말짱 도루묵이다. 더욱이 쌀 자급에 대한 정부의 정책의지는 단지 구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쌀,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올해 쌀 소비를 충족할 수 있는 재고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올 10월 양곡연도말 주식용 쌀의 예상 재고량은 약 2백 78만 섬으로 세계농업기구(FAO)의 재고권장량 5백 50만 섬(국내 일년 총소비량의 17%)의 절반에 해당된다. 이의 원활화를 도모하는데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4월 말 현재 정부보유 가공용 통일쌀의 재고량은 67만 2천 섬에 불과하다. 한해 동안 사용되는 가공용 쌀량이 약 1백 60만 섬인 점을 감안하면 그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약 5개월 후인 10월 초에는 가공용 쌀의 재고는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즉 우리의 먹거리 안보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쌀농사에 대한 영농의욕이 자꾸 떨어져 휴경지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식량안보가 위기에 처하게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이는 학계와 농민단체가 오늘의 상황을 우려하여 90년부터 줄곧 쌀 생산과 식량안보 대책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을 ‘기우’로 치부해버린 ‘말짱 도루묵이’ 웃어른들(?) 덕분이다. 정부는 지난 93년에 ‘누적된 과도한 양곡특별적자는 정부 재정부담을 가중시키고 있고 88년 말부터 시작된 쌀의 과잉생산과 과잉 재고누적은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이중곡가제 폐지와 쌀 수매가 동결의 당위성을 들었다. 실제로 그 후 이중곡가제는 점차 유명무실해져 가고 있고 수매가 역시 거의 동결되었다. 이와 동시에 식량안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줄기차게 ‘쌀과잉 이대다!’, ‘쌀을 포함한 식량 수급관리에 절대 문제없다!’라고 소리높여 대응해 왔다. 이 높은 목소리가 농정불신으로 이어져 농민들의 영농의욕을 꺾고 오늘의 쌀 문제를 다시 만들었다. 쌀 생산 감소와 재배면적 감소의 원인은 결국 쌀 생산농가의 소득 감소와 이에 따른 농가인구 감소 및 절대적 노동력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소득 저하와 노동력 문제는 높은 쌀 가격 보장과 기계화 추진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또다시 상처입은 농심과 꺾긴 영농의욕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식용쌀 수입결정의 배경에 대한 소문이 북한에 대한 쌀 지원 대비를 위해서다. 혹은, 쌀 수출국인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한 굴복 때문이다, 또 일부에서는 최근에 전국 순회토론을 거쳐 발표된 「쌀 산업발전 종합대책」(이하 「쌀 대책」으로 칭함)은 식용쌀 수입을 위한 정치적 무마용이었다는 등 무성하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미 UR 타결시 식용쌀 수입을 결정했으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는 발표할 수 없었고, 이를 발표할 기회만 노리다가 「쌀 대책」발표를 기화로 터트렸다는 설도 있다. 이러한 무성한 루머들이 곧 현재의 농정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은 지 말해주고 있고 정부는 이에 대한 깊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여기서 정부가 지난 6월 14일 발표한 「쌀 대책」을 잠시 짚어보자. 「쌀 대책」의 주요 골자는 하한가격보장, 약정수매제 도입, 노령농가 은퇴보조금제 일부 실시, 그리고 농지보존 강화시책 등이다. 이 시책들 중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은 역시 수곡추매제도 개편에관한 사항이다. 개편된 추곡수매제도에 따라 정부는 약정가격을 쌀 파종기에 제시하여 농가와 수매 약정을 맺고 약정금액의 일정 수준을 선도금으로 지급하기로 되어있다. 그러나 약정 농가는 살 수확기에 약정가격대로 정부 수매에 응하거나 혹은 수매에 응하지 않고 시장에 출하해도 된다. 달리 말하면 앞으로 쌀 수급은 되도록 정부통제보다는 자유시장 원리에 맡기겠다는 의지이다. 「쌀 대책」이 쌀 자급능력을 높이고 식량 수급 안정화를 위해 상당히 긍적적인 측면을 담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하게 남겨놓고 있다. 즉 약정가격의 수준 및 설정방법, 그리고 선도금 지급정도의 결정 문제는 또 다시 물가안정논리에 근거한 정치적인 볼모가 되어 농민에게 불리한 수준에서 결정될 공산이 크다. 이제까지의 정책경험을 살기해 볼 때, 「쌀 대책」의 효율성은 이 제도와 정책을 운영하는 정책 의사결정자들 그리고 고매한 윤리의식(?)에 의해 판가름될 수밖에 없다. 이 윤리의식을 믿고 식량안보가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법적으로 그 시행방법을 명시하는 편이 농민을 위해서나 국가적으로나 훨씬 신뢰도를 높이는 일일 것이다. 적어도 약정가격은 매년의 물가인상율을 반영하고 선도금도 약정가격의 50% 수준이 되도록 그 구체적인 수치를 제도적으로 명시해야만 한다. 쌀 문제의 재발을 장기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길은 쌀농업자의 소득을 보장하고 농민들의 영농의욕을 높이는 방안 이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손실 소득보상’, ‘휴경보상’, ‘경작불리지역 개발지원’ 그리고 ‘환경보전 지원’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직접지불제를 시행해야만 한다. 이보다도 더 시급한 일은 책임 농정의 현실이다. 식용쌀 수입으로 야기된 혼란을 무마하기 위해 정부는 또 다시 믿지 못할 약속을 하고 있다. 만약 쌀 수급이 원활할 경우 일정기간 비축후 가공용으로 공급할 계획이란다. 우리의 정치, 행정관행으로 볼 때 극히 비현실적인 또 다른 기만성 발언이다. 장관과 중앙부처의 의사결정자인 국장이 식은 죽 먹기로 바뀌는 정치상황에서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책 의사결정자들과 실무 책임자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책임 벗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정책의 일관성과 정책 결정의 책임성을 유지할 방도가 없다. 이들이 신분상으로 인사상으로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해바라기성 정책결정 체제에서는 책임 농정 구현은 불가능하다. 이들의 독립성이 우선 보장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된 이후에야 비로서 직책별 책임 행정체제를 실현할 수 있고 전직 후라도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쌀 문제는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해결될 수 없고 결국 최고 통수권자의 정치적인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할 뿐이다. 양병우 / 57년 남원 출생, 81년 전북대를 졸업하고 덴마크 왕립대 자원경제학과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지난해 전북대에서 교수로 임용되었다. 농업정책을 전공했으며 한국의 농업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씨앗을 뿌려야 한다 농업 위기와 극복 방향 글/황만길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정책실장 남들 다하는 결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 농업과 농촌을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요즘은 농업·농촌문제에 있어 너나 할 것 없이 애써 외면하거나 침묵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골치아픈 문제에 신경쓰지 않겠다는 무관심의 표현이요, 다른 하나는 사회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가지는 이것저것 따지고 들어야 골머리만 아프고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느냐는 것일 게다. 정부 당국이나 언론도 농업·농민문제의 본질이나 주원인은 애써 접어두려 하고 현상적이고 부정적인 측면만을 다루려 한다는 인상이 짙다. 예를 들어 불과 4~5년 전만 해도농촌 총각 문제를 농업·농촌의 문제 뿐 아니라 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더니 이제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떼려고 하지 않는다. 어차피 해결책이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연변 교포와 결혼을 많이 했으니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인지 선뜻 단언하기가 어려워 곤혹스러운게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자 농민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필자가 아는 형님 가운데 한 분은 나이가 서른 다섯이 다 되도록 결혼을 못해 연변 교포 처녀와 맞선을 본 후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교포 처녀와의 결혼에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이 형님 부부는 별 탈 없이 부지런히 농사 지으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다. 또 한 형님은 나이 사십이 되도록 아직 결혼을 못하셨는데 농촌에 사니까 여자 만날 기회가 적어 더욱 장가가기가 힘들어 진다며 객지 생활을 하나 결국 견디지 못하고 베필도 못 구하고 귀향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농업·농촌 위기의 실체 소수이기는 하지만 어떤 이들은 농사를 지으면 먹고 살 만하다거나, 앞으로 농촌도 비전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어떤 농민은 자신의 연간 소득이 몇 천만원입네 하고 자랑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 여기저기에 모습을 내밀면서 성공 사례를 전하기고 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우리 농업과 농촌은 위기가 아니고, 못 사는 농민이 있다면 본인이 게으르거나 아니면 재수가 오지게 없거나 농사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필자는 그러한 견해에 대하여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한국의 농업·농촌 현실은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본질적으로는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 농업은 몇 사람이 기술을 축적해 성공해서연간 수 천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해도 휠씬 더 많은 농민은 저소득과 저농산물가격에 시달리는 악순환에서 쉽게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고 성공한 일부 농민 또한 그를 에워싼 농업·농촌이라는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공한 농민보다 실패한 농민이 더 많고 성공한 농민도 농업·농촌의 위상을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한 당당한 이 땅의 주인으로 사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농민으로 평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원하는 환경에서 최소한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제 권리를 누리며 도시민과 같은 생활을 하지 못하는 한 여전히 농업·농촌은 위기라고 진단해야 할 것이다. 농업·농촌은 과연 위기인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현재 우리 농업과 농촌이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다. 농업이 위기인가 아닌가는 현재의 조건과 향후의 전개 방향을 면밀히 분석하는 가운데 결론을 내려야 한다. 우선 정치적으로 농업·농촌·농민은 왜소화되고 희생당해 왔다. 잘 알다시피 지속적인 공업화 정책과 독재 정권아래서 우리 농민은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하거나 지켜 줄 통로를 찾지 못했고, 정치적 결사를 통해 자신들의 정한 주장도 할 수 없는 엄흑한 시절을 살아야 했다. 일방적으로 주는대로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현실에서 농민의 자주성은 옹호되지 못했고 정치적으로 홀대받았으며 어느 계층이나 부문보다 낙후되는 문제를 야기했다. 지방자치 실시이후 우리 농민이 지방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그들의 역할이나 권한이 제도적·법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 할 일은 많은데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만 봐도 여전히 우리 농업·농촌은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음을 증명해 준다. 정치권이 농업은 그 어느산업 못지 않게 중요한 분야로 인식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와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농업 위기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농을 비롯한 자주적 농민단체의 결성을 비롯해 농업·농촌의 정치적 위상을 회복하고는 있지만 정부의 정책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농업·농촌은 경제적으로도 낙후되어 위기에 직면해있다, 소득은 도시가계 평균소득의 90%에 못 미치고 있고 생활 수준은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장 허리띠를 졸라매고 사는 계층이고,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 특히 쌀값은 지난 수십년 동안 모든 생필품 가운데 가격 인상률이 가장 낮은 품목 중에 하나이다. 우리 농업·농촌이 발전하고 성장해왔다면 이는 산술급수적인 것을 의미할 것이다. 모든분야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 발전하고 정당한 자리매김을 받았는데 우리 농업·농촌은 더디 가도 한참을 더디 갔다는 것이다. 현재 1정보(3천 평) 미만의 농가가 60%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농민들 경제수준이 어떠한가는 짐작이 가고 남는다. 또한 우리 농업·농촌은 사회 교육적으로 매우 낙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다. 필자가 알고 지내는 농민 가운데 한 분의 의식도 건강하고 그럴 만한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음에도 초등학생인 자녀를 도시학교에 편법을 동원해 보내고 게신 분이 있다. 그 분의 말씀인 즉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까봐 도무지 농촌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농촌교육 현실을 질타했다. 비단 이분 뿐 아니라 농민들 대부분이 자녀교육 때문에 농촌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고 있고 이미 이농·탈농의 주요한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농민은 어느 곳에 가도 무시당하고 홀대 받는게 현실이다. 사회적 소외감과 위화감은 그 뿌리가 깊어 농민들의 불신은 깊어만 가고 있다. 필자는 농민운동을 하다 보니 마을 사람들 외에도 이곳저곳의 많은 농민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한 가지는 농업이 사회적 천대를 받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농촌 총각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수백 군데 마을을 다녀보지만 장가 못 하고 혼자 늙어 가는 농촌 총각 없는 마을을 필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십을 넘긴 농촌 총각도 수두룩하고 한 마을에 2~3명의 노총각은 보통이었다. 젊은 여성이 농촌에 사는 것을 기피하는 현실에서 이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런 위기의 농업·농촌을 만든 책임은 정책 책임자들이 져야 할 것이지만 직접적 피해는 농촌에 사는 농민들 특히 총각으로 늙어가는 젊은 농민들이 받는다는 데 그 심각성과 모순이 있다. 문화 복지 면에서도 우리의 농업·농촌은 위기에 처해 있다. 모든 문화시설의 도시 집중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 농촌은 저급한 4류 문화 상품과 청소년 유해 상품은 있을지언정 문화라는 말 자체가 어색하게 들릴 만큼 현실은 심각하다. 의료보험제도를 비롯해 각종 의료시설, 경로당, 요양시설 등이 그 규모나 시설면에서, 그리고 숫자에서 사회복지 시설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빈약한 실정이다. 여성농민들을 위한 제도나 시설은 전무하고 기껏해야 시·군 단위에 여성회관 하나 지어 놓고 활용조차 하지 않거나 활용한다 해도 관변 여성단체의 소모임 장소로 전락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 농민들의 소원이 돼 버린 의료보험 통합 하나 마무리 짓지 못하는 현실은 오늘 우리 농업·농촌의 문화·복지 수준을 가늠케 한다. 이처럼 우리 농업·농촌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과연 농촌은 살 만한 곳인가. 현재 사는 농민이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가 하는 기준으로 살펴봐도 자신있게 그렇다는 답변이 나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농지가 대량 전용되어 잠식되고, 농산물 특히 쌀값의 생산비는 보장되지 않고, 농가인구는 해마다 급속히 감소해 농촌 공동화 현상이 심각해지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어느 누가 농업·농촌이 위기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 농업·농촌을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벼랑에 몰린 농업·농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인가. 물론 결론은 농업·농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맛나는 곳으로 회생시켜야 한다. 농업 농촌을 위기에서 구하려면 많은 난관도 있을 수 있고 막대한 예산도 투자돼야 할 것이지만 농업이 나라와 민족의 장래와 직결된 분야이므로 확고한 정책 의지를 가지고 반드시 국가의 기초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전농은 위기에 직면한 우리의 농업·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WTO(세계무역기구) 이행 특별법 시행령을 제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WTO이행특별법은 WTO체제가 출범할때 우리 농업이 입게 될 막내한 타격을 예방하고 국내 농업을 보호 육성할 최소한의 장치를 해 놓은 것이다. 당시 우리 농민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해서 U.R협상이 타결될 때 이 법을 얻어냈지만 현재 시행령을 제정하지 않아 사문화되고 있다. WTO이행 특별법은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인 우리나라의 권리와 이익을 확보하고 협정의 이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보장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고, 우리 나라의 정당한 경제권 이익이 침해될 때 이를 용인해서는 안 되도록 정해져 있으며 남북거래는 민족 내부의 거래로 인정하도록 되어있다. 농림수산부의 수입에 의해 피해를 볼 때 특별 긴급관세를 부과할 수 있고 국민건강의 보호 및 관세와수입 이익금의 농어촌 투자를 명문화했다. 협상에 이어 권익 확보를 의해 권리와 의무를 행함은 물론 특정 품목의 국내 피해가 클 때 수정하기 위한 재협상을 추진해야 하며 U.R 협정이 허용하지 않는 보조금을 지급하면 적절한 조치를 위하도록 하는 한편 환경의 보호, 수입 기관의 지정, 직접지불제와 같은 국내 지원정책의 시행 등을 담고 있는 매우 의미 있는 특별법이다. 여기에 생산자 단체의 농림수산물 수급조절사업에 대한 지원과 농림수산업의 구조조정 사업의 실시를 포함하고 있으며 마지막 조항이 시행령으로 대통령령에 의해 정하도록 되어 있다. 시행령이 제정돼 집행되면 우리 농업의 활로를 개척하는 데 매우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시행령을 제정하지 않아 사문화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하루속히 시행령 제정을 통해 농업발전을 앞당겨야 한다. 여기에 사회복지의 실현을 위해 의료보험을 통합하고 농촌 교육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쌀은 반드시 자급할 수 있도록 가격, 유통, 생산, 수매, 소득, 비축 및 물가정책의 전면적 개혁이 단행되어야 한다. 가격 정책은 적정가격이 보장되도록 생산비 보장과 함께 계절 진폭을 25%이상 허용하고 물가정책에 있어 지나치게 높게 반영되는 물가지수는 개편되어야 한다. 비축은 식량안보적 차원에서 적정량을 비축해야 하고 수매정책은 농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수매가와 수매량이 결정되어야 한다. 유통정책은 양곡시장개혁과 미곡종합처리장의 중간평가 및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소득 정책은 직접지불제를 폭넓게 도입해야 하고 생산정책은 쌀 재배변적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정책과 함께 소비자는 건강한 우리 농산물을 지키는 일에 동참해야 하고 농민은 적정가격을 받는 가운데 우수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해 소비자에게 공급해야 한다. 이외에도 수입농산물에 대해 통관심사를 강화하고 전통 문화의 보존과 환경 보호라는 측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예산을 투자해서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면 면밀히 원인을 분석해 농촌에 대한 재투자를 해야 한다. 희망의 땅은 가능하다 지면 관계상 대안을 폭넓게 세부적으로 다루지 못했지만 WTO이행 특별법 시행령 제정을 통해 전농을 비롯한 농민단체가 제시하는 일련의 주장이 농업정책에 반영된다면 우리 농업·농촌이 희망의 땅으로 변화되는 일이 요원하지만은 않을거라 확신한다. 우리 농업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고 농업 정책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채로 나머지 단추를 계속해서 끼우도록 강제하는 오류가 있었다. 이제라도 첫 단추를 풀고 새롭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짝이 맞는 제 구멍에 단추를 맞춰야 한다. 땅이 있는 한 씨앗은 뿌려 질 것이며 음식을 먹는 한 농사는 지을 것이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농업은 생존할 것이다. 황만길 / 익산 황등에 살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 올해 나이 서른셋의 젊은 농민운동가이다. 20대부터 익산군 농민회에서 사무국장을 오랫동안 맡아왔고, 이후에는 민주주의 민족통일 이익연합 집행위원장을 맡아왔다. 지금은 전국 농민회 총연맹 전북도연맹 정책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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