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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8 | [문화저널]
이 여름의 책 이야기 ② 생각 있는 책읽기의 즐거움
글/황숙 전주어린이글쓰기 연구회원·수필가 (2004-02-12 12:05:15)
조기교육과 전인교육의 아름다운 이름 아래 초등 학생까지는 지극한 관심과 사랑으로 일관하다가 중학교에 입학만 하면 부모들은 아이를 무서워하기 시작한다. 성적전쟁, 입시전쟁에 내몰리어〈전사〉가 되어버린 자신의 아들·딸에게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때마침 다가온 사춘기는 어른들을 더 이상 대화상대자로 삼는 것을 꺼리는 아이들의 입지를 강화한다고나 할까. 성적의 잣대로만 아이들을 재단하는 사이 아이의 의식, 가치관, 행동의 양식들은 치외법권의 지대로 이관한다. 이 상황에서 성적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아이들은 ‘덩치 큰 아기’로 전락하고 하위권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정에서 소외되어 ‘가련하다 무서운 10대’로 변신할 수밖에 없게 된다. 먹구름 속에 보이는 햇살처럼 불감증·무감동의 현대인의 특성은 아이들에게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요즘 아이들은 대단한 일이 아니면 시들해버린다. 그리고 ‘시간’이라는 괴물은 공룡보다 더 무서워한다. 즉 책을 읽는데도 사건의 전개가 느리고 단순하거나 짜릿한 자극이 없는 책은 못견뎌한다. 장편소설은 이제 다이제스트로 해결하려는 아이들이다. 우리 세대의 고전이 아이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의 정서나 위인들의 사고는 박물관의 화석 취급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 원인은 기성세대 쪽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아이들이 민족적인 것, 고전적인 것을 찾아 읽고 느끼고 생각하기 전에 세계 각지의 문화·문물이 시대를 초월하여 해일처럼 밀려와서 휩쓸어버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채널 수조차 모르는 TV와 현대문명의 꽃이라는 컴퓨터가 주역임을 자타가 공인한다. 또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엄청나기에 상대적으로 배움의 자리에 식상해 버린다. 중등 아이들의 글쓰기, 독서 지도를 하면서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격언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아이들과 한 시간의 수업을 하려면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듯 해야 기대한 만큼의 글(?)이 나온다. 한편의 글을 위해서 책을 읽고 관련 비디오를 보고 답사를 다녀오면 아이들은 그만큼의 느낌으로 글을 쓴다. 역사에 대해서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해하게 되고, 역사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되새길 줄도 안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힐 것인가 모든 책을 양서와 악서로 구분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악서임에 틀림없는 책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뜻 보기에 독서의 저변 확대와 생활화를 위해 기여하는 듯 보이는 시중의 책 대여점에는 많은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책을 선택하는 데 조심해야 할 점은 잡다한 지식을 일관성 없이 늘어놓은 책을 제쳐 두는 일이다. 글의 방향이 이리저리 흐트러져 있는 책은 우리 생각을 혼란스럽게 할뿐이니까. 그리고 현실과 완전 동떨어진 이야기만 나열된 책도 위험하다. 허구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도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하겠다. 어떤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방향을 제시한 후 판단은 독자가 내릴 수 있도록 해준 책이 좋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6~7세의 독서준비기에서부터 독서 능력은 키워지다가 10대 초기가 되면 초보적인 독서 능력이 완성된다고 본다. 중등 아이들이 독서를 할 때에는 서문 등을 통해 저자의 집필 의도, 입장 등을 알아보고 책표지 문안 등을 살펴보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내용을 분석하여 정독을 해야 한다. 내용을 상상하며 읽는 방법은 논리력을 키워 주고 주제를 파악하며 읽는 습관이 붙으면 가슴속에 책의 의미가 강하게 와 닿는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감동적인 부분에는 밑줄을 긋고 여백에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며 읽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책을 읽으면서 활동지 등의 지명, 강이름 따위 특수한 곳은 지도를 찾으며 확인하도록 한다. 같은 시대나, 업적이 비슷하거나 주제가 비슷한 인물과 책을비교하고 공통점을 찾아보면 아주 재미있다. 예컨대 이 황과 이율곡, 모차르트와 베토벤, 알버트 슈바이처와 한국의 슈바이처 신장곤 박사, 『삼국사기』와『삼국유사』,『별주부전』과 환경을 주제로 한『신별주부전』,『이춘풍전』과 『베니스의 상인』,『표해록』과『로빈슨크루소』같은 책들은 훌륭한 비교독서법의 테스트이다. 이러한 책읽기를 하면 건전한 비평의 안목도 길러진다. 단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야 하며 최종적인 판단을 하기 전까지는 그 책을 주장에 대해 일방적인 찬성과 반대를 삼가야 한다. 정서와 인식의 발달을 위한 책읽기 대체적으로 창작동화나 전래동화 또는 세계민화 계통의 책을 읽으면 아이들의 정서와 인식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동화들을 읽고 난 후에 역사인식을 위해 한국위인전과 세계위인전을 읽고 다음으로 한국고전문학과 한국 근·현대소설, 세계문학의 순서로 읽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휴가철을 이용하여 위인의 출생지, 작품의 배경지, 기념관 따위를 탐방하여 총체적인 감상이 되도록 배려할 필요도 있다. 작품 속의 시대 상황과 현재를 비교하여 우리의 행동과 가치관을 점검해 보는 것도 필수적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미화된 죽음을 현실에서 찾아보고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안중근 의사께서는 (또는OOO님은)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실까 등 책 읽을 후에 이야기 마당을 통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눠보도록 하자. 생각함이 없는 책읽기란 음식을 씹지 않고 삼키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청소년들의 글쓰기·책읽기 지도를 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어깨가 짓눌리는 것 같다. 올바른 인식의 차원에서 궁극적으로는 실천의 단계까지 도달해야 하는데... 과거를 오늘에 되살리는 작업에서 고대사에서부터 현대사에 이르는 방대한, 거듭되는 역사 속에서 역사의 교훈을 흘려버리는 현실을 보며... 고전문학에 공감을 못하는 어린이들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문제... 말과 글의 오염 속에서 우리말과 글을 올바로, 아름답게 보존하고 써야 하는 문제... 등에서. 부실한 어깨는 하나인데 져야 할 지게는 많다. 전주 어린이 글쓰기 연구회원들의 작은 지게들로 흙을 퍼나르다보면 태산도 옮겨질 날이 있지 않을까. 황숙 / 1980년 원광대 국어교육과를 나와 중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같은 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어린이 글쓰기 지도하여<전주 어린이 글쓰기 연구회>를 창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1991년 전북여성 백일장에서 수필 부문 장원으로 입상하여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 올해 『시대 문학』봄호에 <보랏빛 예찬>외 2편의 수필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글벗」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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