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8 | [문화저널]
몰아지경 무아지경에 이르는 감동
전통 가곡, 가사의 원류
(1993. 신나라 SYNCD-058)
글/문윤걸 전북대 강사·사회학
(2004-02-12 12:04:05)
갈수록 여름 지내기가 만만하지 않다 요즘 여름이 왜 이리도 덥냐고 투덜댔더니 어떤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여름이지” 그렇다. 여름은 더운 게 당연하다. 그래도 참고 견디기가 쉽지는 않다. 날씨만 더우면 그래도 어떻게 참고 지내겠는데 여기저기서 속 긁어대는 일이 자꾸 생기니 짜증은 몇 배로 불어난다. 뭔가 들으면서 시원해지는 것 없나? 우리 음악중 하나인 전통가곡, 가사를 소개한 음반을 골랐다.
서양사람들에게 여름은 이글거리는 태양과 변화무쌍한 자연 때문인지 정열과 낭만의 계절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여름을 주제로 한 서양음악들은 대개 활달하여 흥겹게 연주된다. 이열치열이라는 옛말처럼. 그런데 요즘같은 더위는 이열치열이라는 옛말을 무색하게 만든다. 요즘 더위는 사람을 무력감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옛 선인들은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없이 어떻게 더위를 이겨냈을까. 물론 요즘 더위가 예날보다 더 지독하겠지만 그래도 그들 역시 나름대로 더위를 이겨내는비책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비책 중의 하나가 음악이었다면 아마도 가곡이나 가가 같은 이런 류의 음악이 아니었을까?
가곡 하면 흔히<비목>이나 <그리운 금강산>이 떠오른다. (어떤 음악 교과서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가곡은 홍난파의 <봉선화>라고 쓰여 있고 학생들은 이를 달달달 외운다). 조금 더 가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등이 연상된다. 그러나 이는 서양식 가곡이고 우리의 전통 가곡은 성악이라는 점은 같지만 그 형태는 매우 다르다. 오히려 동네 목욕탕에서 간혹 듣는 어르신들의 시조창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가곡, 가사, 시조는 민속악과는 구별되는 정가(正歌)에 속한다. 문자 그대로 ‘바른 음악’이라는 뜻인데 주로 사대부 등의 계층(일부 평민 지식인들도 포함)에서 인경 수양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불렸던 노래이다. 즉 민요같은 민속악이 대중가요라면 정악은 클래식인 것이다.(이 음반에서는 친절하게도 물경 32쪽에 달하는 해설서가 첨부되어 있어 초심자들의 눈과 귀를 동시에 만족시켜 주고 있다 - 부족한 설명은 이를 참조하시길).
이 음반에는 모두 12곡의 가곡과 가사가 실려 있는데 그 하나 하나가 모두 탄성을 자아낼 만 하다. 다만 이 소리들이 모두 1920~30년대 SP 판으로 녹음된 것들을 복각해 낸 것이기 때문에 음질면에서 요즘의 음반들처럼 매끄럽지 못하다는 게 다소 안타깝기는 하지만 가곡창의 전설적인 존재인 하규일의 노래와 당대 최고 여류 명창들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단점들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다만 한가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무리 주의 깊게 들어도 노랫말을 알아듣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곤혹스럽거나 극기 훈련이 될 지도 모른다. 이는 음질 때문이 아니라 가곡의 음악적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꼭 해설서에 나와 있는 노랫말을 미리 숙지하시고 그 시가 주는 감흥을 충분히 음미하시면서 음악을 들으시면 몰아지경, 무아지경의 경지를 경험하실 수 있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