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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8 | [문화저널]
드디어 영화 이야기 쓰다 영화 <축제 >이야기
글/김용택 시인 (2004-02-12 12:02:44)
나는 친구들끼리 모여 놀며 아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 부담없는 사람들이 한가한 날 날을 잡아 한가하게 안거나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루나 한나절 또는 몇 시간쯤 보낸다는 것은 생활 속에서 매우 여유로움으로, 또는 유쾌함으로 그리고 지내놓고 나면 매우 유익한 시간으로 기억되는 그런 모임을 나는 좋아한다. 전주에는 그런 동무들이 내게 있다. 시 쓰는 도현이나 병천이나 그 외 또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바뀌며 우린 모인다. 늘 끼인 사람이 나와 도현이 병천이다. 그들 뿐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꼭 이야기 중에 영화이야기가 들어가는데 나는 영화이야기에 필요 이상의 열을 내는 사람이다. TV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나 잡지사 기자들이나 같이 앉아 하도 정신없이 영화 이야길 하다 그들의 할 일을 망각하고 내가 지나치게 흥분하면 아내는 나를 살짝 불러 놓고 말을 한다. “여보 제발 흥분하지 마세요. 지금 그 사람은 그게 문제가 아니예요.” 나는 머쓱해지곤 하는데 그 열기는 그리 쉽게 식지 않는다. 서울에서 우리 집에 취재 갈 때 예비지식을 지들끼리 서로 주고 받는 모양인데 “김용택네 집에 갈 때 영화에 대한 정보를가져가라”는 말을 꼭 한다는 것이다. 내가 영화를 무지 좋아하고 영화를 본 이야기라면 아주 좋아한다고 해서 나를 영화에 대한 전문가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나는 유식을 조금은 싫어하는 사람이다. 우리들의 유식함이 다른 사람에게 가면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시들이 한 때 시쓴 사람이나 시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 아니고는 시를 이해할 수도 없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시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지들끼리 문학’판을 만들어 사회적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세상이 하도 요상해서 똑같은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이 우스개가 되거나 무식한 소치가 되지만, 어떤 사람이 하면 그 소리에 권위가 실리기도 하는 일을 우린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언젠가 <서편제>를 청와대에서 청와대 식구들이 감상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대통령이 한 말씀이“우리 나라 산천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는 내용의 말씀이었다. 참으로 웃기는 것은 그 때부터 우리 나라 산천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당신들이 사는 당신들의 땅과 하늘과 산천을 둘러보라. 어디다 그 큰 카메라를 들이댄들 그 서편제에 나오는 산천만 못하겠는가. <장군의 아들>이 나오면서 나는 한국 영화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아니, 장선우의 <성공시대>를 우연히 보게 됨으로써 나는 한국 영화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후로 <투캅스>를 비롯한 안성기, 박중훈이 나오는 영화들을 기다리게 되었는데 거기에 가세하여 새로운 젊은 감독이 대거 충무로에 진입하면서 나는 이제 홍콩 영화나 허리우드 영화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영화를 늘 기다렸다. 바빠서 영화관에 가지 못하면 어떻게든지 시간을 내어 비디오라도 빌려보곤 한다. 신문의 새 영화 소개를 보거나 TV의 새 영화 새 비디오 소개 프로를 보면서 나는 그때부터 흥분하게 되는 것이다. 기다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개봉 되기가 바쁘게 영화관으로 온 식구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다. 어찌나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느날 우 식구들이 극장 앞을 지나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하는 영화 간판 포스터만 그냥 보고 무조건 극장에 들어가서 한참 영화를 보다 아내에게 “근디 여보, 이 영화 제목이 뭐여” 했더니 아내는 “쉿”하면서 손가락으로 자기 입술을 막더니 살며시 “나도 몰라요.” 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내게서 영화는 내 생활 중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소개하는 신문 지면을 통해 나는 두 편의 비슷한 영화내용을 보게 되었다. 한 편은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였고 한 편은 <축제>였다. <학생부군신위>는 어찌어찌하다 그만 영화를 보지 못해 영화 <축제>를 보러 가기 전에 비디오를 빌려다 보았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감동이 일지 않았던 것이다. 아주 작은 것에도 흥분을 잘 하고 감동을 잘 하는 나는 그 영화 아무 것에도 감흥이 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도 나는 <축제> 개봉관에 갔다. 내가 이 두 영화 내용은 신문에서 보고 미리 흥분한 것은 그 두 영화가 모두 장례 시작에서부터 장례가 끝날 때까지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는 데 난 잔뜩 기대를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시를 한 편 썼기 때문이었다. 내 시「맑은 날」도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그 순간부터 할머니를 땅에 묻고 돌아와 딸들이 돌아가는 모습에서 그 시가 끝나는데 그 두 영화도 그런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시골의 장례 모습을 많이도 보아 왔다. 왜냐하면 지금 농촌엔 죽음을 눈앞에 눈 어른들이 많기 때문이다. 영화<축제>를 보는 눈은 다양할 것이나 나는 거기에서 다른 무엇보다. 조연으로 출연하는 안병경의 역할과 연기였다. 초상마당에서 벌어지는 (죽은 이와는 별개로)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서 내가 자세히 본 것은 윷놀이하는 모습과 안병경의 역할이었는데 그 두가지 일 모두 너무나 우리 동네의 초상마당과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초상 마지막 밤 안병경이 술에 취해 이끄는 그 빈 상여 놀이 끝에 나오는 유행가는 우리 동네 아재가 이끄는 빈상여놀이였고 윷놀이판 끝에 덕석 위에서 벌어진 쌈 장면은 우리 동네 한수 형님과 그 군상들의 모습이었다.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그 모습에 난 감탄했던 것이다. 영화가 ‘거울속의 나’라는 예술 장르임을 똑 떨어지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거기서 보여지는 온갖 자질구레한 에피소드들도 거의 내가 보아온 초상마당의 모습들과 똑 맞게 떨어졌던 것이다. 영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있을 수 있게 만들어 보여 주는 것이고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한삽 똑 떠서 우리들 눈앞에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서 우리를, 우리들의 일상을 눈부시게 해주는 예술 장르이다. 영화가 아무리 발전해도 이 테두리를 크게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학실’ 하게 보여주느냐에 그 영화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솔직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내 입이 방정이라는 생각이 이 글 끝가지 따라오며 나를 갈등하게 했다. 어느 날 우리집에 놀러 온 문화저널 식구들 앞에서 나는 예의 그 영화 이야기에 열을 내다가 이 망신을 당하고 만 것이다. 기자들 앞에선 말조심 해야함을 내 또 잊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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