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8 | [문화저널]
성폭력은 사회 정의가 문제이다
성폭력 예방치료센터 박상희 대표 인터뷰
문화저널(2004-02-12 12:01:45)
지난 한달 충격적인 성폭력 사건이 잇달았다. 그러나 불행한 사실이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곳에선가는 성폭력이 자행되고 있고, 그것은 계속될 것이다. 성폭력은 인간에 대해 자행되는 가장 잔인한 범죄행위이고 사회적 범죄행위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 범죄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중적인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다. 또 성폭력 범죄의 원인제공자를 여성으로부터 찾으려는 무모한 시도는 우리 사회 남성중심의 권력구조를 여실히 보여준다. 성폭력을 여성의 문제로 보는 한 여성들은 결코 짧은치마를 입을 수도 없고, 밤늦은 거리를 배회해서도 안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현행 성폭력법은 성폭력 범죄를 ‘정조에 관한 죄’로 처벌하고 있다. 성폭력을 여성의 정조에 관한 문제로 파악하는 까닭에 피해여성들은 영원히 ‘정조를 잃은 것’ 때문에 죄의식을 느껴야 했고, 사회적인 인식도 여성의 문제로 치부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같은 인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정부는 서둘러 성폭력 특별법을 ‘여성의 성적인 결정권’이라는 개념으로 보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전주에 성폭력예방치료센터라는 거북스럽기 짝이 없는 명칭의 단체가 등장한 지 일년 반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성폭력예방치료센터는 그 이름에 걸맞게 잔잔하지만 알차게 사업들을 펼쳐왔다. 그러나 이곳 센터에는 지금도 그 이름을 못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과, 장난기어린 전화들이 걸려온다고 한다. 성폭력 범죄에 모두가 경악하면서도 우리 사회는 여전한 가치관의 혼란 속에 서 있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토론이 어느때보다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센터를 만들고 이끌어오면서 고군분투해온 성폭력예방치료센터의 대표 박상희 목사를 만났다.
얼마전 김조은 교사 사건을 겪어냈던 센터는 비교적 평온했지만 교육을 요청하고 요청받은 교육에 대해 강사를 섭외하는 전화가 바쁘게 오고가고 있었고, 또 간간이 울리는 상담전화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박상희 목사는 연일 계속되는 교회일과 상담소일로 무척 지쳐 있었지만 문화저널의 인터뷰에 진지하게 응해주었고, 특히 지방정부와 정책에 대해서 재삼 강조해 그와 센터에게 지금 무엇이 가장 절실한 문제인가를 잘 보여주었다.
요즘들어 놀랄만한 성폭력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하기조차 곤혹스럽고 답답한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성폭력이 요즘 들어 갑자기 심해진 것은 아닙니다. 성폭력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되어온 일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약자와 강자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모습속에서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특히 소유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여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했습니다. 언제나 약한 자의 입장이었던 여성에게는 억압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지요.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성에 대한 가치도 변화해왔지만, 오늘날의 산업사회에서 여성은 철저하게 소유의 대상으로, 상품으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그렇게 ‘소유한 여성’들에게는 잔인하고 다양한 학대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약한자와 강한자의 첨예한 대립, 그것이 곧 성폭력의 역사이고 현실입니다.
성폭력 문제의 본질을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관계로 파악하고 계신 듯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느끼듯이 자본주의 사회는 이미 너무 견고합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역시 교육이 중요하고 다음이 정책입니다. 유치원에서부터 성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교육의 요체는 바로 자기 몸을 소중히 하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여성들에게 있어서 자기의 몸은 곧 생명을 잉태할 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자기 몸을 만지고 이상한 행동을 당했을 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자기의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누군가가 자기 몸을 만지면서 ‘말하지마!’ 라고 위협할 때도 적극적으로 자기 몸을 지킬 수 있습니다.
유치원에서의 교육이 자기 몸에 대한 소중함을 배우는 시기라면 어린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드는 초등학교 4~5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생물학적인 성의 구조를 배우고 이성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시기에 이르면 어린이들은 이미 육체적으로 성숙하고 사춘기에 접어드는 때가 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때는 피임교육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성에 관한 한 우리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대단히 근엄하고 전통적으로 터부시 해온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극도의 퇴폐적인 문화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성교육을 시키고 초등학교 6학년 학생에게 피임교육을 시킨다고 하면 아마 난리가 날 것 같은데요.
성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제는 시대착오적입니다. 우리 센터에 걸려오는 상담전화 가운데는 중학교 학생이 남자친구와 관계를 맺고 나서 임신에 대해 문의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현실입니다. 이미 시대는 변화했고 시대에 맞는 성교육이 필요합니다. 호소력 있는 성교육이 필요합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성교육, 즉 ‘하지 말라’는 교육에서 벗어나 사고하는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학교 선생님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학교교육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무조건적인 순결 서약같은 프로그램이 잠깐 동안의 울렁거림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사고하는 교육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가해자층은 그야말로 널려 있습니다. 어디건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위협은 특별한 사람들의 것이 아닌 모든 여성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결국 성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있다는 것은 곧 가해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방과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지 여성으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성폭력의 문제는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성들이 지니는 성에 대한 이중적인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남성의 성은 억제가 힘들고 여성들은 억제가 가능하다던가 남성은 충동적인데 비해서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든가 하는 식의 일반적인 통념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성들에게도 성적인 충동이 있고 억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 저는 성폭력의 문제를 남성과 여성간의 생물학적인 차이로가 아니라 약한 자와 강한 자의 대립으로 보았습니다. 힘이 강한 사람 즉 남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 사회정의에 대한 깊은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정의에 대해서 올바르게 교육받은 사람들은 성에 대해서 바른 태도를 갖게 됩니다.
여전히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렇네요. 그러나 범죄는 구체적이지만 그 치유는 막연합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가해 남성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곧 폭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폭력에 대해서 사회와 법은 규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폭력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관대합니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 즉 그것이 명백한 폭력이라는 사실이 인지되지 않은 한 성폭력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 다 두손들고 있지만 우리는 성폭력 문제가 해결가능하고 믿습니다. 지금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우리같은 민간단체들에 대한 경찰의 협조, 그리고 의식있는 재판, 행정의 경제적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은 결국 건강한 정책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물론 그 속에서 습관적인 가해자들은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야 합니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요.
성폭력문제에 대한 많은 긴급처방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방송마다 신문마다 온통 들끓고 있습니다. 그러나 쏟아지는 처방들이 오히려 거북하기도 합니다.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한동안 들끓겠지만 금방 잊혀져 버리고, 그러고 나면 사람들은 이런 복잡한 문제를 생각하기도 싫어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관심입니다. 가해 남성들을 보면 대부분 가정이 건강치 못합니다. 먼저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는 건강한 가정이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어야 합니다. 성폭력 가해 남성들의 경우 사회적으로는 정상이지만 실제로는 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한 가정으로부터 이웃에 대한 관심이 시작됩니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범죄를 낳습니다.
이곳에 센터가 세워진 지 일년 반이 지났습니다.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정책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그동안 느낀 것은 성폭력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일은 사회운동적인 접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심리치료적인 성격이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피해받은 여성들의 자존감을 해결해 주는 일이지요. 문제의 해결은 대립과 적대감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사실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운동과 상담과 치유의 과정을 통괄할 수 있는 전문요원의 양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업들이 민간단체의 힘만으로는 안되는 것이 현실이고 또 한계입니다. 그럼에도 정부의 관심은 제한되어 있고 형식적인 지원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자치단체가 출발한 이후 정서적인 거리감은 많이 좁혀져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의 지원도 운영지원이 아닌 행사경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요. 더욱이 전라북도의 경우 다른 시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관심과 열의가 많이 부족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각자 여성에 대한 특별한 정책적 관심과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인터뷰·정리/원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