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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8 | [서평]
쓰여지지 않은 문화에 대한 진지한 관심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주강현 지음, 한겨레신문사
글/송화섭 원광대 강사 (2004-02-12 12:00:40)
해방 50년, 근대화 100년을 넘기는 시점에서 주강현은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를 펴냈다. 그는 일본의 식민 지배 이후 역사의 역동성을 상실한 채 고요한 늪에 빠져 문드러져가는 우리 문화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식민지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해 중병에 걸린 우리 문화의현주소를 15가지의 문화 현상으로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왜 우리의 전통 문화를 ‘수수께끼’로 만들었는가 묻고 있다. 우리는 문화가 병들면 사회가 병들고 결국엔 인간의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는 오늘날 심각한 지경에 이른 한국인의 생태계 오염 문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 민족문화의 숨결이 질식상태에 이르게 된 데에 우리 국민 모두에게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해방 이후 식민지적 근대화를 추구해 온 문화정책의 난맥상을 비판하고, 아직도 식민 사관을 청산하지 못한 폐쇄적인 역사학계의 학문 풍토에 관한 질책이며, 연구 방법부터 정리하지 못한 민속학계의 자기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상투적인 비판, 질책이나 자기 반성을 촉구하는 게 아니라 반란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본문의 첫 텍스트인 <성적 제의와 반란의 굿>에서 반란의 의도를 내보인 것이다. 아주 강렬하다. 반란은 비판 정도가 아니라 변혁 의지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반란을 거치면 사회는 혼란과 변화를 통해 새 질서를 수립하지만, 반란이 없는 사회는 썩어 더러운 물이 고일 뿐이다.”로 규정하고 반란으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띄우고 있다. 새 세상을 창도하는 자는 미륵이다. 민중들은 말세에 이르면 미륵이 출현한다고 믿어 왔다. 그가 오늘의 문화 현실을 오탁악세의 말세로 판단하고 미륵 출현을 염원하고있음은 『마을로 간 미륵』①②권(대원정사, 1995)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제 오직 미륵 출현만이 파탄지경에 이른 세상을, 역사를 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혁세의지를 드러내 보인 것은 더 이상 돌파구 없이 위기에 봉착했음을 진단한 결과다. 그는 서문에서 “21세기 새로운 문화 파동의 바람이 부는 시점에서 우리는 모두 ‘문화의 테러리스트’가 되자”고 제창하고 있다. 오늘날 문화현실이 얼마나 절백한 상황이었으면 끔찍한 테러리스트로 나서자고 했겠는가. 요즘 매스미디어들은 세계화, 국제화의 나팔수에 신바람이 나 있다. 진정한 근대화는 무엇인가? 식민지적 근대화 100년간 분별없는 외래문화의 범벅으로 이미 전통 문화가 실종, 각색되어 버린 현실이 위험수위에 달하고 있다. 식민지 근성과 일제잔존의 찌꺼기 문화를 청산하지 못한 채 외래문화의 수용 기준과 원칙도 없이, 소화할 능력도 없이, 우리 스스로 전통 문화를 학대 천시하던 차에 세계화의 망령은 문화 침략만 가속화시키고 있다. 경제 교역과 문화교류를 앞세운 문화제국주의의 침략은 도발적이고 가공할 파괴력을 갖고 있다. 말이 좋아 문화교류지 우리 문화의 수용 역량이 나약하면 정복당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주강현의 관심은 ‘쓰여진 문화’ 보다는 ‘쓰여지지 않은 문화’ 에 대한 영역이다. 전자를 와조사, 양반사 등 지배계층사라 한다면, 후자는 민중생활사라 할 수 있는 피지배계층사이다. 지금까지 한국 역사가 지배계층사 중심으로 쓰여진 데에 대한 반발이자 반쪽의 민중생활사를 ‘쓰여진 역사’로 자리매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쓰여질 수 없었던 역사는 민중생활사였으며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가지 민중생활사를 터부시해오고 마치 관심 밖으로 내동댕이친 한국 사학계의 풍토가 개탄스러울 뿐이다. 민중은 민족의 기본 단위이며 기층문화를 담당한다. 1930년대 신민족주의 사학자들의 꿈이 민족분단으로 좌절되면서 민중생활사는 역사의 질곡속에서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해방 이후 민중 생활은 민족문화의 재생력을 상실한 채 ‘잔존 문화에 대한 흥미’의 대상으로 전락되어 왔다. 그동안 ‘민속학’은 설자리가 없는 어설픈 상태였다. 이러한 민속학을 흥미와 관심거리에서 일탈시키고 ‘민족의 자각’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문화를 바로 보고 읽어 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주강현은 이 책을 통해서 “식민지 지배 전략에 복무하던 민속학을 벗어나서 민족 자주의 민속학으로 전환해야 한다.” 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과학으로서의 민속학. ‘역사민속학’이라 할 수 있으며 민중생활사의 연구 방법이다. 조금은 생소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와 같이 우리 문화를 보는 시각과 읽어 내는 방법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역사민속학은 이미1930년대 신민족주의 사학자 손진태 선생이 물꼬를 터놓았던 것이다. 그는 처음 손진태가 역사의 원동력을 민중에 둔 것처럼 ‘민중과 그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도 끊임없는 문제 제기를 하면서 과학적이고 합법칙적인 민속학을 모색하는 데 고심해 왔다. 주강현은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래서 자기 논리의 모순 속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립 당시부터 한국역사민속학회 활동에 앞장 선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주강현의 연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것은 분단민속학의 극복이다. 분단상황에서 민족 자주의 민속학은 어불성설이거니와 현장 조사 역시 반쪽에 지나지 않는 만큼 통일 이후 진정한 ‘민족문화학’을 복원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온 작업인 것이다. 그러한 전제에서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는 통일 이후 민족문화학을 정립하려는 시발로 보인다. 이는 그가 앞으로 지향할 목표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다. 송화섭 / 55년생 원광대 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사학과에서「마한의 소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고대사를 전공했고 요즈음에는 암각화에 대한 연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전북 사학계의 힘있는 중견연구자이다. 원광대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최근에 한길사에서 펴낸 「한국의 암각화」를 공저로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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