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8 | [문화칼럼]
경쟁 없는 게임에 대한 거부감, 그 진실을 읽으라
글/이중호 전북대 교수·국민윤리교육과
(2004-02-12 11:58:12)
지난 7·19 전주시장 보궐선거는 튜표율 17.7%라는 선거사상 최저의 튜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세 후보 중 유일하게 정당공천을 받은 국민회의 양성렬 휴보가 무소속의 두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이 저조한 투표율에 대해 정치권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보궐선거 결과를 놓고 상대방에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각장의 성명과 태도를 보면서 우리 정치사회의 후진성과 유권자인 전주시민들의 진심이 당리당략에 따라 여전히 왜곡되고 외면되고 있다는 아타까움을 금하기 어렵다.
이번 보궐선거에 국민회의를 제외한 어느 정당도 후보자를 내지 않음으로써 선거가 사실상의 경쟁없는 게임이 되었고, 역대 선거에서 DJ가 이끄는 국민회의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이 지역 유권자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도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가 당선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굳이 투표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은 시장 당선자인 양성렬씨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를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당선소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여기에는 원인과 결과가 전도된 억측과 견강부회, 그리고 사실상의 부전승을 거둔 승자독식의 선거주의자의 오만이 배어있을 뿐, 상처받은 전주시민의 자존심을 도대체 헤아리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애틀란타 올림픽 여자 100M 결선 골인방면은 매우 시사적이다. 미국의 비버스와 자마이카의 오띠가 10초 94의 똑같은 기록을 내고서도 고개숙인 디버스가 머리칼로 앞서 사진판독을 거쳐 그야말로 가반의 차이로 금메달을 따냈다. 지난 6·27 당시의 국민회의 경선에서의 패자가 전임자의 비리에 의한 사임으로 마침내 오늘의 승자가 되어 ‘투표율과 나에 대한 지지와는 무고나하다’고 한다. 불운의 오띠가 보인 의연한 자태, 전주시민의 고개숙이지 않은 자존심에 대해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이번 보궐선거에 국민회의를 제외한 다른 정당들이 후보자를 공천하지 못한 것은 당선가능성(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이 괜찮은 후보자를 공천해서 정당간의 경쟁구도를 만들었다고 해도 보궐선거가 사실상의 경쟁 있는 게임이 되기 어렵다는 것은 역대선거, 특히 작년의 6·27 지방선거와 금년의 15대 총선결과만으로도 여야를 막론하고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이 지역에서 국민회의가 향유하는 지역패권주의하에서 후보자 요인은 애초부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보궐선거도 바로 이 지역패권주의의 바람직하지 못한 부산물에 다름아니다. 국민회의는 이를 외면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신한국당의 비교적 근접한 진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세우는 처방이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기초단체장선거에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주장은 6·27 이전에도 있었던 얘기고 6·27 지방선거에서의 대패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사후에 정치적 패배를 술수로 만회해보려는 의도가 공천배제의 주장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보궐선거에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 후보를 못내면서도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배제를 위해 당론으로 안낸다는 식의 주장은 약자의 콤플렉스에 의한 거짓위장이고 명분과 실질이 다른 당리당략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역대선거에서의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으로 인한 최대의 희생자인 DJ와 국민회의가 텃밭인 이 지역에서나마 향유하는 패권을 과연 누가 시기할 것인가? 그러나 그들의 비극은 정적들의 시기가 아니라 그들이 향유하는 패권 그 자체이다. 이번 보궐선거의 저조한 투표율의 1차적 책임은 마땅히 국민회의에 돌아간다. 6·27선거에서 민주적 방식이라고 자화자찬하며 대의원들 경선을 통해 공천한 후보가 도덕성 시비와 비리에 대한 사법적 판단으로 결국 사임하였고,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오히려 대의원들에 의한 선출방식에 전가하며 위원장들이 위임을 받아 후보자를 추대하기로 한 국민회의의 5인 추천위원회의 대안도 유효한 결정이 되지 못한채 DJ의 낙점을 기다려야만 했다면, 패권적 정치세력들의 능력과 민주성을 우려할 만하다.
국민회의가 굳이 시민들에게 사과나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고 경쟁력을 갖지 못해 후보를 내지 못한 신한국당이나 민주당에 대해 참여민주주의의 구현이라는 공당의 책임을 ane는 것은 자칫 ‘사자의 눈물’로 오해되기 쉽다. 시민들의 정서를 외면한 결과 선거과정에서도 ‘도지사급의 청렴하고 능력 있는’ 상품을 내놓고 중앙의 인기있는 세일즈맨들까지 동원해 벌인 국민회의만의 대할인 판매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모여들지 않았다. 잦은 선거에 동원된 관중들이 갖는 경쟁 없는 게임에 대한 거부감은 곧 지역 정치사회에서의 국민회의 의 패권에 대해서조차도 이제 염증을 느끼게 된 것이 아닐까?
한편 이번 국민회의의 시장후보자 공천신청에는 전현직 고위공무원을 비롯하여 교수,변호사,의사 등이 대거 몰려들어 바야흐로 이 지역 정치사회의 활성화가 도모되는 것이 아니냐는 착각마저 갖게 했었다. 물론 한국정치 사회의 수동성과 파행성은 단지 이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소위 문민시대에 이르러서는 민주주의론의 분화와 이데올로기적 지배하에서 오히려 더욱 심각해졌다. 3김시대, 혹은 3국시대로 회자되는 작금의 국내정치현실에서는 이념의 상실이 당연시되는가 하면, 정권 교체기를 맞아 정치엘리트들은 권력 장악에만 매몰되어 정치사회의 자율성을 포기하거나 희생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사회의 대표성조차도 지역감정의 표출이나 이미지 조작이 가능한 선거방식에 의해 왜곡, 굴절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사회의 민주화와 활성화를 위하여서는 지역공동체의 성원들의 참여가 불가결하다. 3년마다 혹은 4년마다 한 번씩의 선거에 투표참여의 형태로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정치현장에의 관심과 지지의 동원, 정치의 생활화가 필요하다. 당선 직후 ‘투표율과 나에 대한 지지는 별개’의 문제라던 양상렬 전주시장이 취임사에서는 시민의 여론에 귀기울이겠다면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당부했다고 전한다.
이 말들이 구래의 임명직 시장들의 상투적인 담화와 차별성을 갖고 시민들에게 공감을 가져올 수 있으려면, 나아가 중앙권력으로부터의 자율성과 시민적 대표성을 갖추고 지역 정치사회를 활성화시켜 시정의 민주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진정으로 시민들의 참여와 협조를 구하려면 패권주의와 선거주의에 대한 경로로서의 이번 시장보궐선거에서의 시민 대다수의 투표불참의 진의를 여론조사를 통해서라도 깊이 헤아려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자치의 시대에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국제화니 지역개발이니 하는 정치적 구호나 공약들은 자칫 이데올로기적 담론 혹은 공염불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중호 / 전북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정치학을 전공했고 전북대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호남사회연구회, 민교협, 시민운동연합 의정지기단에서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은 전북대 민주화 교수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