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8 | [문화저널]
독자와 함께
조국은 하나다
문화저널(2004-02-12 11:55:53)
올림픽 가간동안 잠 못 이룬 지구촌 가족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올림픽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어왔지만, 분명한 사실은 근대올림픽의 역사는 서구 자본주의 발달사와 궤를 같이 해왔다는 점입니다. 오늘의 스포트가 거의 예외없이 자본의 질서에 충실하지만 그러나 그 속에는 빛나는 인간의 드라마도 있습니다. 미국의 제시 오웬스가 홀로 독일의 나치스트들을 무너뜨렸을 때, 식민지의 천년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눈물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우리는 한 시대와 인간의 고귀한 정신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번에 북한의 열여섯살 계순희 선수가 일본의 영웅을 무너뜨리고 시상대에서 펑펑 눈물을 흘렸을 때 우리는 인간의 고결함을 느낍니다. 칸트의 말처럼 아름다움은 궁극적으로 진리와 만납니다. ‘공화국소녀’의 어쩔 줄 몰라하는 맑은 얼굴속에서, 우리는 안팎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이겨가고 있는 북한의 힘과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지난달의 문화저널을 보고 어느 때보다도 많은 분들이 전화와 엽서를 주셨습니다. 문화칼럼을 써주셨던 홍태표 회장의 약력에서 1062년부터 교직생활을 시작했다는 오자를 발견하여 1962년으로 바로잡아 주신 독자의 전화도 있었고, 또 ‘독자와 함께에서 이야기했던 문화저널의 19세론에 대해서 ’그게 무슨 자랑이냐‘고 항의해주신 이름없는 독자의 편지도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역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을 경상도 출신이라도 밝힌 독자 한분은 강준만의 문화비평에 대해 ’너무 지나치다‘고 항변해 주셨습니다.
독자들은 공개적으로 간행된 잡지와 글에 대해 어떤 의견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의견의 맞고 틀림을 따지기에 앞서 독자들이 갖는 느낌과 평가는 문화저널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고 관심의 표현이라고 믿습니다. 편지와 전화로 의견을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다만 정당하고 자신있는 의견이라면 독자께서는 꼭 이름과 연락처를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여기에 다시 전문을 싣지 못하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광주의한 독자께서는 ‘칼날처럼 시퍼렇게 선’ 강준만 문화비평의 ‘서술이 시원했습니다’고 편지를 보내주셨고 유용주의 시 ‘구멍’에 그려진 벌판과 산과 허방과 하늘이 자신이 어렸을 적 그렸던 고향의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 수 있느냐'고 감동하셨습니다.
이번 8월호는 농촌과 책이야기가 많이 실렸습니다. 피서를 떠나면서 혹은 다녀와서라도 우리가 살아왔던 농촌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혹여 피서를 못가시는 독자들께서는 문화저널이 권하는 이 여름의 책들로 더위를 한 번 이겨보았으면 합니다. 무더위에 독자 여러분모두 건강하시기를.
다음 9월호에 문화저널은 대망의(?) 통권 100호를 맞이합니다. 더욱 더 성숙한 얼굴로 독자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편집부)
객사는 누구를 위한 휴식공간인가
지난 토요일 오후 시내에 들렀다가 아이들과 함께 도시락을 싸들고 객사를 찾았다. 도심속에 객사와 같은 고적하고 넉넉한 녹지공간은 바쁜 마음에도 늘 다정스러운 눈길이 머무는 곳이다. 특히 객사가 오랫동안 굳게 문이 잠겨있어 시민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늘 안타까운 마음이었다가, 지방자치제 이후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했기에 반가운 마음이 더했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 아이들 손을 잡고 찾아간 객사는 듯밖에도 문이 잠겨 있었다.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개방을 결정한 이상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문을 열어두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문을 닫는 시민공간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전주시 금암동 한은숙)
<표지설명>
다시 농민가를 부르며
지난 달 표지사진은 제49회 백제기행에서 참가자들이 쪽물을 들이는 모습과 전주대사습 대회의 한 장면으로 구성했었다. 많은 분들이 표지설명이 없어 의아해하셨고 이점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한다. 이번달 표지사진은 오늘의 농촌과 농민을 주제로 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농민들이 느끼는 절박한 위기의식은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표지사진은 전북일보 사진부의 자료협조와 박홍규 선생의 현장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