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8 | [문화비평]
김대중의 ‘지역간 정권교체론’
글/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
(2004-02-12 11:54:16)
“정치는 이념이나 정책에 따라 정당이 만들어지고 대결을 해야지 지역에 따라 편이 나눠진다면 국가가 분리되었거나 연방제를 할 경우에 나올 수 있는 논리 아닐까요. 이것은 정치 일반론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월간조선」96년 7월호 인터뷰에서 조갑제 부장이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에게 던진 질문이다. 백 번 옳은 질문이다. 조부장의 질문은 김 총재의 이른 바 ‘지역간 정권교체론’에 대해 일부 국민이 갖고 있는 의아심을 대변해 준 것이라 보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지역간 정권교체론은 오히려 때늦은 것 감이 있다. 진작 나왔어야 했다. 왜 그런가? 한국 정치 자체가 정치일반론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의 40년에 가까운 특정 지역에 의한 집권과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을 정치 일반론으로 설명할 수있는가?
지역간 정권교체론이 안고 있는 ‘교과서적인’ 문제에 대해선 옳은 질문을 잘 던지는 이 나라의 언론과 지식인들에게 물어보자. 특정 지역에 대한 패권주의를 인정하는가? 도 특정 지역에 대한 정치·경제적 차별이 그 지역민에 대한 사회 문화적 차별로 이어져 국가를 분열시키는 현실을 인정하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걸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 묻겠다. 그런 현실에 대해 어떤 반대와 어떤 저항을 했는가? 지역간 정권교체론이 나오니까 모두들 사설 지면을 할애해 가면서 교과서적인 비판을 혹독하게 가한다.
언론은 민심과 동떨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중앙일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월간지『윈』96년 7월호에 실린 지역간 정권교체론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그걸 잘 웅변해주고 있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지역적으로 평등하지 못하다’고 믿는 사람이 전체의 77.2%에 이르며, ‘지역간 정권교체론에 공감한다’는 사람은 전체의 59.5%에 이른다.
물론 우리는 지역간 정권교체론이 ‘영남권 배제 이간책’이라고 믿는 사람도 전체의 31.9%에 이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오해는 언론에게 책임이 있다. 언론이 지역간 정권교체론의 실상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질 않았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빚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지역간 정권교체론은 ‘거국 내각 구성’을 전제로 삼고 있다. 악을 악으로 갚을 수는 없는 일이다. 너희가 해 먹었으니까 우리도 해 먹어야겠다는 심보가 아니란 말이다. 인재 등용과 지역 개발에 있어서 탕평책을 쓰겠다는 것이 지역간 정권교체론의 요체인데 그것이 왜 ‘영남권 배제 이간책’이란 말인가?
김 총재를 놓고 말하자면, 지역간 정권교체론은 그가 그간의 ‘잔꾀’에서 벗어난 대 진보자. 그는 과고 ‘4자 필승론’이니 하는 씨알이 먹히지도 않을 논리로 자신의대선 승리를 꿈꾸어 왔다. 검찰, 경찰, 텔레비전을 집권 여당에게 내주고서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의 감각은 순진한 것인지 미련한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낙후돼 있었다. 지역간 정권교체론은 그 성공 여부에 불문하고 대선승리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고 하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또 하나 남아 있다. 김대중 총재가 그간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던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와 손을 잡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두 김 총재의 연합은 민주화를 염원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곤혹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화도 지금과 같은 지역주의 정치판에선 영원히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 자명해진 이상, 우리는 지역주의 해소가 민주화의 핵이며 설사 그 두 가지가 전혀 다른 것이라 할지라도 전자가 후자의 상위 개념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의 문제가 남아 있다. 그들의 결합이 궁극적으로 가능할 것인가? 이 물음은 두 사람에게 맡겨 두자. 그들은 나름대로의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인들이다. 오히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두 사람이 연합해 집권을 했다 하더라도 동거 체제하에서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김대중 총재는 “우리가 뭉치면 못할 일이 없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그건 정치적 술수 차원의 발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뭉치면 그간의 정치 패러다임에선 못할 일이 없을런지는 몰라도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문제들이 생겨날 것이다. 권력을 공평하게 나눠 먹는 것이 집권의 최대 목표일 수는 없다. 요컨대, 두 김 총재의 각기 다른 색깔이 국정 운영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지역간 정권교체론이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 양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서로 모여 단합 세미나를 개최하면서도 돈독한 우의를 과시하는 걸로는 어림도 없다. 둘 사이의 공통 분모를 골라내고 도저히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는 것도 미리 가려내야 한다. 그리고 그걸 공청회와 같은 공개적인 석상에서 활발하게 논의해야 한다. 물론 불거지는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만의 하나, 그걸 얼렁뚱땅 넘기려 들 경우 유권자들은 그들의 연합에서 불안 요소를 발견하고 등을 돌릴 수도 있다. 아니 그 이전에 국정운영 철학이 서로 너무도 다르다면 그들은 연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양 김 총재는 아마도 그간 그들의 정치 수사(修辭)가 각자 자기 정당화의 차원에서 필요 이상의 양극화를 걸어 왔다는 걸 인정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건 이들의 연합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의 낙관론이다. 어찌됐건 중요한 건 모든 걸 ‘햇빛’ 아래 내놓는 당당함이다. ‘밀실 정치’는 3당 통합 한번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