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7 | [저널초점]
최규하 대통령과 “고백”
글/천이두 문화저널 발행인
(2004-02-12 11:50:32)
60년대 초던가. 꽤 오래 전에 히치콕 감독의 〈나는 고백한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화제를 모은 일이 있었다. 몽고메리 크리프트라는 배우가 신부 역으로 나오는 영화인데 그는 한 살인자로부터 자기가 살인자임을 밝히는 고해성사를 듣는다. 그런데 그 피살자는 이 신부와도 아는 사이인데다가 뜬소문에서는 이번 살인 사건의유력한 용의자의 하나로 바로 이 신부를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언론에서는 세월 만났다는 듯이 신부와 피살자의 관계를 연일대서특필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아예 신부가 범죄자이거나 한 듯이 그를 몰아붙인다.
신부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사실대로 고백해 버리면 따가운 여론의 화살은 피할 수가 잇지만, 고해성사를 들은 신부가 그 내용을 입밖에 내서는 안된다. 고해성사 받은 바를 남 앞에 발설하지 않는 것은 신부로서 그의 하느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미치고 뛰다 죽을 처지에 놓였지만 신부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다. 다행히 엉뚱한 방향에서 진상이 밝혀짐으로서 범인의 정체는 드러나고 벼랑에 몰렸던 신부는 극적으로 구원받게 된다. 〈나는 고백한다〉라는 것이 제목이었지만 사실은 주인공인 신부가 끝까지 고백하지 않은 이야기인 것이다.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혹독한 핍박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고백하지 않은 점이야말로 그의 사제로서의 높은 도덕성 내지 경건성을 보여주는 면이라 하겠다.
최근의 소식으로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 12·12, 5·18 등 일련의 사건의 증인으로 채택이 된 것이 분명하다. 만일 최 전 대통령이 이번의 소환에도 불응할 경우 검찰에서는 구인장을 발부 할듯한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제, 일은 올 데까지 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제까지 12·12, 5·18 내지 최 전 대통령의 납득이 가지 않은 하야 등등 일련의 사태에 대한 검찰 측의 증언 요청을 최 전 대통령은 일관하여 거절해 왔다. 그 이유인즉 대통령 재임 시의 일을 퇴임 후에 발설하는 전례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 였다. 말하자면 〈나는 고백한다〉의 주인공이 끝까지 고백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사제로서의 도덕성 내지 경건성을 제고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직 대통령으로서 재임 당시의 일을 퇴임 후에 발설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전직 국가 원수로서의 채통을 세우는 일이라는 논리인 듯하다.
그러나 최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설득력이 없다. 12·12, 5·18, 그리고 대통령의 갑작스런 하야 등 일련의 사태는 국민적 의혹이 증폭될대로 되어 있는 일들이며, 이 의혹을 씻어 내고 그 진상을 드러냄으로서 바른 역사를 세우는 일은 우리 시대의 민족적 과제인 것이다. 이는 전직 대통령의 체통에 훨씬 우선하는 국민적 의무요 역사의 소명인 것이다.
최 전 대통령은 재임 시에 〈용각산〉이라는 애칭을 받은 바 있다. 살벌한 신군부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용케도 잘 버티어 낸 그의 과묵한 성품에 부여한 애칭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행여 소리 없다는 용각산처럼 신군부에 의하여 빚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묵과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자리에서도 소리 없이 물러나지 않았을까 하는 국민적 의구심이 이 애칭
최 전 대통령은 재임 시에 〈용각산〉이라는 애칭을 받은 바 있다.
살벌한 신군부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용케도 잘 버티어 낸 그의 과묵한 성품에
부여한 애칭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행여 소리 없다는 용각산처럼 신군부에 의하여 빚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묵과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자리에서도 소리 없이 물러나지 않았을까 하는 군민적 의구심이 이 애칭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야 어떻든 이번에도 입을 다물어서는 안된다. 〈나는 고백한다〉의 주인공이 끝까지 진실을 고백하지 않은 것은 자기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행한, 그런 점에서 과연 사제로서의 자신의 도덕성 내지 경건성을 제고한 용기 있는 소행이라 할 수 잇지만,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을 고백하는 일은 국민으로서 그리고 전직 국가원수로서 그의 도덕성을 표현하는 당연한 소행이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우리는 숱한 의혹의 오리무중을 겪으며 살아왔다. 그런 의혹의 오리무중이 세월이 흐를수록 시간의 이끼를 뒤집어 쓴 채 민족사의 바른 길을 도처에서 가로막고 있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이란 말은 사전 속에나 있는 미사여구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게 되어 있다. 모든 올바른 일에 대한 국민적 냉소주의는 여기서 온다. 보람차게 전개되어야 할 민족사의 미래에 대한 집단적 허무주의는 여기서 온다.
이런 모든 병적인 요인들은 이제 제거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공명정대한, 정의와 진실이 일월 같이 살아나는 그러한 역사를 이룩해 나가야 한다. 이런 역사를 이룩해 내지 못하는 한 경제성장의 수치가 약간 올랐다 한들 그것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이 엄숙한 시점에 최규하 전 대통령은 서 있다. 이번이야말로 전직 국가원수로서의 그리고 민족사의 대변자로서의 자신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민족과 역사 앞에 떳떳이 나서서 용기 있게 〈고백〉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