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7 | [문화저널]
순창 소리의 맥을 잇는다
아있는 소리의 숨결
순창북중학교 판소리특활반을 찾아서
글/김태호 「문화저널」기자
(2004-02-12 11:47:09)
우리의 삶의 터전 위에서 사시사철 함께 살아온 전통문화는 밖에서 들어오는 것 혹은 새롭게 우리 안에서 생기는 것들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며 창이된다. 판소리가 우리의 심성과 감정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면 이는 다른 사물을 바라볼 때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수용하는 하나의 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지식이 아닌 삶과 생활의 방식으로 학교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고 나누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있다.
순창은 역사적으로 걸직한 명창들을 적지않게 배출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판소리사는 후기 8명창 시대를 맞는다. 이 8명창 가운데 서편제소리의 시조가 되는 박유전과 김세종, 장자백 등 시대를 풍미한 명창들을 배출하고 있는것이다. 고유의 민속악이 가지고 있던 서민지행적인 소리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였다.
이런 명창의 미의식이 살아있을 듯한 순창을 찾아가는 길은 비구름을 안고 있는 산들이 많다. 장마비가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가랑비가 내리는 6월 25일 순창초등학교에서는 순창교육청이 주최하는 순창군학생예능경연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순창초등학교 넓은 강당에는 백여 명의 초중등 학생들이 무대 앞쪽에 모여 시끌시끌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무대에 오를 차례를 기다리며 다소 긴장하여 말을 던지는 아이들, 혹은 이미 시험을 치른 아이처럼 무대에서 내려와 맘껏 떠드는 아이들, 무대에 올라 심사위원과 친구들을 앞에 두고 춘향가 한 대목을 부르는초등학교 여학생은 제나름의 공력을 들여 몰두하고 있었다. 한복을 입은 여학생이 곱게 인사를 하고 내려서자 곧이어 청색 조끼를 맞춰입은 42명의 짧은 머리 남학생들이 부채 하나씩을 들고 무대 올라 자리를 잡는다. 42명이 한복소를 내는 판소리 연창이다. “이산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구나......” 판소리 단가 가운데 사철가 한 대목이 시작된다. 부채를 쥐고 소리 사이사이에 움직이는 손짓은 짐짓 소리의 맛을 느꼈을까 하는 발림이다.
순창 북중학교 2학년 2반 아이들이다.
반 아이 가운데 문수는 소리하는 것이 재밌다. “놀면서하는 것이 재밌어요. 소리를 지르면 스트레스가 다 풀려요.” 2학년이 되면서 판소리반인 양병환 선생님 반에 들어온 것이다. 특활반으로 운영되는 사물놀이반과는 달리 담임 선생님과 함께 문수를 포함한 42명의 아이들은 매일 점심시간과 방과 후를 이용해 30분씩 ‘소리를 지른다’ 단가로 목을 풀면 심청가 한 대목이 교실과 학교를 울린다. 랩음악의 가요가 유행하는 요즘처럼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빠른 변화를 쫓아가기 위해 거의 모든 힘을 쏟고 쉽게 지치지만 판소리반 아이들은 우리의 리듬을 통해 온순하고 진득한 심성을 가꾸어 간다고 양 선생님은 설명한다.
하루 수업이 끝나고 청소를 하고나면 오후 4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더러는 ‘도망’가고 싶어하는 아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소리보다는 아무래도 맘껏 노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분 소리를 맘껏 질러보는 것도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은 안다. 어쩌면 내심 ‘깔아준 멍석’위에 올라 밖으로 맑게 탁트인 창문처럼 목을 열어보고 싶어 기다렸던 ‘녀석’도 있어 보인다.
무대는 교실 교단이다. “소리 한 번 하끄나”하는 선생님의 어쩔 수 없는 제안에 누구 하나 토를 달지 못하고(?) 모두 교단위로 올라가지만 무대가 좁아 교실 출입문부터 창쪽까지 내려선다. 어김없이 손에는 부채가 하나씩 쥐어져 있다. 가사를 소화해내는 속도도 어른들에게 비교할 것이 아니다. 소리의 내용을 이해하고 암송하는 데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리건만 아이들은 금방이다. 사철가를 2주만에 외우는 열성은 아이들 스스로도 신나게한다. 경연대회가 끝나고 선뜻 음료수 하나도 아이들에게 내놓지 못해 반 아이들 보기가 짠한 양병완 선생님은 교실 뒤편에 아이들을 바라보며 북채를 잡고 장단을 매긴다. 사철가 한 댁을 하고 호나가를 풀어놓고 다시 심청사를 한 대목한다. 선생님과 눈을 맞추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최고보다 최선을’ 다하는 진지함과 열성이 묻어있다. 어른스럽다는 것을 바로 이 진지한 열서에 있다. 조용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눈빛은 이미 빠른 리듬의 대중가요보다는 판소리 가락에 동화된 여유와 넉넉한 힘을 느끼게 한다. 42명이 연창을 하며서 우리것에 대해 느끼는 소중함이 서로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교실 앞 칠판위에는 ‘최고보다 최선을’이라는 학급목표를 써너은 액자가 걸려 있다. 우리의 것을 맘껏 배우고 불러 볼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러운 일인지 모른다.
양병완 선생님은 소리의 공력이 들어가야 판소리가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자신이 지난 1982년부터 관심을 가지고 농악, 민요, 사물놀이, 판소리등을 배우러 남원과 임실 등지를 쫓아 다니던 시절과 1985년부터 순창지역 5개 학교선생님들끼리 사물놀이반을 만들어 모두하던 때, 1988년쯤 순창문화원에서 홀로 농악강습회를 열고 찾아온 회원들을 지도하던 때, 모두 그가 말하는 ‘공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양병완 선생님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과학과목이다. 판소리와는 전혀 무관한 과목이다. 수의학이라는 그의 전공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1972년 건국대학교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수의사로 개업을 하고나서도 그는 교사의 꿈과 민속악에 대해 품고잇던 애정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순창있던 동야통신중고등학교라는 야하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아예 직업을 교사로 바꾸고 항상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러면서 어깨넘어로 배워온 농악은 방학 때마다 고 양순용 선생을 찾아가 가닥을 잡아나갔고 웃다리 농악을 김덕수 씨에게 배웠다. 그리고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을 찾고 강도근 선생에게 소리를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러한 그의 전력이 곧 판소리반 지도의 소리에 빠져있는 그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순창문화원을 통해 그는 「휘몰이 풍물패」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오늘 있었던 학생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선생님 세분도 그가 가르친 동료이다.
판소리반은 1994년 전남광주일보사가 주최하는 제39회 호남예술제에 처음 출전하여 판소리분문에서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했다. 양병완 선생님이 1993년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자리를 옮겨와 판소리반을 만들고 연습을 시작한 지 3개월만의 성과였다. 그 동안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던 교장 선생님의 시선과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잘하고 있는 일인지 간혹 확신할 수 없던 양 선생님 자신도 자신감을 갖게 된것이다. 이때부터 순창북중학교에서는 판소리와 사물놀이 농악반등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다른 반 아이들도 연습때면 찾아와 기웃거리기도 하고 흉내내기도 한다. 일학년들 가운데는 내심 2학년 2반을 선망하는 아이들도 많게 됐다. 이러한 인기는 대외 수상경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어디에 나가서 상을 받아오면 우선 뭔가를 함께 해낸 기분에 어깨가 뻐근해지며 으쓱으쓱해지기 때문이다. 북중학교 판소리 반은 광주 호남예술제에 참가해 제39회부터 3회에 걸쳐 판소리 연창으로 최고상을 받았고 전국학생국악대회에서도 제 8회와 제 9회에 걸쳐 대상을 수상했었다.
방과 후 소리연습을 통해 양병완 선생님은, 사물놀이나 가야금 등의 악기를 연주하면서 필요로 하는 특출한 기량과 달리 소리는 누구나 우리의 가락을 소화해낼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력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양 선생님 반 아이들 모두를 소리군으로 만들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 하나 우수한 소리꾼을 길러내려는 것도 더욱 아니다. 반 아이들 전체가 더불어 우리의 가락을 배우고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면서 거기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아이들 가운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에서 단가나 판소리 한 대목정도는 제법 구성지게 부르는데 이런 모습을 보게 될 때 양병완 선생님은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반 아이들이 아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손때 묻은 부채다. 아이들은 등하교 길에 부채를 즐겨 들고 다닌다. 처음에 어색하고 쑥스러워 마지 못해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것이 이제는 자랑처럼 손에 들려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자연스런 모습이 된 것이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멋은 바로 이처럼 연주장이나 박물관 같은 곳이 아닌 생활 속에서 묻어나는 것이 진짜 일것이다.
연습을 모두 마치고 격력의 종례도 마치고 선생님과 아이들은 서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나눈다. 진양조가락이다. 천천이 머리와 허리를 숙여 하는 인사는 서로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가을 주고 존중의 마음을 갖게 한다. 이러한 판소리반의 인사법은 마음을 순화시키기에 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