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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7 | [사람과사람]
‘꼴찌’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교사 군산 수송초등학교 김종필 선생님
글/김연희 전주문화방송 구성작가 (2004-02-12 11:43:09)
‘남북어린이 어깨동무 그리고, 북녘 친구들에게 내얼굴을..... 시끌시끌 짜끌짜끌 아이들 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교실 창문 넘어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슬라이드 글씨다. 낯선 사람의 방문에 놀란 토끼 눈을 뜨고, 붓과 크레파스의 손길을 멈춘 아이들은, 서슴없이 누구예요?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그림 그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서로 찍어 달라며 카메라 렌즈에 달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포커스를 제대로 맞출수 없을 정도로 밝은 분위기의 수업시간이었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난데없는 사인세례. 무슨일 하는 사람인지 알 필요도 없이, 한 아이가 노트 한 장을 쭉 찢어 ‘사인 하나 해주세요’라며 뛰어드는 소리에 몰려나오는 아이들. 아니 웬 사인? 생전 한 번 해보지도 않앗던 사인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나? 방송의 유명세 덕택ㅇ에 사인 인사를 간곡히 거렂ㄹ한 것은 있었지만,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아이들 앞에는 어쩔수 가 없었다. 마음을 고쳐먹는 수 밖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너무도 예쁘다는 듯이, ‘그렇게 하면 부담되시잖아’ 하다가 아예 ‘팔 아파서 어떻하죠?’하면서 아이들을 받아주라는 은근한 압력! 이것이 김종필 선생님(33)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이었다. 군산 수송초등학교 5학년 1반. 김종필선생님과 아이들의 하루는 신문을 읽는것부터 시작한다. 여느반과 달리 아침 조회시간에는 아침의 화제거리로 난상토론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주제가 되든 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한마디씩 던지는 아이들의 생각은 상상을 뛰어넘는 의외의 대답부터 박수를 보내고 싶은 대답까지, 김종필선생님은 교육이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느끼면서 수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국어, 산수를 가르쳐야 하는 우리 학교의 현실에서 잘 철저히 직권남용(?)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로고나 함수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안되는 것이라면 지금의 교육열은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한 학교열일뿐이라고 일축한다. 이런 일이 익숙해지기까지 김종필 선생님 대화의 대상은 아이들이었다. 표정만 보아도 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대화가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 아닐까? 아침에 엄마에게 돈 천원 때문에 혼나고 불만을 가지고 나왓는데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리 없고, 아빠가 억울하게 교통사고를 내고 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차가 편리한 교통수단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아이들의 작은 아픔을 겉돌지 않게 쓰다듬어 준다는 것은 보통의 정성이 아니면 안되는 일이다. 김종필 선생님의 수업시간은 풀어놓은 자유시간이다. 움직이고 싶고, 떠들고 싶어하는 이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까지도 종용할 것을 강요하는 학교생활에서, 수업시간만큼은 풀어놓고 싶은 것이다. 정숙하게 정렬시켜 놓고 한 시간 그 교과에 대해 단순히 진식을 전달하고 나도 피곤한 생활인데, 모듬 형태로 앉아 분반 토론하도록 하고, 직접 환경신문을 만들고, 재활용 비누를 만들어보고, 슬라이드를 열심히 활용하는 수업은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김종필 선생님이 세간에 관심을 끈 것은 고사리 손길로 모은 4만 2천 50원의 소중한 성금이 한겨례 통일 문화재단 보내지면서 부터였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용돈을 모아 통일문화재단의 발기인으로 집단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아이들의 의견이었고, 학급회의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하도록 도운 책임을 김종필선생님은 면하기 어려운 일 아닐까? 얼마전 강원도 고성이 산불로 많은 피해를 입었을때, 즐거운 어리이날을 맞기 어려웠던 고성어린이들에게 4만9천3백30원의 성금을 보내기까지도 김종필 선생님의 생각은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기도 바쁜 시대에 북한어린이를 생각하고, 고성의 어린이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보내진 돈 얼마보다도 더 큰 값어치의 일이었다. 7년전 작은 시골에서 시작된 교직생활을 교실안 보다도 산과 들에서 더 많이 보냈다는 김종필선생님은 학교 생활만큼이나 자신의 삶도 부지런히 살고 있다. 내일 모레면 그의 첫 장편동화집 『땅아 땅아 우리땅아』가 나온다며 만족스러워 하는 그 표정은, 또 하나의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낸 호기심어린 아이들의 표정과 다를 바 없었다. 유달리 독특한 수업방식 때문에 대학 다닐 때 지독한 운동권 학생이지는 않았나, 그래서 고집스런 수업을 이어가고 있진 않나 하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은 때도 있었고, 학교의 제재가 있었던 것은 한두번의 일이 아니었다. 물론 전교조 선생님3들의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관례를 벗어난 행동이 불필요한 오해를 낳았을 뿐이다. 그는 대학 문학반에서 시와 소설을 쓰며 현실을 바꿔보고자 했던 문학지망생이었다. 그래서 우르과이라운드가 우리 농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는 교육방침에 양심을 맞긴 채 가만히 잇을 수없어 펜을 든 것이, 내일 모레면 나온다는 그의 첫 작품집 『땅아 땅아 우리땅아』이다. 이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필자로서 아이들의 매서운 평가만이 남아있다. 첫 학교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시골이어서였는지, 농촌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하나 둘씩 문을 닫아가는 학교와 눈에 띄게 줄어든 학생들 사이에서 어렵사리 그땅을 지키고 있는 몇몇 학교의 모습은, 현직 교단에 몸담고 있는 그에게는 많은 숙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 19개월된 큰 아이와 이제 백일을 맞은 둘째 녀석의 수발로 아침을 여는 일은, 이웃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내의 손을 덜어주는 일이다. 아이들을 무사히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인계하고, 나란히 출근한 후에는 수업시간 못지않게 피곤한 잡무속에 파묻히게 되고, 일과 수업을 마치고 난 후에는 영어공부, 컴퓨터공부, 글쓰는 작업.... 하루해를 이렇게 보낸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보고 흔히 아이들만큼 어리게 산다고들 한다. 사회생활의 부족함을꼬집는 말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눈높이를 맞춰가면서 생활할 수 있느냐며, 사람사는 사회는 다 똑같은 것이고, 오히려 어른들이 가진 속임을 아이들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이 통할 수 있다고 은근히 자랑을 한다. 김종필 선생님은 전북대학교 국문과로 대학을 출발했다. 하지만 뭔가 잘 적응이 되지 않았고 다시 전주교육대하에서 출발하면서 가지게된 교육에 대한 관심을 지금 교단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은, 피가 꿇어서 했던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김종필 선생님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바로 꼴찌. “모든 것을 중간을 하고자 하는 것은 욕시입니다. 우리반이 학년에서 성적에서 꼴찌일지 모르지만 일등인 것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반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은 어느반도 따라 올 수 없을 정도로 꼭대기에 있습니다. 욕심이 꼴찌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꼴찌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만만한 젊은 교사. 용기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당당함을 마음껏 누리는, 혼자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느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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