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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6 | [저널초점]
80년대의 투철한 정신 딛고 일어 선 90년대의 희망 6월 항쟁 9주년, 전북지역 문화패들의 활동
글/허옥칠 「문화저널」기자 (2004-02-12 11:32:07)
5월도 다가는 30일 전북청년문학회가 기획한 첫 번째 문학강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한달 동안 네 명의 작가를 초대해 문학 이야기를 들어 본 이 강좌는 어떤 강좌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들 단체가 해야 할 몫에 대한 자신감과 힘을 부여했다. 청년문학회의 이러한 성과는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같은 문화패들의 활동과 더불어 일반인들에게 이들이 접근해 나가는 방식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청년문학회와 더불어 이 지역 문화판의 요소 요소에서 끊임없이 대중화 작업을 위해 자신들의 살을 깎아 내며 90년대식 운동의 변화된 양상을 이끌고 나가려는 단체들이 있다. 놀이패 ‘우리마당’, ‘삶과 희망의 노래’, ‘선언’, 우리그림 창작회 ‘그림마을’과 ‘청년 문학회’ 등 전북문화예술운동협의회라는 틀거리 안에 모여 활동하는 모임이 그들이다. 87년 6월 항쟁이 현대사에서 가지는 의의를 새삼 강조하지 않더라도 87년을 계기로 운동권 진영 안에서 일어난 수난으로서 문화를 바라보던 낮은 시선들을 탈피하려는 노력들은 6월 항쟁 9주기를 맞는 시점에서 되돌아볼 때 더욱 소중하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고 꾸준히 지향해 온 활동의 근간은 전문성과 대중성의 확보이다. 80년대의 토양을 딛고 자란 이들이 90년대의 짙은 안개 속 같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의 일환으로 가장 두드려졌던 현상은 대중 앞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물론 그 결과가 상처로 돌아온다 해도 감내할만큼 내부적으로 성숙한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지난해는 그간의 내부적이고 소극적으로 진행되어 왔던 이들의 활동이 봇물 터지듯 외부로 표출된 시기였다. 87학번 문화패 출신들이 ‘민족문화와 지역 안의 올바른 정착과 보급’을 운동구호로 내걸고 만든 ‘우리마당’은 문화운동집단이라는 강한 이미지에서 궤도를 수정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풍물과 대금, 탈춤 등 다양한 민족 문화를 보급하고 생활 속에 우리 문화 되살려 내기 작업을 해왔다. 95년 11월에 예술회관에서 열렸던 정기 공연 <경사났네, 경사났어!>는 그동안 ‘우리마당’이 견지해 온 대중화 작업을 종합적으로 보여주었다. 30여 명이 출연하여 사물과 춤과 슬라이드, 극, 마임, 노래, 민요, 설장고, 판굿 등 다양한 형태의 실험의식을 보여준 이 공연은 서툴지만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당당하게 내비친 자리로 평가받기에 족하다. ‘우리마당’보다 일 년이 앞서 출발한 삶의 노래 희망의 노래 ‘선전’의 정신은 80년대 중반 이후 활기를 띠던 민주화 운동의 열기와 함께 대학 내에서 활발한 노래 운동을 주도했던 대학 노래패 출신들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89년에 조직한 노래패 ‘소리모둠’이다. 이후 ‘하나 될 노래’라는 새로운 노래패와 나뉘어져 각각 서로의 활동 영역들을 넓혀 나가다가 92년 두 노래패가 뜻을 합쳐 ‘선언’이라는 이름을 걸고 이 지역에 오래 운동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이들은 먼제 민중 음악을 대중들과 친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중들과의 만남을 자주 가져야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음악강좌 개설, 정기적인 음악교실 운영, 콘서트 형식의 소극장 공연 등을 해 왔다. 올해 초 제4회 정기공연에서「노래, 사랑, 땅 “돈돌라리”」라는 제목으로 보여주었던 구전가요와 놀이동요를 비롯한 생활 주변의 건강하고 다양한 노래들은 시민과 함께 하는 교감의 무대로, 이 지역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특성 있는 음악을 매개로 대중을 만나려는 ‘선언’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들보다 늦게 창립한 ‘청년문학회’나 ‘그림마을’도 제 몸 추스리기에 바빴던 삼 년여의 기간을 넘어서면서 변화된 자세로 대중 앞에 나서기 시작했다. 창립 3주년을 기념하는 선집『필부를 꿈꾼적 없다』를 내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고 있는‘청년문학회’는 80년대의 자세를 취하고 있기에는 그 하중이 너무나 버거워서 견디기 힘들고, 그 하중을 피하여 자신을 바꾸자니 온 몸을 내던질 만큼의 확신에 찬 새 길은 보이지 않았다고 서문에서 밝힌 바 있다. 그 90년대가 가진 당황스러운 고통속에서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던 셈인데 더 이상 80년대의 그 자세를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또 하나는 80년대를 투철하게 계승해야 한다는 것을 이들은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 말처럼 이들이 처한 입장을 대변해 주는 적절한 표현은 없는 듯 하다. 그들은 이미 새로운 자세로 대중들을 만나고 있다. ‘생활인을 위한 그림터 우리그림 창작회’라는 구호를 내걸고 강습회를 운영하면서 전문성과의 처절한 싸움을 해야 했던 ‘그림마을’도 지난해 처음으로 전시회를 마련,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대중들 앞에 스스로 나섰다. 이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역 문화판 속에 뛰어들어 미미하나마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깨달음 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이 변화된 자세로 제 껍질을 깨고 나오기까지의 절망과 회의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던 것은 이들이 80년대의 투철한 정신을 끝내 고수하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더 단단한 믿음으로 바로 우리 곁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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