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6 | [문화저널]
옹기장이 이현배의 이야기
산다는 게 뭐 별 건가
문화저널(2004-02-12 11:30:13)
올 초에 아주 거창한 이름의 감투를 썼다. ‘사단법인 두레민족생활문화연구원 우리음식연구소 준비위원장.’ 이렇게 나는 가끔 조리를 잘할 거라는 오해를 받아 왔다. 어려서부터 들일하는 어머니 대신 가끔 부엌데기 노릇을 해 왔기에 부엌일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고 학교에서 조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얼른 봐서는 그렇게 보이나보다.
고등학교 이 학년 때부터 무조건 상경하여 취직하여 했던 곳이 짜장면집이었으니 조리에 대한 의지는 일찍부터 있었고 맛은 곧 멋이요, 멋이란 기억되지 않으나 기억하고 있는 것, 기억되지 않는 긴 듯 만 듯 그 무엇이니 그게 바로 맛이라는 조리 미학까지 정립했던 것이다.
그런데 맛이란 게 먹어본 맛이라고, 어려서 먹어본 게 아버지와 들을 나가셨던 어머니가 집에서 돌아와 아버지가 소를 외양간에 매는 등 이런저런 단도리를 하는 동안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후다닥 차려내는 음식이니 대개 조리법이 단순하고 맛이 담백했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맛이란 담백하고, 담백한 맛은 단순한 조리법에서 나오는 것이란 생각이 자연스레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조리사였던 것이다.
우리 집의 구조는 부엌을 통해 방을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일 마치고 들어서면서 나는 먼저 가스렌지 불을 끄는 버릇이 있다. 이거 때문에 아내와 가끔 다투기도 하는데 아내는 국밥집 딸이었던 터라 무슨 음식이든 매 끊여야 맛이 나다보니 서로 불 가지고 시비하게 되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은 누가 뭐래도 중요하고 큰 일이다. 정치니, 경제니, 문화니, 사상이니 하는 게 다 먹고사는 일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이것들이 근본을 무시하고 어렵고 복잡하게 되었다. 이젠 다시 줄여 나가야겠다. 줄이고 줄여서 먹고사는 일을 다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산다는 게 뭐 별건가. 먹고사는 거다. 맛있게, 멋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