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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6 | [문화저널]
다양한 독자들의 경험세계를 인정하는 미덕
글/여성문학연구모임 (2004-02-12 11:29:35)
‘또 하나의 문화’!? 1984년 『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라는 제목 하에 ‘또 하나의 문화’ 1호가 발간된 이후 12년 만인 1996년 봄『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 1-(안에서)』라는 부제를 달고 ‘또 하나의 문화’ 11호가 발간되었다. 11권의 책, 13년, 많다고 하면 많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우리의 생활 주변에 머물러 왔던 ‘또 하나의 문화’는 우리 사회의 가장 사적인 ‘수다’를 공적인 ‘담론’으로 끊임없이 부각시켜 왔다. 이 ‘또 하나의 문화’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동명의 ‘또 하나의 문화’동인들이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있다. 즉 ‘또 하나의 문화’는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이 벌이는 ‘또 하나의 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이하 ‘또 하나의 문화’는 ‘또문’으로 줄여 표기하고자 한다) ‘또문’ 운동은 기존 문화가 가지고 있는 보수성, 즉 사회 구성원에게 기존 문화에 순응하기를 강요하는 보수성과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하려는 획일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문화 앞에 ‘또 하나’라는 형용사를 붙인 것은, 바로 여러 개의 문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으로 기존 문화에 대해 대항하는 여러 문화 중의 하나라는 의미이다. 바로 이러한 ‘다른 문화’ ‘대안 문화’가 점차 퍼져다시 지배 문화가 될 수도 있고, 부분 문화로 정착될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그들은 또 하나의 ‘대안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문’이 그 동안 다룬 것은 결혼, 가사노동, 출산, 육아, 교육, 직업, 성 등 극히 사적이면서 여성적 영역에 속하는 주제들이다. 또 이들 주제들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성차별의 문제도 빠뜨려서는 안된다. 결국 ‘또문’은 가부장제나 남녀 불평등의 기존 문화를 지양하고 새로운 가치 체계의 문화 즉 일차적으로는 남녀가 평등한 ‘대안 문화’의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여성 문제 전문지이다. (그 이론적 토대는 가부장제에 무게중심을 두지만 더불어 사유재산의 발생도 여성 억압의 근원이라고 보는 이중기원론에 기반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다.)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 사람들은 누구나 결혼을 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결혼은 ‘선택과목’이 아닌 ‘전공필수’인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환상이요, 결혼은 생활이다’라는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결혼에 대한 기대치와 현실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선험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혼의 문제에 관해 사람들은 세 가지로 대처한다. 아예 독신을 선택하거나(하지만 종교와 관련한 독신을 제외하고, 평범한 독신으로 늙어 죽는 사람이 과연 이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아니면 현실과 타협하여 삶의 스타일로서의 결혼 생활로 넘어 가거나, 다시 독신으로 돌아가거나(이혼을 의미).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는 것인가. 그들에게 결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 1-(안에서)』는 바로 그러한 고민들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특히 ‘차이’를 강조한다. ‘압축적 변동의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가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다양한 집단들 간의 차이, 곧 취업 주부와 전업 주부의 차이, 성향의 차이, 그리고 세대간의 경험의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벽을 허물고 '연대 가능성’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한 사람과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그들 의식의 접합점을 생각해보려 한다. 그러나 과연 결혼이라는 초역사적인 제도를 논의함에 있어서 의식의 동일이 가능한 것인가. 혹은 동일 되었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과연 진정한 ‘동일’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는 두 권으로 출간된다.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 1-(안에서)』는 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한 이들의 글로서 결혼의 현장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고, 아직 출간되지 않은 2권에서는 결혼을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여 관계의 미학으로 이끌어가려는 시도들을 젊은 세대의 글을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우리 세대의 결혼 지도」레는 결혼 경력 2년에서 30년에 이르는 다양한 세대의 여자와 남자 10명이 자신의 결혼 생활을 풀어내고 있다. 결혼이 단 두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아주 견고한 제도라는 점을 절감하며,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유무형의 압력에 맞서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결혼 지도를 엿볼 수 있다. 시어머니들과 며느리의 갈등을 보여주는 「신고부 관계」에서는 독립된 자아로, 남자의 반대성인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평등 의식에 눈을 뜬 신세대 며느리와 기존의 봉건적 시어머니 상을 거부하지만 전통적인 관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이른바 50대의 신세대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결혼 뒤 여성이 겪게 되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정에서 소외되는 남성들을 세태를 엮은 보고서, 30대 여성의 성적 체험과 생각을 다룬 취재기, 결혼이라는 주제를 다룬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을 새롭게 읽어 내는 대중문화 비평과 여성의 외도를 다룬 베스트셀러 소설의 독자 분석기와 외도를 막기 위해 만신을 찾는 현상 분석기를 통해 영원한 사랑을 찾아 헤매는 중년 여성의 위기를 담아내고 있는 「세상 읽기」. 마지막으로 「여자가 지배하는 가정, 남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남녀 모두를 소외시키고 의사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공간의 문제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우리의 주거 문화는 여성성이 지나치게 우세하다’는 건축가의 주장에 이어 우리의 현대사는 가정/공공 영역의 분화를 재구성하기는커녕 더욱 강화시켜 왔음을 주장하는 인류학자의 주장을 담고 있다. 시대를 가로지르는 남녀 필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이 책은 결혼이 아직도, 여성에게 불리하며 남성 중심적인 제도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결혼에 있어서 불평등의 책임을 남성에게 돌리지 않는다. 다만 평등한 가정을 꾸미고자 하는 이들의 힘겨운 노력을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이 삶의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결혼을 ‘하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좋은 것’으로 조심스럽게 의미 부여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기존의 ‘또문’과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 1-(안에서)』의 커다란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또문’은 기존 문화에 대한 ‘대안 문화’의 형성과 실천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 1-(안에서)』는 문제 제기만 있을 뿐 새로운 ‘대안 문화’의 형성을 의도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 책이 가지는 한계로 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대안의 부재는 결혼이라는 주제가 가지는 복잡성과 민감성을 암시해 주고 더 나아가 하나의 교과서적인 해답을 제시해주기보다는 다양한 목소리와 다양한 독자들의 경험 세계를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 1-(안에서)』는 한층 더 진보된 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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