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6 | [문화칼럼]
아무리 우겨도 예향은 전주다
글/이호선 전주대 교수·일어일문학과
(2004-02-12 11:25:26)
프랑스 하면 파리요, 파리하면 세느강이다. 결코 서두름없이 한가롭고 유장하게 밑바닥으로부터 치올라오는듯하는 물 폭으로 넓은 강둑을 채우며 파리의 심장을 뚫고 흐르는 푸른 세느강 그 넓은 수면을 타고 대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센티멘탈한 샹송의 비음이 마음속 거문고의 줄을 퉁이겨 오늘도 쉬지 않고 흐르고 있다.
<라 세느>
세느는 노래하네
파리를 향하여 연정을 노래하네
사랑을 앓는 여인은 세느강이고
파리는 사랑을 앓는 사나이이고
이윽고 밤이 되면
파리와 세느는 서로 보듬어 안고
잠 속에 드네
(후라비앙·모노오 작시, 비앙상·스코트 작곡)
그 세느강 기슭에 이룩된 명소의 하나가 말라케에 하안(河岸)이다. 세느강 왼쪽, 수백년을 강물과의 대화로 늙어 온 고목들의 가로수가 가지런히 줄 서있는 강뚝로 따라 파리의 지성을 상징하고 진가를 높여 주는 고서점(古書店)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 그 뿐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호학(好學)의 선비들이 기웃거리며 서성이는 이곳에 이웃하여 프랑스의 지성을 상징하는 한림원이 의연하고 강 건너 저편엔 루불 박물관이다.
해서 한가로이 거니는 발걸음 하나 하나마다 역사의 이끼가 묻어나고 학예(學藝)의 내음이 배어나는 착각으로 지성의 발길들은 오늘도 말라케이 고서점 거리에 섰음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나 단연코 이곳의 상징이오 명물인 존재는 서점주들이다. 오두막 고서점 안의 낡고 때묻은 고서들을 닮았지 싶게 나이 지긋한 점주들이 많아 특히 두리번거리는 외국 손님을 책보처럼 따뜻한 마음과 넓은 지식으로 감싸준다는 것. 그들의 대부분이 자국어 외에 수개국의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진면목은 그렇게 능숙하듯 말하고 슬 줄 아는 외국어들의 마탕 위에 펼쳐지는 책들에 대한 놀라운 지식에서 발휘되고 있다. 듯이 통하는 손님을 만나면 끝없이 이어지는 그의 화제가 문학·미술·음악의 영역을 왕래하고 천문과 지리를 오르내리며 종교와 역사를 노크하고 경제와 과학에 언급하여 더듬거리는 법이 없다고 한다. 유명한 소설자 아나톨 프랑스도 이곳 고서점 출신으로 가게 명칭인 프랑스를 필명으로 삼았다 하니 그이유를 알 만하다.
어째서 이렇게 고리타분하게 이끼 낀 얘기를 글머리에 썼느냐면 이미 우리 전주(全州)에서도 이 비슷한 거리나 구역이 생겼어야 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지금이니까 서로 예향(藝鄕)임을 전국의 도시들이 다투어 입질하고 있고 특히 가까이에서는 광주(光州)가 앞선 느낌까지를 주고 있지만 아무리 우겨도 예향은 전주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예술의 분포와 이해 능력의 평균성(平均性)에 있다. 예향이란 그 고장에서 유명한 예술인이 몇 사람이나 배출되었냐는 특정인물의 숫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여, 그 고장 사람들의 거의 모두가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삶속에 밀접하게 연관지어 있고 그 고장 구석구석까지 예술의 여러 모습이 스며들고 있고 배어 있을 때 그곳을 우리는 예향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전주는 가장 그에 가까운 고장이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전주를 녹도(綠都)로 별칭했듯 전주인은 집집마다 화초와 수목 가꾸기를 삶의 기본으로 삼아 왔다. 그리고 방방마다 서화와 골통을 두어 자랑으로 삼았다. 다시 말해서 전주인들은 매호수화(每戶樹花), 각실서화(各室書畵)를 삶의 기본으로 삼고 예술의 향에 배어 살아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기 더하여 전주인들은 호남제일성으로 수도를 삼고 감영을 중심으로 판소리에 바탕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가무음곡의 예능에 옥반가효(玉盤佳肴)의 풍미를 곁들인 소리와 춤사위의 멋에 미미(美味)음식의 맛이 어울려 빚어내는 정서로 하여 다른 어떤 고장도 흉내내고 따라올 수 없는 예술문화를 꾸며냈던 것이다. 전주가 예향으로 불리는 분명한 이유의 하나다.
금상첨화로 전주천은 어머니의 젖줄 인양 멋쟁이들의 마음을 살찌우고 정서를 채색하고 풍류를 단장해주었다. 기린토원(麒麟吐月)에서 서천표모(西川漂母)에 이르는 물길 따라 강물은 한벽(寒碧)에서 옥류로 부서지고 다가에서 배를 띄우다가 추천(楸韆)에서 산천천을 안아 금강으로 달음질쳤으니 이 아니 세느강이랴.
그리하여 한벽엔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 숲속에 깔리고 다가엔 말 달려 활시위 당기는 힘이 바위도 깨여했으니 이 지(知)와 용(勇)이 창(唱)의 멋과 어울려 이뤄낸 민족의 자랑거리가 ‘대사습’이다. 새삼 전주의 예향임을 다짐하지 않을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예향 전주’를 다시 새롭게 조성하는 운동과 시책이 일어나고 세워지기를 주장하고자 한다. 우선 경기전을 중심으로 고서와 서화 골통의 점포들이 집중토록 하는 시책이 있을 수 있으니 이주업체에 대한 지원금지급과 세제 혜택 등으로 권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가산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대사습 광장의 조성이 필요했지만 이미 아파트 업자들의 돈벌이광장이 돼 버렸으니 아쉽기 그지없다. 다로 적지를 찾아 학(學) 무(武) 예(藝)의 종합 광장인 대사습터의 조성이 있었으면 싶다. 한벽루와 오목대, 이목대를 엮어 건너편 남고산성과 연결하는 대대적인 음식 시장의 조성도 바람직하며 이 또한 이주비 지원과 세제 특혜로 권장함 직 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고산성의 보수와 개축이 선생될 필요가 있음도 상식이다.
문제는 멋을 아는 시정 담당관들의 출현과 예술이 뭔지를 아는 시의원(市義員)들의 참여다. 거기에 문화예술의 진흥에 목말라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이 합쳐 삼위일체를 이루면 전주천변에도 ‘말라케에’ 거리의 출현이 꿈만은 아니지 싶다. 문화인이여, 분발하자.
이호선 / 전북대 영문과 졸업. 일본 스쿠바대학 문학박사 학위. 서해방송보도국장 전북일보 편집국장 역임. 1979년부터 전주대 재직. 칼럼짐「吾山은 완산」,「따갑게 미소롭게」등 현재 전주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해 있으며, 요즘은 문학(수필)에 애정을 두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