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6 | [세대횡단 문화읽기]
대학문화를 생각한다 ②
이념은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가 출몰하는 곳
글/하원호 전북대신문사 편집장
(2004-02-12 11:21:19)
대학로는 잠들지 않는다. 민주화 투쟁이 뜨겁던 지난날 막걸리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고 숨죽여 ‘아침 이슬’을 불렀던 대학로는 더 이상 없다. 그곳엔 홍등가를 방불케 하는 천박한 네온사인 불빛과 흥청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새벽녘까지 이어질 뿐이다. 자본주의의 ‘아름다운’ 돈의 힘과 시대의 변화는 전북대 앞의 대학로를 겁간하고있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여명 아래 여기저기 쌓인 쓰레기와 구토더미들이 대학문화의 산물인 양 버젓이 나뒹굴고 있는 현실. 이제 더 이상 그들은 독재 정권, 부패학원을 안주거리 삼아 토론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히 오늘을 즐기며 술을 들이키고 음악을 들이키고 있다.
지난해 전북대 학생인권복지위원회가 학교 앞 유흥업소 실태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95년 5월 현재 술집이 62개소, 소주방이 26개소, 카페 25개소, 편의점이 25개소를 넘는 실정이며 노래방 23개소, 오락실 9개소, 당구장이 31개소로 더 이상 발딛을 틈이 없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이 수치는 별 의미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겨우 ‘1년 전’의 이야기는 ‘과거’일 뿐이다.
이러한 대학가의 변모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부터 그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동구권의 몰락과 사회의 변화로 인해 ‘운동’에 대한 관심이 쇠퇴하면서 대학문화는 변질하기 시작했다.
비디오방,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비디오방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95년 초반기에는 비디오 ‘방’이 선보여졌다. 천장과 바닥이 완전히 막히고 이젠 문에 고리도 달려있다. 방의 크기도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결국 의자대신 소파가, 내부 조명도 각각 손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노래방식 비디오방으로 그 모습이 변모되어갔다.
이러한 비디오방의 적극적인(?) 변화는 많은 학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가장 큰 장점은 비디오 관람이 가능한 방이 외부로부터 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전대로라면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이 신경이 쓰이고, 소음 등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아무래도 비디오 관람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비디오방의 폐쇄성에 동조하는 의견들이다. 이러한 반응에 힘입어 비디오방들은 새로이 내부수리를 하고 변해가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갖가지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건전한 사람들 뒤편에 있는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학교 학생 3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4.7%의 응답자가 비디오방에서 남녀간 신체접촉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비디오방에서 영화를 관람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든지, 방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중에 다른 방에서 남녀가 지나치게 밀착돼 있다는 것들을 목격한 사례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덕진구청 환경위생계의 한 담당자는 ‘단속 중에 어린 학생들이 가끔 비디오방에서 장난하는 장면을 가끔 보게 된다’고 말했다. 심각성을 느낀 문화체육부에서는 지난해 12월 음반관련 법규를, 비디오방 규제에 대한 법으로 개정해 오는 6월 7일부터 그 법적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따라 모든 비디오방은 6월부터 모든 칸막이의 높이를 1미터 30센티미터로 조정해야 하며 방으로 밀폐시킬 경우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투명유리로 만들어야 한다. 몇 달전 'ㅊ'비디오방에서 의자대신 매트를 깔았다가 단속에 걸려 이를 치운 사례가 있다.
현재 전북대 서문 앞 락카페는 여섯 곳으로 2~3년 전보다 배나 늘었다. 락카페 영업시간은 오후 12시까지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집에서 1, 2차를 하고 들리기 때문에 실제 영업시간은 2~3시를 넘어설 때도 있다. 무전기와 핸드폰을 든 삐끼들이 단속을 피해 문을 열어주기도 하고 단속이 떴다하면 불을 끄고 재빨리 영업을 마치는 상황이다.
사실 학교 앞에 있는 락카페가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오히려 시내까지 나가서 값비싼 나이트 클럽보다는 춤추는 댄서도 없는 학교 앞 락카페가 훨씬 ‘건전’한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된 ‘상식’일 뿐이다. 바로 그 상식이 대학로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보통 자정까지 술을 마시고 락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일단 수준을 벗어난 옷차림들이 많다. 과감하게 짧아진 미니스커트와 남녀 가릴 것 없이 ‘쫄티’를 마치 교복이나 된 듯 입고 있다. 몇몇 락카페들은 옷차림이 평범(?)하거나 외모가 ‘킹카’수준이 못되면 걸러내는 소위 ‘물관리’를 한다. 이들은 밀러나 버드와이저와 같은 외제 맥주와 보통 2~3만원씩 하는 안주를 시키고 미친 듯이 흔들어댄다. 보통 락카페는 새벽 2시경에 문을 닫는데 새벽 4시까지 영업하는 곳도 많다. 때에 따라서 춤을 추며 부킹을 한 일행들은 다시 술을 마시러 가거나 여관으로 직행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들의 대부분은 전북대 학생들이 아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고등학생이라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다. 지난해 이들 락카페는 영업정지를 받았으나 최근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채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으며 점점 음성화되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대학가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또 하나의 신세대 문화가 포켓볼이다. 전북대학교 앞에는 20여 개가 넘는 포켓볼 당구장이 있다. 당구장에서 만난 여학생 정 아무개 양은 “여자들이 당구장에 간다고 하면 으레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곤 하는데 여긴 그렇게 불건전한 곳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마땅히 할 만한 운동도 없고 친구들을 만나도 고작 커피숍 가는게 일이었는데 포켓볼은 배우기 쉽고 운동도 되니까 참 좋다.”고 말한다.
대학로는 거대한 쇼핑몰
이제 웬만한 풀품들은 대학로에서 충족시킬 수 있게 됐다. 대학로는 거대한 쇼핑몰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점심에 학교 앞에서 친구를 만나 밥을 한끼 먹고 차 한잔 마시고 악세사리나 옷, 선물을 산다. 그리고 고급미용실(이제 미용실이라고 하면 촌티낸다고 구박이다. 어디까지나 헤어숍이라고 해야한다)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포켓볼을 한 게임 친 뒤, 호프집과 락카페, 편의점으로 이어지는 행동패턴.
이념이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가 출몰하는 곳을 90년대 대학사회라고 말한다. 개성이 강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신세대들이 대학에 들어오면서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이러한 현상들을 경험했고 앞으로의 대학사회도 신종문화현상을 출산하는 진통을 몇번쯤은 더 겪어야만 할지 모른다.
TV 광고, 영화 및 몇몇 예술 장르에서만 논의되던 포스트 모던한 문화현상은 대학가의 거대한 문화요소로 자리잡은 듯하다. 곳곳의 포스트모던한 건물과 인테리어, 사람들의 옷차림은 그것을 반증한다. 대학가 문화로 일컬어지는 이들 이미지 중심, 스타일 중심의 소비문화는 TV, 비디오 등의 대중매체와 깊이 관련되고 또 서구의 모던 대중문화 형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원호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94학번, 신문 잘 나오는 것이 가장 큰 바램이고 학교 앞이 깨끗해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일반 대학생이 가지고 있는 관심거리와 다르지 않다. 신문보고 답답해하고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