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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6 | [문화저널]
암(癌)은 평등하다
글/김태연 시인 (2004-02-12 11:19:25)
우습다, 너무 우스워서 죽을 지경이다. 세상에, 암이 평등하다니! 아니 평등할 게 없어서 암이 평등하다고 지껄이다니 이런 법이 있는가? 이런 것을 시라고 읊조리며 계간 문예지에 버젓이 발표를 하고 자빠진 시인이 있었으니 이게 바로 말쪼가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길동은 게거품을 물며 이렇게 따졌다. 사연인즉, 야근을 마친 퇴근 무렵이었다. 하루 온종일 용접봉을 지지고 볶느라 온 삭신이 피곤한데다 오늘따라 재수 없이 그 놈의 아다리(용접 작업 중 강한 광선에 쏘였을 때 생기는 일종의 안구질환을 일컫는 비어)가 된통 걸리는 바람에 만사가 다 귀찮았다. 그때 성한 눈 한쪽으로 길동이라는 놈이 씨부렁거리며 탈의실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이 달밤에 웬 지랄이냐, 퇴근 안할거니?” 길동과 나는 한 살 터울이지만 십년지기처럼 함부로 지내는 사이였다. “창근아. 이 책좀 봐라. 여기 실린 시에 암이 평등하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능기라.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이고!” 길동은 경상도와 전라도 말투를 섞어 가며 사용하는 특이한 놈이었다. 비록 말투는 거칠었지만 속내는 여리디 여린 성품이었다. 더구나 책 읽기를 꽤나 좋아하였다. 자신은 장차 시인이 될 거라며 항용 자랑하였다. 그런 길동이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책 한 권을 내 코 앞에 불쑥 내밀었다. “이게 뭔데?” 나는 도무지 영문을 알 도리가 없어서 성한 한 쪽 눈을 말똥거리며 길동에게 물었다. “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안 그러나. 이 책 90쪽을 펼쳐서 소리내서 한 번 읽어봐라.” 책의 겉표지를 흘낏 보니까, 『민중문예』1992년 봄호였다. 길동의 무탁대로 페이지를 펼쳤다. “걷다가.” 시의 제목이었다. 길동의 요청대로 또박또박 소리를 내어 읽었다. “작업모 하나 덜렁 쓰고서/ 넋을 잃고 걷다가/ 생각하거늘/ 암이라도 있으니 망정이라고./ 수십층짜리 빌딩 주인이든/ 단칸 셋방에서 버러지처럼 겨우겨우 살든/ 다같이 죽을 수 있는/ 이 세상의 단 하나의 평등/ 암이라도 있으니 망정이라고.” 나는 시를 다 읽고도 길동이가 왜 화를 내는지 그 영문을 몰랐다. “이게 뭐가 어때서?” “니 모르겠나? 정말 모르겠나? 그 시를 가만히 보면 너무 한다 아이가. 아무리 울분이 터지는 일이 있더라도 암은 평등하다고 노래할 것이 못 되는 게 아이가. 그런 식으로 우리 노동자 사상을 왜곡하면 안 되는 거인데 이 놈의 시인이라는 자식은 그렇게 노래했다 아이가. 나는 이게 마 답답해 죽겠는기라. 우리가 이라면 안되는기라.” “아항 니 말뜻을 이제야 알아 묵겠다. 니 성깔에 길길이 날뛸 만도 하겠네 뭐.” “그렇제 니도 그렇게 느껴지제? 시인은 이라면 안되는기라. 암은 전두환이가 걸려도 고쳐줘야 하는 병에 지나지 않는 기라. 부자고 가난뱅이고 암이라는 몹쓸 병에 걸리면 암 고치는 약과 병원이 평등해야지 어째 암이 평등하냐 이 말이다. 앗고 답답혀라.” 길동과 나는 한때 전두환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짜기도 했다. 어느덧 십 년 전의 이야기다. "그래도 이 사람은 문학을 하는 시인 아이가. 우리가 모르는 무슨 깊은 뜻이라도 있겠지, 니가 참아라, 참는 수밖에 어쩌겠냐.“ “따질 끼다. 내 언젠가는 이 시인에게 따지고 말거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길동은 제가 원하는 대로 시인이 되었다. 어느 날 길동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창근이냐?” “아이고 고매하고 우매하신 길동 시인 선생. 이게 어인 하해와 같으신 전화이신지요.” “에끼 빌어묵을 놈아. 장난 그만치고 너 시간 좀 있냐. 술 한잔 묵자. 내가 사께. 원고료 받았다 아이가.” 그래서 만난 술자리였다. 몇 순배 술잔이 돌고 불콰하게 취한 길동은 불현듯 그 때 그 일을 되새겼다. “그거 안 있나. 암은 평등하다는 거.” “응, 느닷없이 그건 왜?” “내가 그 시인을 만났거든.” “그래?” “응, 그때처럼 따졌는데 이게 또 통 말귀를 못 알아듣는거 있제.” 길동은 답답하였는지 앞에 있는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뭐라고 그랬는데?” 길동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면서 다그쳐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끝에 그 시를 폐기하라고 충고했지. 그랬는데 그 시인이 뭐라고 변명했는지 아니?” “......” “자신이 한 공단 지역에 강의를 나갔는데 청중들 가운데 암 환자가 한 명 있었다고 하더라구. 좀 참담했나봐. 그래서 그날 저녁에 하도 답답하고 암울하여 밤잠을 못 이룬 끝에 쓴 시라고 하더라.” “그래, 그랬겠지 뭐.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시를 썼겠냐.” “근데 문제는 아직도 그 자신은 암이 평등하다고 믿는거라.” “그래? 그렇게 믿는다면 하는 수 없지 뭐. 그냥 냅두라. 그렇게 살다가 죽게.” “그놈의 이데올로기라는게 병이다 병.” “병? 야 임마 너 시인됐다고 많이 변했다. 이데올로기가 무슨 얼어죽을 병이니? 이데올로기는 그냥 이데올로기일 뿐이야. 요즘은 개나 소나 잔치는 끝났다 하며 이데올로기에 핑계를 대는데 내 그꼴 보기 싫어 죽을 지경이다. 차라리 같은 말이라도 사람이 병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래 니말이 맞다. 우리가 언제 계급간의 투쟁했냐? 계급에 대한 투쟁했지.” “이제야 시인답군. 넌 계급이데올로기에서 가장 앞장 선 선봉이 누군지 아니?” “민주 노총?” “어쭈구리? 그래가지고 시 쓰겠다고? 정신 차리시게 시인 선생. 계급의식은 노동자보다 자본가의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더 투철하다네.” “그래, 그게 되나?” “당연지사, 서로가 이기주의에 기반을 뒀으니 뭐.” “이기주의?” “응. 마르크스가 뭐라고 했는 줄 아니? 이놈의 빌어먹을 자본주의가 사회 전반에 걸쳐 일반화됐을 때, 개인들은 서로 이기적으로 행동할 것이래. 근데 우스운 것은 이러한 이기심이 오히려 노동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하나의 계급으로서 조직을 형성할 동인으로 보았대. 어때 우습지 않나? 이기적이라는 사실이. 왜 박노해의 시에도 나오잖아, ‘어머니, 당신은 나의 적’이라고.” “암은 평등하다는 시인도 이기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거니?” “왜 비약같니?” “궤변 같아서 그런다! 이놈아 하하하.” 길동은 그렇게 말을 맽고 크게 웃었다. 그러나 못내 아쉬운지 고개를 가로지으며 말했다. “창근아. 그래도 있지. 나는 암은 평등하다는 그런 시는 안 쓸란다. ” “아무렴, 그래야지. 그래야 좋은 세상이 올게 아니냐.” “그리고 그 시인도 이제 용서할란다.” “그려. 이담에 만나게 되면 한번 껴안아 주려무나. 그게 문학 아니냐.” 술집을 나온 우리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공단 밤거리를 비틀대며 걸었다. 휘황한 달빛이 우리들의 그림자를 키다리처럼 길쭉길쭉 만들었다. 길동은 걸음을 멈추더니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손나발을 만들어 뜬금없이 소리쳤다. “달빛은 평등하다!” 김태연 / 시인 1990년 제1회 윤상원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비디오로 만나는 좋은 영화』,『논리 공부는 비디오로 하는 게 더 좋다』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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