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5 | [문화저널]
제 16회 전국고수대회
명고수의 권위있는 등용문
문화저널(2004-02-12 11:13:25)
전국고수대회(국악협회 전북도지회 주최)가 4월 20일부터 22일까지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려 명창들의 소리와 함께 북장단의 진수를 선보였다.
지난 22일 각 부문 결선과 오후의 시상식을 끝으로 막을 내린 전국고수대회는 판소리의 대중화 및 고수의 기량과 이상을 높이는 역할을 하면서, 청중에게는 우리의 전통 민속 음악에대한 이해와 감상의 훌륭한 무대를, 참가자들에게는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는 등용문의 계기를 제공하였다. 대회장은 열한 명의 남녀 명창과 기량을 겨루는 백여 명의 고수 그리고 연일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로 열기와 신명을 더했다.
사흘간의 대회기간 동안 펼쳐진 명창과 고수 그리고 관객의 열기는 전통적인 소릿고장의 구성진 멋과 흥겨운 분위기를 돋구었다. 대회를 위해 출연한 오정숙■김일구■은희진■이일주■김영자■민소완■김수연■방성춘■김소영■이난초■조영자 씨 등 11명의 명창들은 대회기간 동안 판소리 다섯 바탕의 각 대목을 고루 들려주면서 소릿마당의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이들 명창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청년부■학생부 등 국악계의 다음 세대를 이어갈 어린 고수들에게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81년 대회가 처음 시작한 뒤로 이번 제 16회 대회까지 명고부와 대명고부를 통해서 명고수 반열에 오른 고수는 모두 23명에 이른다. 그중 명고부 입상을 거쳐 대명고부에서 원숙한 기량을 인정받은 명고수들은 이성근■김청만■박근영■천대용■주봉신■조용안■추정남 씨 등 모두 7명. 16회의 대회를 치러오면서 전국고수대회는 판소리 무대에서 소리꾼 못지 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고수의 역할은 물론 명창과 함께 명고수로서의 권위와 전통성을 지켜나가는 대회로서 그 위상을 지켜가고 있다.
이틀간의 예선과 22일 본선 등 3일간의 일정으로 열린 이번 제 16회 전국고수대회에서는 7개 부문 백다섯 명의 참가자가 실력을 겨뤄 장려상과 인기상 및 장수상을 포함해 각 부문 대상■최우수상■우수상 등 모두 39명의 수상자에 대해 상금과 부상이 주어졌다.
특히 이번 대회부터는 그동안 고수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고른 기량을 갖춘 고수의 발굴을 위해 명고부에 나이 제한을 두지 않았으며 젊은 고수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각 부문 수상자들은 다음과 같다.
■대명고수부 : 대상 추정남(55■전남 해남), 최우수상 방기준(74■서울), 우수상 이낙훈(55■전남 보성). ■명고부 : 대상 송재영(36■전북 전주), 최우수상 전경춘(26■전북 임실), 우수상 조용수 (29■전북 전주) ■일반장년부 : 대상 홍성기(37■전북 전주), 최우수상 이원태(41■전남 진도). 우수상 권혁대(35■전북 전주) ■일반 청년부 : 대상 최만(24■전북 군산), 치우수상 박종호(18■전북 순창), 우수상 오강오(26■전북 전주). ■신인장년부 : 대상 김형태(37■전북 전주), 최우수상 이명식(37■광주광역시), 우수상 박순자(61, 전북 전주). ■신인청년부 : 대상 차지연(15■대전광역시), 최우수상 양진환(29■전북 남원), 우수상 최전화(24, 대전광역시). ■학생부 : 대상 이지연(14■전북 전주), 최우수상 정은성(14■전남 보성), 우수상 송수라(14■전북 전주), 그 외 장수상에 조인창(81■경북 구미), 김동식(79■전북 전주), 방기준(74■서울)씨 등이 수상했다.
■잠깐 인터뷰
대명고수부 대통령상 - 추정남(秋正南)씨
“이제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게 얼굴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상하지 못했었지요■■■■.어찌실력발휘를 다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명고부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추정남씨(55■전남 해남)는 수상 직후 환한 얼굴로 관객들을 행해 두 손을 번쩍 들어보이면서 기쁨을 감추지 않았었다.
이날 결선에서 그는 인간문화재 오정숙 명창의 수궁가 가운데서 엇중머리로 북장단 넣기가 어렵다는 「약성가」대목을 풀어보여 30여 년간 북을 다스려 온 원숙한 기량으로 보여주었다. “열두 살 때 소리를 시작했습니다. 목표에 사시던 고 김상용 선생한테서지요. 그런데 소리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얼굴 때문에 소리를 못했는데 그것이 한이 맺힙니다. 그뒤 65년(24세 때)부터 김성권 선생님 밑에서 북을 잡았습니다.” 다섯 살 때 천연두를 앓았다는 추정남 고수의 말이다.
그가 대명고부의 장원에 오른 것은 87년 제7회 전국고수대회에서 명고부 장원을 차지한 이래 9년만이며 90년(제10회)대명고부가 생긴 뒤로 7년만의 일이다. 그동안 그는 전국고수대회에서 대명고부 최우수상(문화체육부장관상) 및 장려상 등을 여러 차례 수상하면서 그 실력을 가늠하게 했었다. 그는 앞으로 자신의 오랜 세월 한으로 남아 있던 소리를 대신해 명고수로서 후진 양성과 국악 공부에 전념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전남 해남에서 추정남국악학원을 경영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는 그의 뿌리는 전북 익산에 닿아 있었다. 고향이 익산 황등으로 그의 선대와 형제들이 살고 있다. 부인 이수자 씨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아들은 셋째가 소리 공부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