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5 | [문화저널]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글 / 안도연 시인
(2004-02-12 11:09:50)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리다가는 그 속도감이 주는 쾌감 때문에 문득 핸들을 손에서 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고춧가루가 벌겋게 발린 맵고 짠 김치를 늘 먹다가 보면 배추를 버물리다가 만 것 같은 좀 허연 빛이 도는 김치를 버석버석 씹어먹고 싶을 때도 있다. 이름하여 일탈! 나는 그 동안 사라는 핸들과 서정이라는 벌건 김치에 매달려 다른 쪽에 눈을 돌리 틈도 없이 아동바동 지내 온 것 같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야기를 묶어내고 풀어내는 서사 양식에는 도대체 자신이 서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영화를 한 편 본 뒤에는 극장 문을 나서기도 전에 줄거리를 까맣게 까먹어 버리는 나의 기억용량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시 쓰기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술 먹는 일 말고는 별로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연어, 라는 물고기를 만나면서부터 나는 나름대로의 일탈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하고 많은 물고기 중에 왜 하필 연어냐고 묻지 말아 주시기를 바란다. 연어, 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리하여 연어의 생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 한 순간 나는 가슴이 아파서 이것의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한계인 줄을 처음에는 몰랐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연어, 라는 말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이 문장은 이야기의 길이와 스케일을 제 스스로 가두는 실패의 문장이다.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시적 직관에 기대어 시작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계가 더러는 힘이 되기도 하고 무기가 되기도 하는 법. 나는 우선 연어라는 말이 붙은 글이나 책을 손닿는 데까지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연어의 생김새는 주둥이가 앞으로 볼썽사납게 튀어나와서 못생긴 어류중의 하나로 손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연어에 관심을 가질수록 나는 알고 싶은 것들이 자꾸 많아졌다. 모든 사랑은 이렇듯 집착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어의 생태 연구 논문과 연어를 물속에서 근접 촬영한 사진집, 그리고 비디오 속의 연어 회귀 자연들은 내 상상력을 툭툭 건드렸다. 나는 우리 나라에서 연어가 돌아오는 곳 중의 하나인 강원도 양양의 남대천으로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상상력의 틈을 조금이라도 넓혀 보자는 속셈으로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였다.
연어에 마음을 쏟기 시작하면서 나는 집안의 거실에다 제법 큼지막한 어항을 하나 사들였다. 우리 하천에 사는 민물고기들을 통해 연어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싶어서였다. 나는 가까운 산골짜기나 웅덩이나 개울로 가서 몇 마리씩 파닥거리는 것들을 날라오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집 어항은 괜찮은 우리 나라 강물의 한 도막을 옮겨다 놓은 모양이 되었다.
나는 그 강물 속을 들여다보면서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한 마디 말씀을 떠올렸다. ‘물고기는 위에서 보지 말고 옆에서 봐야 아름다다’는 물고기를 위해서 보면 그것을 잡고 싶지만 옆에서 보면 그런 마음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물고기를 옆에서 보면 그것의 예쁜 몸짓 뿐만 아니라 마음이 들여다 보이기도 한다. 물고기의 마음을 내가 들여다보는 동안, 물고기도 내 마음을 읽고 있을 것 같은 즐거운 착각이 삭막하기 그지없는 나를 가득가득 적시곤 하였다. 물고기를 위에서 보면 그저 붕어겠거니 하고 여기던 것들이 내 눈앞에서 새로운 붕어가 되고, 각시붕어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저 피라미겠거니 하고 여기던 것들이 새로운 피라미가 되고, 갈려니가 되, 왜몰개가 되고 줄몰개가 되고, 버들치가 되고, 꺽지가 되고, 돌고기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실로 많은 물고기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존재의 형식을 아는 것뿐만이 아니라 존재의 내용과 존재 이유까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섬진강 가에 사는 김 아무개 시인은 들녘에 널린 수많은 들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구별해서 부를 줄 아는데, 이것은 그이가 꽃이 존재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이기때문이다.
인간은 그 동안 자연에게 너무나 많은 몹쓸짓을 저질렀다. 자신들의 그러한 파렴치한 행위를 변명하기 위해 인간은 휴머니즘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전쟁의 살육이 끝나고 나면 피냄새와 화약냄새가 사라지기도 전에 인간은 어김없이 휴머니즘을 들먹거린다. 그리고 산과 들을 까뭉개고 거대 도시를 건설한 뒤에는 약속이나 한 듯이 인간중심주의를 부르 짖는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이 파괴자의 탈을 벗고 자연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나는 못생긴 물고기인 연어의 입장에서 잘난 인간을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연어가 인간한테 건네는 몇 마디 의미심장한 말이 들려왔다. 나는 그 말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여 이 책의 군데군데 끼워 놓았다. “연어가 아름다운 것은 떼를 지어 거슬러 오를 줄 알기 때문이야” “그래,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나 아닌것들의 배경이 된다는 뜻이지.” “네가 아프지 않으면 나도 아프지 않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