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5 | [문화저널]
이 찬란한 슬픔의 봄을 위해
「STABAT MATER. 슬픔의 성모」(DECCA-DD3345)
글/문윤걸 전북대 강사■사회학
(2004-02-12 11:09:08)
5월은 참 아름다운 계절이다. 길 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따사로운 햇볕과 들꽃의 화사함, 그리고 생동하는 생명의 환희는 그 어떤 예술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이다. 인간사에서 이러한 자연의 위대함에 견줄 수 있는 위대함은 무엇이있을까?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눈물’이다. 많은 문학도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는 어머니요, 그녀의 눈물은 가장 아름답고도 가장 슬픈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페미니스트들이 모성성을 이데올로기라고 아무리 비난하더라도 아직도 우리에게 어머니라는 말에는 가슴저림과 알지못할 두근거림이 묻어있다. 해마다 5월이면 세상은 아름답게 빛나지만 이 땅의 많은 어머니들의 가슴은 슬픔으로 가득찬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시대를 약속하지만 어제, 오늘, 그리고 언제까지일지, 끝모를 눈물과 비탄은 여전히 계속되기만 한다.
서양의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예술적 영감을 선사하는 것은 성경과 신화였다. 특히 예수의 일생과 관련한 주제들은 신의 권위만이 빛나던 중세시대 뿐만 아니라 그 후의 서양 예술작품 속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였다. 그중에서도 예수의 죽음과 관련한 일화는 많은 음악가들에게 작품의 동기를 제공했는데「STABAT MATER. 슬픔의 성모」도 그런 경우이다. 이 작품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앞에 두고 고통받는 예수를 바라보며 괴로워 하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가 비록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여오강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고는 하나 성모 마리아의 마음은 여염집 아낙처럼 슬픔에 가득차 있다. 아무리 하나님의 주재하시는 죽음이라도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그지 않이 애통하기만 한가 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죽음도 그리할진대 이 땅의 험한 역사와 한 자락을 차지한 그들의 죽음을 접한 그들의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스타비트 마테르>는 바로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정말 훌륭한 음악적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음악은 13세기 중엽 쓰여진 중세의 시를 바탕으로 하여 르네상스 시대부터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음악으로 옮겨져 왔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페르골레지>라는 이탈리아의 작곡가가 1736년에 작곡한 작품이다. 비탄과 슬픔으로 가득찬 여인의 노래로 시작하는 이 음악은 12개의 작은 곡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알토 독창과 이중창의 반복으로 마리아의 비통한 심정을 노래하다가 희망으로 끝을 맺는다. 아들의 죽음에서 작지만 영원히 타오를 한 줄기 희망을 부여 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와 그것이 나에게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이땅에도 수많은 예수가 있다. 서양의 예술가들이 그러했듯이 한국인 예수를 위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꽃잎>에 이어서 그림으로, 영화로, 그리고 음악으로 끝없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이 되새겨지고 그들의 어머니가 느끼는 고통이 희망으로 감싸 안아지기를 이토록 “찬란한 슬픔의 봄”에 <스타바트마테르>에 실어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