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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5 | [문화칼럼]
‘간 큰 남자’의 사회적 의미
글/최원규 전북대 교수■사회복지학과 (2004-02-12 11:01:03)
사랆이 만든 사회제도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 가족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을 가족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만큼 가족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들의 보금자리인 것이다. 가족을 통해 우리는 앞선 세대의 가치관과 문화를 이어받고 , 이를 다시 다음 세대에게 전수한다. 아울러 가족들간의 끈끈한 유대는 자녀가 출가하거나 이민을 가도 이어진다.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본 미국 영화에서는 노인촌에 사는 아버지를 10여 년만에 찾아간 아들이 엉뚱한 사람을 아버지로 착각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 나라 같으면 어림없는 일일 거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점차 우리도 미국처럼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한는 생각을 해본다. 가족 구성원간의 유대가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매월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이번달 달력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며칠 사이를 두고 자리잡고 있다. 언론 매체와 행정기관에서는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기획물과 행사를 마련한다. 동양의 전통적인 미덕이라고하는 효(孝)를 유달리 강조하는 이들 행사를 지켜보면서, 역설적으로 효도의 미덕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나 할까? 효의 미덕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부부사이 그리고 부모자녀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역할과 규범들도 변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유행한 바 있는 ‘간 큰 남자 시리즈’는 단순한 우스개만은 아니다.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유행하는 이면에는 간 큰 남자로 군림해 왔던 우리의 전통적인 남성상에 이미 변화가 초래되었다는 엄연한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자녀들에게 엄한 아버지, 자녀들에게 자애로운 어머니를 의미하는 엄부자친(嚴父慈親)도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오늘의 아버지들은 자녀들과 대화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녀들을 엄하게 교육할 수 없다. 반면에 자녀들의 성적과 건강과 교우관계 등을 포괄적으로 신경 쓰는 어머니는 더 이상 재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정내에서의 역할 관계나 규범이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문제는 사회상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종종 가정이 생활의 안식처가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지옥처럼 되는 경우들이다. 가정의 기능이 원활하게 발휘되지 못하는 가정을 문제 가정, 또는 건강핮 못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편부모 가정이나 소년소녀가장 가구와 같이 구조적으로 결함이 있는 가정을 문제 가정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구조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기능적으로는 문제 투성이인 가정이 적지 않다. 특히 심각한 문제 가정들을 아내를 학대하는 가정, 노부모를 학대하는 가정, 아동을 학대하는 가정 등이다. 편부모 가정이나 소년소녀가정 가구 등은 기능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가정들로부터 연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정은 제 3자가 개입할 수 없는 독립된 왕국이다. 이 왕국의 절대 군주는 대개의 경우 남편이고, 왕국의 불쌍한 백성은 아내와 자녀들이다. 절대 군주는 백성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마누라와 북어는 삼 일에 한번씩 두들겨야 제맛이 난다’든가, ‘내자식 내가 때리는데 누가 참견이냐’하는 등의 비인간적인 사고방식이 널리 퍼져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부터 비롯되는 비극적인 일들을 소설 속에서가 아닌 삶의 현장 속에서 종종 목격하게 된다. 동네가 떠나갈 듯이 자기 부인들을 때리는 남편들, 자식이 말을 안듣는다고 담뱃불로 지지고 체인으로 때리는 부모, 노부모의 존재가 귀찮다고 매일 아침마다 내보내는 주부들을 종종 본다. 우리 주위에서 종종 발생하는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은 심한 경우에 언론매체에 보도될 정도로 끔찍한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가정 문제 양상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또는 사회 구성원들의 안락한 가정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가 나서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가정을 치외법권 지역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찬동하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이제는 가정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도 법적인 개입이 이루어져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아내 학대나 자녀 학대, 노부모 학대가 발생할 때, 이웃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시끄럽다고 불평이나 하는 것이 고작이고, 그 가정에 들어가 문제를 해결(또는 중재)할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러면 누가 나서야 하는가? 그리고 서로 이웃하고 사는 우리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시급한 것은 가정폭력방지법과 같이 가정 문제에 사법적인 개입이 가능하도록 법적인 근거를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가정내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진행될 때, 주민들이 경찰에 개입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경찰서에는 가정문제를 전담하는 경찰 사회 사업가와 같으 전문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우리 이웃들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마음을 졸이지 말고 과감하게 경찰에 신고하는 고발정신이 필요하다. 건강한 가정은 건강한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 우리는 이제 까지 가정에 대해 신화를 안고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가정은 포근한 보금자리이다. 그러나 가정이 보금자리이기는 고사하고 지옥과 같은 상황도 존재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 변화에 따라 지옥 같은 가정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이상 가정에 대한 신화를 강조하지 말았으면 한다. 가정이 안고 있는 문제들과 진솔하게 대면하여, 힙리적인 방도를 찾아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 생각한다. 최완규 / 78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96년 2월 서울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90년부터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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