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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5 | [문화시평]
변해야 하고 변할 때도 되었다.
전북연극제 글/김정수 문화저널 편집위원 (2004-02-12 11:00:30)
제 12회 전북연극제가 4월 7일부터 21일까지 2주간의 일정으로 모두 마쳤다. 당초 예정되었던 군산의 극단<갯터>가 내부 사정으로 불참하였지만, 총 5개 극단의 6개 작품이 무대에 올라 일단 외형적인 면에서는 12년동안 최고의 면모를 보인 셈이었다. 공연 기간도 그 어느 때보다 길었고 공연 장소도 전주■익산■남원으로 분산되어 명실상부한 전북연극제의 위상을 정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 성과를 액면 그대로 성장으로 직결시켜 받아들이는 것은 섣부른 결론인 듯 싶다. 무엇보다 표피적으로 나타난 성과라는 것이 내용상의 부실 이거나 진행상 불가피한 선택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이 연극제를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쉽게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극제는 그 지향하는 바에 따라 성격이 다소 달라진다. 하지만 그 어떤 연극제도 연극 예술의 질적 향상을 수렴하고 새로운 발전의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는 기본 과제를 놓쳐서는 안된다. 나아가 관객의 예술인 연극이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폭넓은 교감을 주고 받으며 그 예술적 성과를 평가 받아야 한다는 명제 역시 새삼 강조할 필요 없이 소중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북연극제는 연극제의 목적이 실종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전북연극제의 출전 그단을 가리는 예선 대회라는 성격이 유일하게 두드러지긴 하지만 경선 참가 두 작품에 축하공연이 그 두배에 이르는 네 작품이라는 아이러니는 그 성격마저도 혼란스럽게 했다. 또 타지역 극단의 순회공연이나 이미 공연되었던 작품의 예정된 지역 순회공연을 행사에 포함 시킨 점이나, 경선 하는 두 작품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지 않고 각기 다른 지역의 공연장에서 공연된느 일, 상대적으로 더 나은 작품 제작 역량을 가진 극단들의 경선 불참 의사 표명 등은 그나마 경선이라는 유일한 성격마저도 퇴색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으면서 극단적으로는 전북연극제 무용론까지 대두되게 만들었다. 드러난 문제점들은 이번 연극제에서만 돌출 된 것이 아니다. 잠재되어 있어 왔고 수시로 고개를 내밀기도 했다. 때문에 전북연극제의 바람직한 방향 모색과 전북연극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 문제들을 보다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생긴다. 먼저 경선 제도가 갖는 우해성과 맹점을 지적하고 싶다. 현재 전북연극제가 겸하고 있는 예선 대회는 오르지 전국연극제 출전을 겨냥하고 있다. 애초 지방연극제에서 출발한 전국연극제는 서울연극제가 지속적으로 가능한 이유 중에 하나는 서울 연극 집중화에 대해 반기를 드는 타 지역 연극인들의 결속이있기 때문이다. 옳은 일이고 바람직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전국연극제를 주관하는 곳은 결국 중앙이다. 또 각 지역 연극이 한 자리에 모여 페스티벌 형태로 행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의 연극인이나 연극평론가들에게 엄격히 심사되며 경선을 벌이고 있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심사하여 순위를 매긴다는 사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이 연극제는 참여 극단들을 아마추어로 간주하고 있고 참여 극단 역시 무의식중에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같은 경선고 포상 제도는 열악한 지역 연극계에는 그나마 목표의식을 심어 주기도 하고 적절한 자극이 되기도 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최소한 버텨 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잇다. 그 주장도 맞긴 하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기량 향상에도 분명 기여한다. 하지만 당장의 상황을 벗어나 생각해 본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많다. 다른 예술 장르에 시상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각종 문학상이 있고 각종 음악, 미술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등용문이거나, 그 해의 가장 주목받은 작품에게 주는 특별상에 해당한다. 전국연극제처럼 해마다 또래 또래의 극단들이 다시 만나 경합하는 방식과는 분명 다르다. 이런 점과 연관되어 전구연극제에 대한 매력이 반감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뛴다. 또한 전국연극제에 참가하는 극단의 입장도 그리 평탄한 것이 아니다. 전북연극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상금을 받더라도 그 상금이 몇 달 후 벌어지는 전국연극제 출전 비용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초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출전 작품 한 편이 이상은 공연하기도 어렵다. 당연히 반년 이상을 출전작품 매만지기나 연습 성격의 공연에 투자할 수 밖에 없고 심할 경우 일년 내내 한 작품을 공연하는 상황도 가정해 볼 수 있다. 전국연극제에서 우수한 성적이라도 거두면 그래도 낫지만 부진 할 경우에는 극단 내부에 생기는 균열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전국연극제를 지향하는 것보다 내실을 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극단들이 생기고 그 또한 의의있는 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전국연극제는 분명 변해야 한다. 이는 현재 서울연극제와 전국연극제로 이분화되어 있는 구조의전면 개편을 통해서 만이 가능하다. 물론 서울 이외의 지방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제작 수준도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그 어느 예술적 정신이나 행사도 서울 소재와 비서울 소재로 양분시키고 비서울 소재를 서울 소재 아래에 위치시키는 일은 없다. 전국연극제가 비서울 극단들의 질적 향상에 기여했다면, 그리고 그 기여를 위해 고안되고 활용되었다면 이제 바로 그 이유로도 변화를 고려해 봐야 할 시점에 온것이다. 또 전국연극제가 변하든 변하지 않든 간에 전북연극제 만이라도 개선점을 찾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경선작 출품이 더 적은 상황이라면 경선에 연연&#54638; 않은 진정 전북 연극의 현재를 보여주는 축제로서의 성격을 확실히 구축하는 것이 더 바람직 할 것이다. 경선 작품들은 따로 심사하는 기회를 갖더라도 전북연극제는 전북 일원의 모든 극단들이 참여하여 공동의 일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자체적으로는 공연 이외에 연극발전을 위한 학술모임이나, 전북연극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전시회를 함께 개최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극단 지원을 위한 기업인 초청행사나 고정관객 확보를 위한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행사 기간중 전 편의 연극을 다 관람한 관객에게 베푸는 사은잔치 같은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수월한 일들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추진해 갈 구심점도 취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80년대와 90년대 초까지 꾸준히 증가되어 왔던 전북의 연극 관객은 이제 주춤거리고 있다. 이것은 어느 극단 할 것 없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연극제는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는 흥겨운 축제가 되어야 하고 사람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만남의 장이 되어야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전북연극제가 그런 모습으로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을 때 연극과 관객과의 만남도 새로운 활력이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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