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4 | [문화저널]
창조와 모방의 애매함과 가능성의 거리
‘96 신예작가 초대전을 보고
글/ 이상조 전북대 교수 ■미술학과
(2004-02-12 10:44:06)
지난 3월 5일부터 15일까지 우진문화공간에서는 96 신예작가 초대전이 열렸었다. 주지하다시피 이 초대전은 전라북도 지역 4년제 대학에서 한국화와 서양화를 전공한 졸업자 각 1인씩을 추천 받아 기획한 전람회로 관람자들에게 단편적이나마 각 대학의 창조의현장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와 갓 대학을 졸업하는 신세대들의 감성과 시각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전람회였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신세대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그들이 우리와는 다른 독특한 감수성과 톡톡 튀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에 그들과 비교되어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기획측에서 제시한 제한 규격(80F)을 지킨 작품이 한 작품도 없을 만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출품된, 대작들로 가득찬 전시장에서 필자는 출품자들의 예술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를 읽을 수 있었고 또한 이들 신세대 작가들이 이 지역에 부리 내리려 하는 미술의 정체를 어렴풋이나마 눈치 챌 숭 있었기에 무척 다행스러웠으나 이들 신세대들 편에 서서 ‘96신예작가 초대전을 보고 느낀 필자의 심정은 한마디로 아쉬웠지만 기대할 수 있는 전람히’라는 것이었다. 그 아쉬움의원인으로필자는 첫째 창조와 모방의 애매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신세대들의 귾임없는 차별화의 속성은 예술에 있어서 창조의 과정과 다름 아니며 예술은 세계관의 표현이라는 데에는 예나 오늘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 전람회에서 눈에 띄는 점은, 예년에 비해 많은 작가가 차별화의 수단으로 새로운 매체나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나, 그 매체나 재료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작품 속으로 녹아들지 않고 밖으로 생경하게 드러나 심지어는 이미지까지도 도용되지 않았나 하는 오해를 불러 이르킬 수도 있었다는 것이며, 둘째 참가 작가 개개인이 개진하는 미학의 불투명함을 이야기하고싶다.
예술은 세계관의 표현이고 세계 인식의 한 방법이며 세계에 대한 예술가의 비전의 제시일진데 작가의 새로운 세계관 자연관, 물질관 등등 그들만이 펼쳐 보이는 독특한 감수성과 시각 또는 독특한 색깔을 갖고 독자적 조형 세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추구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앞서간 화가들의 미학을 답습하는 일은 자신을 아류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일일뿐이다. 셋째 공통분모적 미의식의 결여를 꼽을 수 있다. 다양하되고 개별화되어진 오늘날 신세대들에게서 집단화된 의식을 바라는 것은 일견 타당성이없는 일로 비춰질 수있다. 그러나 대학을 갓 졸업한 작가들에게는 그들의 변화무쌍한 욕구를 줄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들의 체험을 상호 보완하여 극대화시킬 수 있는 집단적 장치가 필요하다. 어차피 신구 세대간 미학적 차이가 뚜렷한 오늘날 이러한 장치는 다양한 가운데 공통 분모 적인 발언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을때에야 진정 가능한 것이다.
위와 같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기대할 수 있는 전람회’라고 단정짓는 이유는 예술가의 위상이 예술이 상업화되어 감에따라 급락해 가는 요즈음에도 의연함을 지킬 줄 아는 품성의 작가를 선발할 수 있는 제도적 특징과 이 지역에 그들이 원하는 미술을 뿌리내리려 하는 미약하나마 그들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의 흔적들이 짙게 밴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다채롭고 새로운 전시 방법을 연구하였으면 하는 바램을 기획자에게 해본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전시 방법은 작품의 내용을 관람자에게 확실하게 전달시키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작품 그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상조 / 홍익대학교 및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한국미술협회, 오리진 회화협회, 현대판화가협회, 홍익판화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9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국제전 및 단체전에 180여회에 걸쳐 출품했다. 백두대간과 그곳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작품에 표현한다. 현재 전북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