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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4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맥주가 애이노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가 싫은 여섯 가지 이유
글 / 김지석 부산대 교수■영화평론가 (2004-02-12 10:36:55)
대만의 뉴웨이브는 젊은 감독들이 서로 이끌어 주고 도움을 주면서 함께 성장해 온 반면에 우리네 뉴웨이브 감독들은 대개 독자적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왔다. 그런데 최근 우리 나라에서 주목받는 중견 감독 일곱 명이 손을 잡고 한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애초부터 오락 영화를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술성이나 작품성이라는 잣대로 비평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기는 했다. 반면에 동업하면 망한다는 전통을 가진 한국에서도 일곱 명의 내노라 하는 감독들이 모여 작품을 만들 수있다는 현실이 다소 낯설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러한 낯설음이 가져다주는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어만 머물고 <맥주가■■■■■>는 그 전통을 깨트리지 않는다. 동업을 하다가 쫄딱 망한 한국의 어느 기업을 보는 듯한 느낌을 확실하게 안겨다 주는 것이다. 대만의 감독들이 동업을 하면 실력의 상향 평준화가 이루어지는데 왜 우리네 감독들이 동업을 하면 실력의 하향 평준화가 이루어지는 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 아닌가. 그만큼 <맥주가■■■■■>는 불만스럽다. 그래서 좀 꼼꼼히 따져 보자. 첫째, 디오니소스 신드롬 한국의 내노라 하는 중년 감독 일곱 명이 갑자기 자신을 엄숙하고 억누르고 있던 ‘예술영화’에 대한 강박관념, 또는 감독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일시적으로나마 타락하고 싶어서였을까. 하지만 그것이 전혀 파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영화 감독들이 술과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아니면 ‘현실의 위협하기’의 논리로서 기성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카니발적 세계관을 일곱 명의 감독들이 공유한 결과인가. 그러나 이 작품의 음담패설은 그러한 차원에 전혀 이르지 못하고 있다. 단지 말 그대로 음담패설일 뿐이다. 둘째, 채음은 나눌수록 가벼워진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해서 일곱 며으이 감독들이 세미 포르노에 가까운 이야기를 덥석 연출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그리고는 서로 경쟁적으로신인 여배우 벗기기에 나선 것일까. 물론 애초의 기획 의도가 가벼운 Y담 정도였으니 별 부담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좀 찐한 Y담이라 할지라도 일곱 명이 같이 하면 욕을 들어도 나눠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법도 하다. 게다가 작가의 연출 분량이 15분 정도에 불과하니까 혹 연출력에 문제가 있어도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는 계산도 하지 않았을까. 셋째, 붕어빵은 맛있다. 그래서 그런지 개성이 다른 일곱 명의 감독이 연출한 각 에피소드는 똑같은 이야기만큼이나 형식도 똑같다. 여주인공은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있고(언제든지 남자를 먹여 살릴 수있다?), 성에 대해서도 능동적이다 못해 아예 저돌적이다. 하지만 남자가 염증을 느낄 때면 언제라도 알아서 떠나 준다. 각 에피소드는 한결 같이 에피소드 말미에 있을 질퍽한 섹스 신을 향해서만 전개되며 미세한 차이점이라고 해 봐야 각 에피소드 다 여주인공들이 지르는 색소리 뿐이다. 하지만 붕어빵도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질린다. 넷째, 돈 후앙 콤플렉스 남자란 대개 한 번 쯤 돈 후앙을 꿈꾼다. 우리의 일곱 명의 감독들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그리 되지 못한 안타까움을 영화 TR에 담아 내기로 합의를 보고, 마치 자신의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 조나단이 된 양 열심히 레디-고를 불러댔을 것이다. 그리고, 연출 중간 중간에 내가 차리는 조나단역을 맡은 한재석이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였을지도 모르겠다. 다섯째, 혼성 모방인가, 혹은 시대의 거울인가 그래도 명색이 한구구 영화를 대표한다는 감독들인데 요즘 한창 인기를 DJER 있는 준포르노비디오영화와 같은 수준의영화를 만들지느느 않았을 테고, 그래서 그런지 영화 곳곳에 <블루><크라잉게임> 등과 같은 ‘품위있는’작품들의 흔적이 적당히 삽입되고 있다.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젖소부인 바람났네>등과 같은 저급한 대중문화와 고급문화가 혼재하고 있다는 현실의 반영 일수도있겠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일곱 명의 명암 높은 감독이 일곱 편의 저급한 이야기를 연출하였다는 사실도 현실의 반영일 수 있다. 그도 저도 아니면 지금은 사라져 버린 ‘선데이 서울’에 대한 향수때문인가 그렇다면 <맥주가■■■■■>는 ‘향수영화’라는 말인데■■■■■ 여섯째, 마지막 미스터리 하나 이 작품의 개봉되었을때 일곱 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가 빠졌다. 그래서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여섯 가지 이유>가 되었다. 빠진 에피소드는 바로 이 작품을 기획한 박철수 감독의 것이었다. 박철수 감독은 모 주간지와의인터뷰에서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튄다는 다른 여섯 명의 감독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신이 연출 부분을 뺐다고 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믿자. 그런데 현실은 좀 미묘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그의 신작 <학생부근신위>가 개봉된 것이다. 이 작품은 저 예산 독립 영화의 모범이며 예술영화라는 칭찬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친구들을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끙어들이고 자신만 빠져나간 형국이 되고 말았다. 나머지 여섯 명의 감독들의 면면을 보자. 김유진, 장현수, 정지영, 박종원, 장길수, 강우석, 이들이 어디 주지육림에 빠져 허우적댈 감독들인가. 그런데 주지육림에 빠지고 만 것이다. 물론 잠깐이겠지만.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자. 대만의 감독들이 수시로 힘을 모으는 이유는 주변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맥주가■■■■■>를 보면 한국의 영화 산업의 현황이 그다지 열악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 작품은 분명 과소비이며 사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소비나 사치가 선진국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가벼움의 미학’이 주는 폐해가 생각처럼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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