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4 | [문화시평]
정월대보름, 고향을 찾아주는 끈
정월대보름 마을굿 참관기
글 / 김성식 도립국악원 연구원
(2004-02-12 10:25:10)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는 말이 나는 본래의 추석 명절보다 정월대보름에 겨눈다. 적어도 내 유년을 거쳐 오늘에 이르도록 고래심줄 만큼이나 기억의 끈을 동여메고 있는 것은 팔월보다 정월이고, 성묘보다 찰밥과 패싸움이다. 다만 조건이 다르다면 개인적으로는 그때는 정월대보름 풍속의 주역이였다면 지금은 관찰자로 전락한 것과, 그때는 그곳에도 정월 대보름 풍속이 남아있는 다른 마을에서 보름달을 맞이한다는 차이일 뿐이다. 어른들은항상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는 팔월 보름에 괴기국 못먹는 집은 있어도 정월 보름에 괴기 못먹는 집은 없었어”
대처나 그도 그럴것이 팔월 보름이 가족중심의 명절이라면 정월 보름은 마을중심의 명절이고, 팔월 보름이 각자의 가을걷이 수확물로 각자의집에서 조상께 예를 올린다면 정월 보름은 마을의 안녕과 풍년 예축(豫祝)을 위한 대동 단위의 예, 즉 마을 굿이기 때문이다. 폐쇄와 개방의 구조적 차이라고나 할까.
그런대도 성대하기로는 팔월 보름이다. 지극히 한구적인 현상인 ‘민족대이동’의 물결이 실로 장엄할 정도이다. 그러나 정월보름은 이제 잊혀졌거나 설령 남아 있다 손 쳐도 대부분이 쓸쓸하다. 물론 민속명절이란 비교우위가 있을 수 없다. 그런대도 현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날 잘 잡은 명절은 갈수록 호강하는데 반해서 날 못 잡은 명절은 갈수록 상대적 박탈감에 에달프다. 그렇다고 팔월 추석이 가을걷이를 감사하는 절기로 꼭 맞는 것도 아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전혀 가을 추수와 상관없는 명절이 팔월 보름이다. 그래서 지금도 한반도의 북부지역이나 동부 산간지역은 오월 단오나 구월 구일이 더 큰 명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다른 명절은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가 내 생각에는 국가 지정 공휴일이라는 작용이 가장 큰 요인일 것 같다. 쉬고 안 쉬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는 그 모든 기념을을 평가절상 내지는 절하 한다. 물론 추수감사와 조상숭배의 민족정서를 비하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농경사회의 절기를 전면적으로 이십일세기 코앞에서 새삼스럽게 되찾거나 고수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월 대보름 명절은 사정이 좀 다르다는 것이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나는 정월 대보름을 공휴일로 지정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공휴일을 무슨 엿장수 마음대로 하는거냐고 대책없는 사람 취급할지는 몰라도, 나는 정월 대보름이 현재의 국가지정 공휴일로 된 어느 기념일이나 명절 못지 않다는 생각이다.
내가 뜬금없이 이렇게 강조하는 큰 이유로는 정월대보름이 전래 민ㅅ혹 중에서도 민속예능 측면에서 가장 보존 가치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세시(歲時)란 일년을 단위로 설정한 자연에 대한 일종의 통과의례이고, 세시풍속이란 그러한 자연의 주기율에 맞춰 수행하는 일련의 주술■종교적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초월적인 주술■종교적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초월적인 주술■종교적 힘에 의해 일정한 지역을 수호하려는믿음은 세계 보편적인 믿음이다. 동구 밖에 세우던 입석이나 장승, 솟대류는 이러한 믿음의 형상물이다.
그리고 종교적인 행위는 반드시 정화된 공간을 필요로 한다. 세속과 다른 성스러운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과 정화된 공간을 바탕으로신을 불러들이고, 청한 신을 즐겁게 놀리고, 미약한 인간의 기원을 전달하고, 그리고 송신, 즉 신을 다시 보내 드리는 일련의 과정이 고대의 국중대회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마을굿의 기본 틀거리이다. 정월대보름 마을굿은 이러한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단지 그 변화가 있다면 의례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주술■종교적인 면이 희석되고 줄다리기나 달집태우기 등 오락적인 측면이 상대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민속예능의 근간은 풍물굿이라고 할 수있다. 자연종교의 떠들썩한 난장판을꾸미는 데는 풍물굿 만한 것이 없다. 풍물이 흥을 돋구면 재주 있는 사람들은 가만 있지를 못하낟. 그야말로 몰아의 경지에 다다르는 일은 시간 문제이다. 우리 민족은 풍물을 가지고 의례하고, 정화하고, 일하고, 놀이한다. 그래서 골골마다 풍물없는 마을이 없었다. 지금도 세시풍속이 전승되는 망르은 풍물굿이 다 있다. 그러니 풍물굿을 우리 민속예능의 젖줄이라고 아니 하겠는가.
또 하나 저우얼보름의 주된 행사는 줄다리기이다. 줄다리기는 농사일과 밀접한 관계로 평야가 너른 도작문화권에서 압도적으로 행해진다. 우리 지역에서도 줄다리기가 행해지지 않는 곳은 산간지역이거나 기세배로 대치되는 서북부 지역 정도였다. 당산제가 제의 방식에 치중하고 있는 반면, 줄다리기는 놀이방식에 충실하다. 줄다리기는 생산력을 왕성하게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디. 항상 그렇듯이 여성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이, 곧 여성의 생산기능과 농경의 생산을 하나로 보는 유감성(類感性)을 기저로 하기때문이다. 물론 여성 노동 인력의 절대성에 대한 배려도 한몫 단단히 하는게 사실이다.
이렇듯 정월대보름은 일년 농사와 생활을 같이 할 공동의 운명체인 마을 주민간의 공동체의,공동놀이, 공동믿음의 세시풍속이다. 그리고 아직도 정월대보름 마을굿은 끈질기게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피폐한 농촌이고 같이 할 사람이다. 줄 꼴 사람마저 귀하고 그래서 용을 상징하는 줄은 쌍줄에서 외줄로, 그것도 왜소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번 보름굿 현장조사에서 나는 눈이 번쩍 뜨이는 광경을 목격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읍군 사노이면 정량리 원정마을인데 그 마을에 도착해서 보니 입구에 관광버스 한 대가 주차돼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마을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을을 떠나서 주로서울에 살고있는 출향민들이 재경향우회를 조직하여 해마다 이렇게 정월보름을 맞이하여 마을을 방문한다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자금을 적립하여 망르 정자도 짓고, 당산나무 주변 정화사업도 이미 끝냈다. 이번에 버스 한 대로 온 것은 일요일이 아니라서 애들이 못왔기 대문이란다. 그들은 함께 줄꼬고 함께 장만하고, 함께 굿치고, 함께 줄다리기하고, 함께 당산제 지낸다. 참으로 흐뭇한 광경이였다. 그리고 정월대보름굿을 살리는 하나의 전형을 보여 주는 듯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모습을 어린 학생들이 볼 수 없다는 아쉬음은 급기야 국가지정 공휴일이라는 생각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학교교육이 결코 학원교육이어서는안된다고 생가한다면 민족심성 교육 장소로 이만한 곳이 그 어디 있겠는가. 돌아오는 농촌은 구호 만으로 되질 않는다. 적어도 출향민들 방문에는 농촌이라고만들려면 정월대보름 풍속의 의미를 되새겨 볼만 하지않겠는가. 이미 전승이 끊긴 마을은 문제되지 않는다. 마을의 얼느들을 통해서 되살리면 되는 것이다. 그때 보는 보름달은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