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4 | [문화저널]
꽁트
회색빛이네, 거!
글 / 한상준 소설가
(2004-02-12 10:23:23)
서 선생은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이다. 이러구러 살아온 지난 삶들을 반추하며 챙겨야 할 시기였다. 삼십삼 년 교단생활을 되돌아 보는 것도 의미가 있기는 하다. 허나, 그보다는 정년 뒤의 소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그게 더욱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 후배 교수의 연락을 내내 기다리고 있지만, 오늘도 연락은 오질 않는다.
이제야 심연의깊이에 이른 자신의 학문이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가라니..... 정작야속했지만, 육십오 세로 되어 있는 정년 앞에 뾰죽한 도리가 없는 터다.
육십 중반, 노인정에 들락거리기도 요즘엔 겸연쩍다. 교수직에 있던 위신으로 다방에나앉아, 찻집년 궁둥짝이나 만지작거리고 있기엔 또한 품격에 손상이 갈 일이라 여긴다. 나이든 사람들이 주객인 찻집에 드나든다고는 하지만. 함께 늙어가는 처지에 있는 숱한 제자들 눈에 연제 포착될지 몰랐다.
대충 고상연(高尙然)한 모임의 상임 자리나 혹은 젊은친구들의 연구회같은데, 고문직이라도 있을까 이리저리 알아보고있는 중이다. 그일을 직접 나서서하기란 쑥스럽기에 이러저러한 모임이면 갠찮겠다는 예를 들어가며, 후배 교수에게 말해 놓았던 게다
시절은 바야흐로 정치판이 성업 중인 때, 그 동네도 들락거릴 수 있는 처지였다. 이곳이야당 강세 지역인지라 여당에는 갈 곳이 못되었다. 서 선생 역시 줄곧 비판적인 지식인 축에 자리 보전을 해왔다고 여기고 있는 바다.
중등학교 교사로 있는 자식놈이 또 서명을 할까봐 내내 마음을 조렸던, 검찰의 불기소처분 취소와 관련한 5■18 서명도 빠지지 않고 하지 않았는가. 정치 활동이 보장되어 있으므로 서명을 하건, 뭘 하건 자유로왔다. 특히, 이 지역 대학에서는 그 정도쯤에 빠지는 건 오히려, 된통 체면을 깎는 일이었다.
신분상의 불이익을초래하는 서명이기에 극구 말렸던 것인데, “아버지가 서명한 건, 진실도 아니고 저희와는 무게와 의미마저 달라요.”하며, 도리어 목울대를 치켜 세우는 바람에 속상하게 만든 5■18이엇지만 말이다.
어찌됐건, 서 선생은 같은 과 후배 교수에게 사회활동을 할만한, 물이 괜찮은 곳이있으면 알아 보라고 일러 놓았다. 후배 교수, 정확히 말하면 서 선생이 천거한 그러니까, 제자 정도의 연배에 있는 후배 교수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면서 하명에 어련히 알아서 하겠노라고 뒷걸음질로 나갔다.
예를 들면,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공신력이 있는 YMCA 시민강좌의 고정연사로 위촉을 받는다거나 혹은 민방위 교육장에서의 이른바, 정신교육 연사로 줄곧 초빙 되는 정도는 되어야 했다. 거기에다 정치판에도 한쪽 다리를 걸어 놓을 수 있는 ‘ㄱㄴ지역사회00연구회’라하는 조직의 상임이사직을 후배 교수가물어가지고온다면 그건 금상첨화였다.
서 선생은 좌우 앞뒤로 목운동을 한다. 눈도 껌벅껌벅 해보며, 피곤하지 않게 기지개도 켠다. 허리를굽혔다 폈다 척추도 일으켜 세워준다. 오늘은 오전 수업밖엔 없었다. 무료한 오후를 목하,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후배 교수에게선 기실, 열흘째 연락이없는상태였다. 세심한 사람인지라, 확실하게 마무리 지으려는 거겠지, 하면서도 서 선생은 안절부절이다. 정년을 딱 당하고 나서는 것보다 얼굴도 익혀둘 필요가 있어 미리 준비하는 거였다.
딴은 그랬다. 선생이라는 게 학교 밖에서는 쑥맥으로 취급되는 터라 섣불리 휩쓸렸다가는 제자리로도 돌아올 수 없는 까닭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후배 교수에게도 이른 건, 거창한 자리를바라는게 아니라 소박하게 위신 깎이지 않으면서 소일할 수있으면 되네, 하고일렀던 것이다.
서 선생은 따사로운 햇볕에 무료함을 달래며, 창문 옆에 앉아 그 동안 이런저런 모임에서 ‘회장직을 맡아달라, 이사직을맡아달라’며 극구 청해오던 곳을헤아려 본다. 청소년 상담실, 시청자문위원 등 자신이 관여했던 모임도 떠올린다.
요즈음엔 연락오는곳이 없다. 그렇다고 자청해서 찾아 갈 곳도 아니었다. 대개는 여당 쪽으로 편향되어 있는 바라, 이 지역에서 그리 영양가 있는 곳이 아니었으므로, 서 선생은 섭섭함 이상은 갖질 않았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펴놓아 둔 두툼한 전공서를 가방에 꾸겨 넣으면서, 서 선생은 욕지기를 해댄다. ‘지놈이, 누구 덕에 교수가 되었는....’하며, ‘되었는......’다음에 ‘........데’를 막 곱씹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서선생은 벌덕 일어나 냉큼 방문 앞에 이르러서는 큰 기침을 하며,
-뉘요
한다. 발걸음 품새나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후배 교수임을 직감한다.
-선생님, 접니다. 박(朴)입니다.
-어여 들어오게나 , 내 자네를 위해 향기 좋은 차를 준비해 놓고 있다네.
서 선생은 마침 전원을 뽑아 놓지 않은 커피포트에서 뽀글뽀글 물이 끓고 있음으 늦게야 감지한 게다.
-선생님, 우선 궁금하실 것 같아서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요, 사회적으로나 품위적으로 선생님의 위상에 걸맞는, 물 좋은 곳을 알아 놓았습니다.
-차 한잔 하면서 차분히 말 나눔세
-죄송합니다. 제가 타지요
-아니 자네는 앉아 있게나, 어디 바쁜 일이있는가
-괜찮습니다. 조금 늦게 가도 되는 일입니다.
-그렇듯이 보이네. 그럼 내가 차를 타는 동안 귀를 자네족으로 열어 놓을테니, 이야기를 해봄세
-이게 요즘 아주 잘 나가는 단쳅니다. 거기에서 일 하던 어떤 이는 이번에 여당에서 공천을 줄려고 안달을 하기도 했어요. 본인은 그 동안의 이미지상 야당으로 갔지만요
-그래, 정치적인 연결이 가능한 곳인 모양이지.......
-숫비년대의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인정을 받고 있는데요, 급진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우편향적이지도 않지요. 정부나 기업에 대안정책을 제시하고 정부와 기업과도 협력하는 프로젝트가 있으면서 한편으론 비판적 지식인들이 참여하고있는 단쳅니다. 선생님은 이 지역에 결성되어 있는 단체의 ‘정책연구위원’으로 위촉을 받는 겁니다.
-단체명이 뭔가.
-경.실.련(經實聯)이라고
서 선생이 정색을 하며 후배 교수를 건네본다.
-경실련, 경실련이라.....금시초문일세
유령단체 아냐, 하는 눈빛이다.
-선생님, 정말 경실련을 모르십니까
-...자네설명대로라면, 회색빛이네. 거.
흐뭇해 하는 서 교수의 연구실을 나서며, 박은 웅얼거린다.
‘말이나 못하면....아닌 게 아니라 금상첨화로군. 니밀 헐.헐.헐.’
한상준 / 5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전주대를 졸업했으며 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지로 작품활동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