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3 | [저널초점]
저널이 본다
우리들(?)의 동계 U대회
글/김정수 문화저널 편집위원
(2004-02-10 16:16:38)
동계 U대회를 제법 찬찬히 관찰한 어떤 평자가 이런 독설을 남겼다. ‘세계 부자집 아들, 딸들이 모여 스키 타며 놀겠다는데 왜 우리가 야단법석을 떨어야 하는가?“
이런 몰상식하고 극단적인 대회반대론을 화두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그 사람의 경우, 아마도 평생 한차례 스키장은 고사하고 스키용품점을 기웃거려보지도 못한 각박한 정서, 뒤떨어진 시대의식을 소유한 사람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대다수 우리 서민층들이 아직은 꿈도 못꿀 일이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승용차로 족발 배달하고 지프로 세탁물 실어 나르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했었느냐 말이다. 우리도 언젠가 줄줄이 그 승용차, 그 지프에 스키 매달어달고 무주로 향하고 있을지 어찌 아는가. 해가 갈수록 강설량이 준다고?. 아, 월남 스키부대 이야기도 못들어 봤남. 또 우리 민족이 어던 민족인가. 한다면 하는 민족 아닌가? 까짓것 눈이 안오면 만들어 타면 그 뿐이지 뭐가 또 문제야. 설사 우리가 즐길 일 없다고 치더라도 그래. 우리나라 최초의 동계 국제종합스포츠 대회이자, 88서울올림픽 이후 첫 국제종합스포츠 대회이고, 지방단위에서 처음 개최되는 국제종합스포츠 대회로서 젊음을 한곳에 모아 세계를 품안에 껴안으려 하는 동계 U대회는 아주 특별한 경우로 봐줘야 할 것이 아닌가.
백번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다잡아 먹어도 자꾸 심사가 뒤틀어진다. 스키 점프장 하나만 224억이 든다는데 내 평생 거기 가서 점프해볼 일 없겠다 싶으니 배가 아파 그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기장 시설과 부대시설, 도로망 확충에 9천 5백억에 달하는 비용이 든다고 놀라서 그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까짓 몇천억 정도의 돈이야 단련될대로 단련된 귀다.
이미 세계적으로 스포츠는 거대한 산업이자 문화로 자리잡았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함께 발전해온 스포츠 문화는 이제 우리 생활에 가장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되었다. TV에 정치뉴스나, 예술뉴스는 따로 없어도 스포츠 뉴스는 황금시간대에 다라 편성되어 있으며 경기장마다 쏟아지는 오빠부대의 함성은 더 이상의 부연설명을 필요치 않게 만들어준다. 누가 인위적으로 조장을 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그 속에 빠져 살고 있다.
물론 넓은 개념으로 스포츠도 하나의 문화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 불유쾌하거나 부정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드높고 건강한 문화를 꽃피웠던 민족들에게 활달한 스포츠 전통도 함께 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스포츠의 역할을 되새겨보게 한다.
그러나 현대스포츠의 몇가지 특성은 우려할 만한 독소를 지니고 있다. 그 하나는 스타 중심의 스포츠, 소수 엘리트를 위한 스포츠로의 편향적 발전이다. 이미 이 점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이 있어 왔지만, 스포츠는 모든 사람의 건강한 삶을 위해 육성되고 지원되어야 한다는 보편적 가치를 가질 때, 보다 큰 의의를 부여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또 다른 하나는 스포츠를 성적화시켜 국력측정의 자로 전락시키는 행위다. 특히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에 우리를 내세우는 하나의 방편으로 국제대회에, 그야말로 전투적인 자세로 출전하여 그 성적에 울고 웃던 관행으로부터 우리는 아직까지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또한 스포츠의 지나친 성적화 역시 무시못할 문제점을 던지고 있다. 자본 우위의 사회에서 선수들의 프로화까지는 탓하기 어렵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의 쇼화, 행사 자체의 대규모 이벤트화를 부추기는 자본의 논리는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분명 차단되어야 한다.
97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우리지역에서 열린다는 것이 확정된 지 오래다. 많은 준비가 있어왔고 지금도 열심히 진행중이다. 각종 경기장 시설, 전주 무주 선수촌, 본부호텔, 중계시설 및 발전시설, 문화예술회관, 특히 눈에 시원스레 띄는 도로망 확충 등이 갈수록 활기를 띠고 있다. 국제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그 의의의 고하간에 우리에게 떨어지는 반사이익이 분명 있다. 그러한 기간 시설물들은 대회 후에도 그 주된 증거물로 남아있을 것이다.
올들어 바빠지기 시작한 것은 이 대회를 장식할 문화예술 행사준비다. 이미 대회조직위에서 주관하는 개,폐회식에 화려하고 가장 한국적인 멋을 집어넣기로 공약이 되어 있고, 민속축제, 젊음의 축제, 연극축제, 홍보축제, 전시정합축제 등 문화축제 10대 이벤트가 선정되어 결전의 그날을 위해 칼을 가다듬고 있다. 또 각종 전시회, 일반 공연, 분위기 조성을 위한 경축 행사 등이 전북도 및 각 시, 군 중심으로 행사계획을 구체화시켜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행사만을 위한 행사를 치루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일회성 공연 유치를 통해 외화내빈의 극치를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진정으로 우리 들의 삶 우리들이 문화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동계U대회는 분명 대학생들의 경기다. 물론 단순히 대학생 경기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이목이 집중되어 있음을 안다. 대회의 성공적인 진행으로 과시될 우리들의 역량이 우리들의 꿈, 세계화에 어떤 유리함을 가져다줄지도 분명 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우리를 돌아다보자.
조직 위원장은 문화예술 축제에 관한 질문에 ‘화려하고 한국의 전통적인 멋이 깃들인 개, 폐회식’ ‘전북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각종 문화예술 이벤트’로 광주 비엔날레 이상의 문화제전이 될 것이며 ‘예향전북의 전통이 다시 세워지는 전북르네상스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우리, 지나치게 욕심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나친 자만심을 버렸으면 좋겠다. 조직위는 지난 스페인 하키대회를 국제대회임에도 문화행사에 투자를 최소화하여 질과 양적인 면에서 빈약했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당시 현지를 지켜본 어느 지인으로부터 대회가 열리는지 아닌지를 몰랐을 정도로 조용했다는 전언이 깊은 감동을 받은 사람도 있다는사실을 함께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하키가 아닌 그 어느 다른 개최지에서 예술의전통이 다시 세워지고 르네상스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아직 접해본 바 없다.
한 지역의문화와 예술은 그 지역민의 오랜 삶의 역사가 축적된 결과물이다. 선동적 이벤트와 부흥의 구호로 재촉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행사가 끝난후 채우기 힘든 우람한 문예회관의 객석을 바라볼 이 지역 예술인들의 심정도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대회를 위한 분위기가 전혀 조성되고 있지 않다고 한탄한다. 사람들이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대회를 치르냐는 것이다. 아마 전 도민이 일년전부터 이 대회를 손꼽아 기다리며 방방 설쳐주길 기대하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여전히 희망적이다. 의연하면서도 꿋꿋하게 일상적인 삶에 열심인 우리 대부분의사람들이 바로 보통을 뛰어넘는 문화의식의소유자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역량과 시도 좋고 세계화도 좋다. 친선도모도 좋고 축제도 좋다. 그러나 왜 축제인가? 왜 늘 스포츠 행사때만이 들러리로 문화예술이 대접받아야 하는가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사람들을 생각하자. 문화는 과시되지 않아도 그 향기로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