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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3 | [파랑새를 찾아서]
저널여정 민초들 곁, 아직도 그 물은 탁하다 채만식 선생을 만나러
글/정동철 전북청년문학회 회장 (2004-02-10 16:15:06)
탁류로부터 저녁 9시 30분 군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세상은 고요하고 별들은 차다. 그리고 차는 달리낟. 익산, 옥구, 대야로 이어지는 점점 불빛들이 아름답다. 나는 지금 나의 탁류로부터 나와 채옹(寀翁)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사람들은 말이 없다. 간간이 흔들리는 차안에서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람들. 보따리, 가방, 책 꾸러미 등이거나 빈손에 빈손을 얹고 잠이 들었거나 창가를 바라보는 사람들, 뒷자리에서 창문을 열고 운전기사 몰래 담배연기를 창밖으로 흘러 보내는 사람들, 칭얼거리며 보채는 아이를 안았거나 에드폰을 귀에 꼽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그들도 나처럼 탁류로부터 나와 그들의 안식처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무릇 이 세상 모든 짐승들이 그들의 삶과 그들 노동의 들판에서 돌아와 따뜻한 아랫목을 찾아가듯. 살아가는 동안 나는 덧없이 실망했고 더없이 외로웠다. 치열하게 살고자 하였으나 자중하지 못하였고 세상을 향해 내달렸으나 출구가 보이질 않았다.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밖이 보이지 않는, 어디만큼 왔는지, 지금쯤은 어디인지 모르는, 아니 알 수 없는 지점에서 잠시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외로웠을까? 식민지 시절, 그도 나처럼 긴 어둠의 터널 속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가? 그에게 묻고 싶었다. 어쨌든 나는 그를 만나러 간다. 창밖으로 전군가도를 도열한 사꾸라 나무들이 휙휙 스쳐 지나간다. 채옹에게 선생의 문학비가 있는 군산을 다녀와서 기행문을 하나 써 줬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음을 나는 후회하고 있었다. 능력이 부족한데도 이 지역 청년문학인들의 모임은 전북청년문학회의 대표를 자의반 타의반 맡은 입장이라 머릿속이 미친년 치마속처럼 어지러운 까닭이 첫 번째이고, 채만식 선생에 대한앎의 정도가 일천한 까닭이 그 두 번째다. 어찌됐거나 밥상은 차려졌고 이제는 물릴 입장도 아니다. 버스는 목천포 검문소를 지나고 있다. 다리 밑으로 만경강의 탁류는 흐르는가 멈춰 있는 것인가. 작품집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은 누차 소개되어 선생 작품의 성격을 고정시켜 버리는 ‘풍자’에 관한 것이었다.1920년에서 40년대에 이르는 근대 소설에 나타나는, 뭐랄까 일종의 도덕적 정통성 내지는 궁극적 희망이 선생의 소설에서는 좀체로 찾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당혹스러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심훈의「상록수」에서는 식민지 상황에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농촌 사회의 계몽을 통한 항거의 의지가 있고, 친일 부역 문제로 요즘도 회자되고 있는 이광수의「무정」등에도 조국의 근대화와 재건에 대한 맹세가 있으며, 염상섭의「삼대」등에서도 독립에 대한 꿈이 베어 있는 반면에 선생의 작품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냉소와 자학이 보일 뿐이다. 90년대 초반, 80년대를 팔베개하고 누운 문학계의 ‘희망찾기’에 관한 당혹감이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버스가 대야에 도착하면서 잠든 사람이 하나 둘이 일어나 짐을 챙기고 얼결에 잠을 깬 몇몇도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몸을 움직인다. 일시에 버스 안의 정적은 깨지고 수군거림 속에서 나는 다시 선생의 작품집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선생의 단편「모색」의 주인공 옥초는 왜 아무런 갈등도없이 시대로 전향해 들어갔으며「암소를 팔아서」의 주인공은 왜 턱없이 바보스러운 농민이었으며, 외동딸을 공장으로 보내고 그 딸이 폐병으로 귀향하는 빈농의 처지를 다룬「동화」는 왜 이리 암담한지.「레디메이드의 인생」의 지식인은 ‘찌부러진 찌스러기’혹은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 주인 없는 개’일 수밖에 없는지,선생 또한 동경 유학을 한 인텔리겐차였던 바, 식민지 상황에서 이것저것 지식을 섭렵해 버려 온통 회의할 수밖에 없는 무력감을, 당시 지식인들의 모습을 그렇듯 자학적인 모습으로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왜 읽어도 읽어도 적극적인 종말,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태평천하」의 윤두섭은 ‘공자님과 맹자님이 팔씨름하면 어느 쪽이 이길 수 있느냐고’ 천박한 질문을 해대는지, ‘우리만 빼놓고 다 망해버려라’라고 독설을 퍼부으며, 독립운동을 하는 큰손자의 생식기를 ‘잡아 뽑을 놈’이라고 욕을 할만큼 상스러운지........ 결국 ‘풍자’라는 것은 무엇일까. 도식적 구도로 이어지는 작가적 양심보다는 솔직히 전망하자는 것일까. 속보이는 희망을 너저맇 포장하기보다는 역으로 최악의 상황을 보여줘서 극적 효과를 내는 문학적 장치인가. 그러함이 ‘풍자’인가. 풍자는 ‘적극’적인 것인가. 소극적인 것인가. 항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분노하고 절망이 극에 달하면 풍자가 되는가. 이 ‘태평천하’에 이 ‘문민정부’ 시대에, 올해 ‘문학의 해’에 올바른 작가 정신은 무엇인가. 적극적인 ‘끝’과 새로운 ‘시작’에 급급하는 후학의 태도는 삶이 일천하여 세상살이의 쓴맛 단맛을 모르는 조급함인가........... 월명공원에서 바람이 차다. 한 겨울에서봄으로 이어지는 훈훈함이 그 서늘한 설레임이 공원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살갑게 출렁거리고 조금더 오르니 서해 바다가 보인다. 서해 바다를 에돌아 휘몰아 달려오는 바닷바람이 폐부를 뒤흔들어 놓는다. 점점 띄워 놓은 것 같은 고기잡이배의 동롱들이 세상 살아오면서 만들어 놓은 연인처럼 어렵게 어렵게 이어져 지친 어깨를 붙들고 군산 앞바다를 감싸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어둔 밤길을 더듬어 채옹의 문학비를 찾아간 곳에는 아무도 없다. 네모 반듯이 깎아 놓은 문학비 곁에 먹다 버린 과자 봉지가 바람에 흩날리고 아무도 없다. 챙겨 간 술 한잔 술, 그리고 나머지 한 잔을 가득 부어 마시는 동안 밤하늘에 별은 차갑도록 푸르다. 공원 안에 가득한 것은 어둠과 황홀하리 만치 차 오르는 취기가 있을 뿐, 채옹도 말이 없고 채옹의 문학비도 말이 없다. 해줄 이야기가 없으니 그만 내려가라는 것인지, 잠시 서둘러 온 길에 다리나 뻗고 쉬었다 가라는 것인지. 다시 탁류 속으로 금강(錦江)......... 부여를 한바퀴 휘돌아 나가다 급히 남으로 꺾여 단숨에 논뫼 강경이(論山, 江暻)까지 들이받는다 여기까지가 백마강(白馬江)이라고, 이를테면 금강의 색동이다. 여자로 치면 세태에 찌들지 않은 처녀 적이라고 하겠다............. 백마강은 공주(公州) 곰나루(津)에서부터 시작하여 백제(百濟)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전후가 한참이지,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물은 탁하다 「탁류」앞부분 중에서 나 돌아간다. 세상속으로. ‘정 주사와 고태수와 초봉과 정형보와 승재(이상,「탁류」의 등장인물)’가 살았었고 ‘윤두심과 윤창식과 그의 손자 윤종학(이상,「태평성대」의 등장인물)’이 살았으며 지금은 굽이굽이 금강과 섬진강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민초들의 곁으로 그들과 함께 흘러가고 있는 역사의 탁류 속으로 나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정동철 올해 나이 29세. 올해초 전북대 대학원 전기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전북청년문학회의 회장을 새로 맡았다. 어려서부터 시를 좋아하고 즐겨 썼으며, 전북청년문학회 창립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쓰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전북대 전기공학과 연구조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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