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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3 | [세대횡단 문화읽기]
음악회를 보고 ‘노래하는 악기’, 그 진정한 자유와 대화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 미푸테 전주공연
글/조창배 (2004-02-10 16:14:15)
첼로-많은 사람들은 그 풍요롭고 온화한 저음에 많은 매력을 느낀다. 바이올린처럼 화사하고 세련된 맛보다도 은근히 풍겨오는 첼로에 사람들이 좀금 더 깊은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심정이 그 음색을 닮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지난 2월 4일 전북예술회관에서 좀처럼 접하기 힘든 대가의 연주를 접하게 되었다. 모 방송국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오벤바의 작곡의「쟈클린의 눈물」로 유명한 독일 출신의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의 연주가 2월의 문을 열었다. 모든 악기의 최상의 경지는 노래하는데에 있다. ‘노래한는 악기’, 이는 모든 연주가의 꿈이고 다다르고 싶은 이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너 토마스는 너무도 유연하게 첼로로 노래하는 대가이다. 이날의 느리고 촉촉이 젖어드는 감미로운 연주는 가히 일품이었다. 특히 세 번째로 연주한「포레의 꿈을 따라서」에서는 사람의 목소리와는 또다른 감동을 느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현의 마찰음과 절묘한 비브라토가 만들어내는「포레...」는 분명 가사없이도 쉽게 전달되는 노래였다. 오페라의 아리아처럼 극적이고 화려한 노래라기 보다는 섬세한 독일 가곡을 듣는듯한 그의 연주는 매우 감미로웠다. 음악회를 정성스럽게 준비한 저녁 만찬에 비유하여 설명하자면 베르너의 연주는 에피타이저(입맛을 돋구는 가벼운 음식)와 디저트는 성공했으나, 정작 정찬은 서운한 그런 만찬이었다고나 할까? 전반부 마지막에 연주된 브람스의 소나타 F장조는 도입부터 어색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으며 반주잘를 의식하는 듯한 몸짓은 청중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주었다. 미푸네에게 거침이나 형식은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뭐니뭐니 해도 첼로의 매력은 가슴을 울리는 저음에 있다. 조금은 거친듯한 저음에서 우리는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정작 깊게 울려야 할 저음은 울리지 않고, 메마른 기침소리 같은 현과활의 파열음은 첼로의 본 모습은 아닐 것 같았다. 베르너 토마스같은 대가가 왜 ‘브람스에 이르러서 왜 그토록 혼란스러워졌는가. 못내 서운함을 남긴 ’브람스‘였다. 청중들의 성숙한 관람 분위기에서 진행된 1부의 연주가 끝나고 그의 또다른 면모, 즉 작곡가로서의 미푸네를 볼 수 있는 무대가 2부에서 준비되어져 있었다. 분명 그는 천재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는 청중과 호흡하고 싶어하는 연주자였다. 그의 실험정신과 천진함이 어우러져 무대와 관객이 호흡하는 흐믓한 시간이 음아고히의 흥을 돋우고 인상적인 연주로 남게했다. 그날 연주에서 그는 시골길을 달리는 기차소리, 독일의 구급차와 한국 구급차 사이렌 소리, 고양이 소리 등 너무 기발하고 위트 넘치는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이런 분위기는 그곳을 엄숙한 연주회장이 아닌 마치 매우 즐거운 사교의 장을 연출하는듯한 바람직한 연주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준비된 프로그램은 모두 끝났다.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직 듣고 싶은 선율이 남아 있었다. 레코드가 아닌 베르너 토마스가 직접 연주하는「자클린의 눈물」이 곧 연주될 순간이다. 호기심, 적당히 기분 좋은 흥분과 기대가 섞인 박수소리....... 드디어「자클린의 눈물」이 모습을 드러내싿. 나는 감격했다. 첼로를 통해 흘러나온 선율이 아닌 연주하는 모습에서 대가의 실체를 보았다. 물론 음악도 완벽하다. 나는「자클린의 눈물」을 매우 좋아한다. 아마도 그날의 많은 청중들 또한 나처럼 그「눈물」을 듣기 위해 연주회장을 찾았을 것이다. 레코드를 통해서 들었던 그 애잔한 선율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그 연주장에서의 연주를 통해 나는 배우고 싶었다. ‘베르너 토마스’의 끝없는 고난과 노력속에서 스스로 악기와 동등해지고 다정하게대화를 나누는 그 진정한 자유를 갖고 싶었다. 연주가와 악기가 종속의 관계가 아닌 참 친구로서 같아지는 관계! 분명 부단한 노력과 철저한 준비가 그 둘(연주자와 악기)을 대화하고 자유케 했으리라. 과연 음악은 감상의 대상인가? 음악은 질서, 조화 그리고 치열한 분투속에서 숨쉬어져야 한다. 즐기는 것이 아닌 교육으로서의 음악, 진정한 생활문화로서의 음악이어야 한다. 이번 연주회장엔 특히 소중한 관객들이 많았다. 미래를 꿈꾸는 젊은이들과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 나온 아이들, 이들에게 분위기로서의 음악, 즐기고 감상하는 음악이 아닌 진정한 교양으로서 ‘고난을 뚫고 환희로’를 가르치는 소중한 도구로서 음악은 그들에게 교육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음악적 훈련과 느낌처럼 그들 스스로 사회속에서 문화를 만들고 실천하기를 진정 원한다. 조창배 67년 군산생. 86년 전북대 조경학과에 입학했으나 음악을 버릴 수 없어 다음해에 전북대 예술대 음아고가를 다시 입학, 성악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열렬하게 합창단 활동을 했고, 음악이 좀더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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