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6.3 | [문화저널]
옹기장이 이현배의 이야기 내일에 가서 기다리는 어제
이현배(2004-02-10 16:11:09)
작년 여름일이다. 전주 ‘예사랑’ 천선생께서 대학부설도지교실 친구분들과 견학을 왔드랬다.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소포를 가지고 왔다. 인천 용화선원의스님께서 보낸건데 책과 호박엿 그리고 먹물을 들인 회색 윗도리였다. 천선생께서 감물을 들인 아랫도리를 선물로 주시니 멀쩡한 대낮에 옷이 한 벌 맞춰진 거다. 팔십칠년도 부천시 역곡동 안동네에서 살았을 때 일이다. 용산사는 누님댁에 갔다 나옴녀서 아파트 쓰레기통에서 전해오는 파장을 느꼈다. 캄캄한 밤이라 다가가 만져보니 멧돌 위짝이었다. 그 무거운 놈의 것을 지하철을 타고 역곡까지 들고 갔다. 그리고는 며칠 후 방문 앞에다 화분 선반을 만드느라 땅을 파는데 괭이 끝으로 오는 파장이 느껴졌다. 급히 후래쉬를 비추며 조심조심 파보았더니 멧돌 아래짝이 나오는 거였다. 저번날 꺼하고 돌의 성질(현무암)하고 크기까지 맞아 떨어진 거다. 중학생때 미술반 친구따라 미술실에 놀러갔었다. 누군가가 뎃생을 하다만게 있었다. 장난삼아 손좀 봐줄 요량으로 연필을 집어들고는 석고상과 종이를 번갈아 가며 봤지만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틀린데가 없었던 것이다. 국민학생 때 미술반에 들어갔다가 연습으로 종이와 크레용을 허비하는 걸 감당못하였다. 이젤을 사가지고 오라는 말에 아예 미술반을 그만 두었지만 그래도 그리기는 유일한 자부심이었기에 마음의 상처가 됐다. 며칠 뒤 남몰래 혼자서 미술실엘 갔다. 그 그림은 뒤로 넘겨져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둘둘 말아 훔쳤다. ‘이 담에 돈벌면 꼭 그림공부를 하여 이 그림을 손봐줘야지’하면서 십년이 지나 돈벌이를 하게 되었다. 그래 화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큰맘먹고 시작한 공부인데 화실이 문을 닫아 어쩔까 하고 고민을 했더니 친구녀석이 며칠전에 중학교 여자동창생을 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미대 졸업반이더라며 그 여자 동창생에게 상의해 보라 했다. 그래 그 여자동창생을 만났는데 마침 졸업하면 결혼할 작정이었던지 대뜸 결혼을 하자는 거였다. 그래 어쩌고 저쩌고 해갖고 여보 당신이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중학생 때 훔친 그림 얘길 했더니 한 번 보자한다. 그 그림을 보더니 자기 그림이란다. 구십사년도 가을에 바로 그 통인가게 통인화랑에서 그 뚝배기를 만들었던 영감님과 같이 전시회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화랑의 기획실장 이름이 장계현인데 나의 탯자리 장수군 장계면이 고려시대 장계현이었다하니 그 아가씨는 이사람을 통해서 옹기와 자기 이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며 고맙다 했다. 올해가 구십육년도. 내 나이 서른 다섯. 결코 세상을 길게 산게 아닌데 벌써부터 어제와 오늘이 만난다. 요새는 기이하게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우연에서 필연으로 가는게 많다. 그래 세상에 우연은 없어 뭐든 다시 한번 다가오는 것야. 이제는 만나고 싶었던 사람, 만나고 싶었던 일, 만나고 싶었던 물건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