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3 | [서평]
서평
청학동에서 바라본 세상일기
「세상 사람은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세상을 보고 웃는다」
(청학동 훈장 지음, 가리온 출판사, 1996)
글/김민규 고려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과정
(2004-02-10 16:06:36)
그동안 우리는 숨가쁘게 달려왔다. 하나의 목표점을 설정하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너무나도 달리는 데만 정신을 팔고 있어서 우리는 미처 자신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처럼 그저 달려오기만 했다. 60년대부터 96년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온 많은 정책중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바로 경제성장이요, 앞만 보고 달리라는 아니 달려야만 한다는 구호와 위협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정말로 열심히 달려왔다. 그리고 달려오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 될 것으로 믿었다.(마치 모든 헐리우드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그러한 결과로 우리는 보릿고개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풍요로와졌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먹을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국민소득 만달러라는 것으로 대표되는 경제성장의 성과는 어쨌든 우리 모두가 그동안 딴 짓하지 않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결과이다.
그러나 현재의 물질적 풍요와 경제성장의 혜택을 얻기위해 우리는 다른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자연은 황폐해져 오염이 되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게 되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콘크리트빌딩보다 더 높아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으며, 어느 유학생의 말처럼 이 땅이 한국인지 미국인지 일본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멋은 외국의 문화로 대치되고 있다. 만달러를 쥐고 사막 한가운데에 홀로 서있는 것이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만달러마져도 쥐고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가끔씩 삶의 톱니바퀴에서 반걸음 물러나 흐릿한 영상으로 떠오르는 과거의 향수를 그리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게 되는 것은 나만의 습관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삶이 현재보다 훨씬 좋았다는 등의 복고주의를 지향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제 그렇게 살 수도 없음은 누구나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삶에 대한 성찰적인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자신을 읽는 것이고, 세상(사회)를 읽는 것이다. 아련한 향수를 먹고 사는 진열장의 골동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나 아닌 타인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 나아가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 겸허와 반성적인 삶의 태도는 요구되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실천하는 삶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청학동 훈장님이 쓴「세상 사람은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세상을 보고 웃는다」는 저자가 댕기머리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학의 길을 걸어오면서 느끼고 보았던 세상에 대한 한마디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자본주의의 포식성에 무너져 버린 청학동에 대한 막연한 씁쓸함과 실망이었고, 두 번째는 갓과 도포로 대표되는 한학자의 고리타분한 이야기일거라는 편견이었다. 그러나 책장이 하나둘씩 넘어 가면서 씁쓸함과 실망은 이내 적극적인 실천적 사고로 바뀌었고, 편견은 나 자신의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
세상에 대한 저자의 그 한마디 속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서느끼는 따뜻한 정과 안타까움과 불만이 있으며, 이를 넘어서 훈장님으로서의 노여움까지 은근히 배어있다. 세계화니 국제경쟁력이 하는 말들이 덧없이 난무하고 있는, 그리고 21세기를 목전에 둔 이 시기에 우리는 이 책에서 현실과 부딪혀온 한 한학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더 이상 우리들의 머리 속에 갓과 도포로 대표되는 골동품으로서의 한학자의 모습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진지함, 조화로운 자연의 법칙에 대한 아름다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 현시기 세태에 대한 비판, 이방인으로서의 어려웠던 삶에 대한 에피소드,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 우리의 멋을 찾고자 하는 욕구 등 이 책 속에 담겨있는 활자들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며, 항시적으로 부딪치는 갈등에 대해 저자가 한학자로서 그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세상 사람으로서 살아있는 목소리이다. 골동품으로, 집안의 장식용으로 걸려있는 죽은 갓이 아닌 숨쉬고 살아움직이는 사람과 세상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갓이다. 그리고 이 갓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世人笑我 我笑世
세상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세상을 보고 웃는다는 이 책의 제목처럼 여유로운 웃음을 갖고 살 수 있다면 그것은 극락이요, 천국이요, 이상한 청학동일 것이다. 그 웃음이 반목과 질시를 가장한 비웃음이 아니고, 겉치레를 위한 가면이 아니고, 자신의 우월함을 뽐내는 멸시에 찬 웃음이 아니고, 권력에 아부하는 그러한 웃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조화와 평등을 바탕으로 한, 그리고 자신의 삶에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받아줄 수 있는 웃음, 아무런 가식이 없는 자연스런 본성의 웃음, 아무런 가식이 없는 자연스런 본성의 웃음, 세상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웃음, 이런 웃음이라면 말이다. 이런 웃음들이 세상 곳곳에 널리 퍼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세상 사람들아! 그 움켜쥔 주먹을 풀자. 그 옹골찬 눈빛도 풀자. 맺힌 한이 있거든 안으로 울고 사랑할 일이 있거든 꽹과리로 울리자. 우선 나를 사랑하고 때로는 다독거리고 덮어주고, 그래서 오천 년 살아온 그 멋 따라 살자. 세상 사람들아.”
김민규 고려대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문학사회학을 전공했으며, 80년대부터 노동자문예운동에 참여했왔다. 노동과 문화, 문화와 사회 등의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문화야말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