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3 | [문화칼럼]
문화칼럼
진정 민족을 위하는 통일을 생각하자
글/최동현 군산대 교수 국문과
(2004-02-10 16:00:24)
최근 들어 북한 체제로부터 탈출 또는 망명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러시아 벌목공들의 귀순이나, 중국을 통한 북한 동포의 탈출 등은 종종 있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북한의 상류층 인사나 그 자제들이 연이어 귀순해 오고 있어서 예전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성급한 사람들은 북한이 금방 무너질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통일을 그려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북한 주민의 집단 탈출이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고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중하기도 한다. 어쨌든 통일이 된다면 좋은 일이겠으나, 불행히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정부에서도 ‘최근 일련의 사태는 북한 사회가 체제 붕괴 등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사회 불안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북한 내부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경제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만은 거의 틀림이 없어 보인다. 북한 경제가 어려운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사회주의적 발전이 한계에 이른 데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집하다가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게 된 것이 근본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이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작년에 사상 유례없는 홍수 피해를 입은 때문이다. 그렇게도 자존심 강한 북한이 국제 사회를 향하여 시급한 구호 요청을 보낸 것을 보면 알 만한 일이다.
작년 홍수 이후 우리는 적절하게 북한에 식량을 보냈었다. 그러나 정부는 당면한 지방 자치단체 선거에서의 세 불리를 만회하려는 욕심 때문에 몇 가지 실수를 했고, 그것이 발목이 잡혀 이러지도 저러ㄷ지도 못하는 어려움에 빠져 있다. 사실 같은 동포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한 쪽이 넉넉한 살림을 하고 있어서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리는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에 올해 안으로 가입하기로 되어 있고 가입을 하면 국민소득의 0.7% 이상을 저 개발국을 위해 원조하라는 권유 형식의 압력을 받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못 살 때 받았던 원조를 이제 갚아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원조를 해야 한다면 같은 동포에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같은 동포를 굶어 죽게 놓아두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원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우리위 헌법대로라면 북한은 우리 나라의 영토이고 북한 동포 또한 당연히 우리 국민이다.
나는 통일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 다. 그러나 우리에 비하면 오랜 준비 기간이 있었고 경제력도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던 독일이 통일 후유증에 크게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용이 들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비용을 들여 통일을 하느니 차라리 따로 사는게 낫다고까지 한다고 한다. 통일은 서서히 해야만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서서히 통일을 한다는 말은 북한 체제가 급격히 와해되지 않고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것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점진적 통일이 필요한 것은 비용 때문만도 아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통일을 위한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했다. 대결만을 의식해서 적대간만을 키워 왔지 어떻게 함께 화합하며 살 것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린아이들 중에는 통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한다. 늘 적대감만을 키워 오던 상대방과 갑자기 같이 살 것을 생각하면 겁부터 날 것이 뻔하지 않은가.
지난 가을부터 계속된 남북간의 이른바 쌀회담은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감정의 골만 깊게 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태도는 ‘이렇게 된 마당에 두 손을 들고 나오라, 그러면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다른 나라들까지 돕지 못 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작년 여름의 따뜻했던 마음은 어디로 가버리고, 궁지에 몰린 사람들에게 완전 항복을 요구하는 승부사의 냉혹함만이 번뜩인다.
선거를 목전에 둔 각 정당들은 여차하면 남북 문제를 걸고 넘어질 듯한 태세이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선거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기에 바쁘다. 이러다가 막상 북한이 혼란에 빠지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그에 충분히 대처할 만한 역량이 있는가. 일본이나 미국이 북한에 쌀을 제공하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북한이 혼란에 빠졌을 때 들어갈 비용보다는 여기서 북한을 안정시키는 비용이 더욱 싸게 먹힌다는 계산이 고려된 것이라고 한다. 물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통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우리와, 통일이야 되든 말든 자기들이 편안히 살기 위해 비용만 덜 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혼란에 빠져 우리의 안보마저 위태로운 지경이 된다면, 그때 가서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 클 것이 뻔하다. 또 북한을 계속 정치 경제적 어려움 속에 빠뜨린다면, 그것은 결국 통일의 날에 우리가 다시 감당해야 할 짐으로 되돌아올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에 차분하게 긴 안목을 갖고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제발 이번 선거에서는 여야 모두 남북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반사 이익만을 취하려 하지 말고, 무엇이 진정으로 민족을 위하는 일인가를 생각해 주길 바란다. 곤경에 빠진 북한 동포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안겨 줄 수 있는 방안들이 하루 빨리 마련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