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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 | [저널초점]
저널초점 반쪽의 조직, 그러나 협력의 자제는 견지 문학의 해, 전북에서는 어떻게 진행되나
글 / 원도연 「문화저널」편집장 (2004-02-10 15:30:35)
‘문학의 ’ 행사를 총괄 주관하게 될 ‘96문학의 해 조직위원회(위원장 서기원)에 민족 문학작가회의(회장 송기숙)가 공식적으로 불참을 선언하고 나서 그 파장이 전북지역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작가회의가 불참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우선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 구성과 관련된 것이지만 여기에는 한국문인협회와 작가회의와의 문학적 인식 차이가 빚은 깊은 갈등과 행사 주관부서인 문체부의 독단이 배경이 되었다는 지적이다. 작가회의는 지난해 12월13일 문체부에서 위촉한 조직위원회가 거의 문협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문협이 각 기구를 독점, 사업계획 수립부터 지극히 배타적으로 주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이러한 문제는 사실 지난해 10월 문체부에서 조직위원회를 구성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것이다. 문체부는 각 단체와 장르를 고려해 50~60대 중진들로 골고루 조직위를 구성했다고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문학단체의 위상이나 현실을 잘못 파악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작가회의는 이에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노골적으로 정통성없는 정권을 지지하고 협력한 문협이 문학의 해를 주도하도록 한 처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고, 이것은 곧 한국문학의 정통성에 대한 시비로 이어졌다. 여기에 작가회의가 지난해 8월 사단법인 등록 서류를 제출한 바 있으나 문체부로부터 실질적으로 불가 판정을 받았고, 이로 인해 증폭된 정부에 대한 불신도 크게 잦ㄱ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현실적으로는 이미 조직위원회를 장악(?)하면서 예산권을 선점한 문협에 비해 작가회의가 현실적으로 아무런 실행능력도 없이 구색만 갖추어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이렇듯 문학의 해가 초반부터 삐그덕 거리는 상황에서 전북지역의 문학계 역시 곤혹스런 처지에 있다. 우선 작가회의 전북지부격인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회장 이병천)는 작가 회의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지역사회라는 특성상 그 결정을 전북지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자체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사안에 따라 공동사업을 펼쳐나가겠다는 방침을 정해두고 있다. 전북문인협회(지회장 김남곤) 역시 서울의 이런 분위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지역의 문제와는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역사회라는 좁은 울타리안에서 서로 얼굴 붉힐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전북의 올 ‘문학의 해’ 사업은 사안에 따라 협력하면서 기본적으로는 각기 특성 있는 사업들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ㄷ.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전북문협이나 민문협의 집행부와 구성원들이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인간적으로 반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사업의 근본적인 취지나 방향에 있어서 원칙적인 방법론이 다를 수 있지만, 양측의 집행부 모두 이런 현실적인 차이를 넉넉하게 인정하는 가운데 건전한 경쟁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전북문협이나 민문협의 구성원들은 ‘문학의 해’라는 구호에 뜻밖으로 담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담담하다 못해 심지어는 시큰둥한 표정마저 짓는 문인들도 있는데 이는 문학이라는 장르가 기본적으로는 작가 자신의 치열한 창작과정을 전제하는 것으로 정책적으로 문학의 해를 지정하고 지원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전북 지역의 ‘문학의 해’사업은 밖으로 거창하게 나타나는 사업들보다는 역사와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차분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북 문협의 김남곤 지회장은 문학과 관련된 사업은 기본적으로 책으로 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작업들은 곧 194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북 문학사에 대한 총괄적으로 정리한 「전북문학사」의 발간이나, 문인 인명록 발간사업, 이미 작고한 지역작가들의 유고집 등으로 이어진다. 민문협의 기본적인 관심도 역시 역사와 사람에 관한 것이다. 민문협은 이런 저런 이유로 기억 속에서 지워져버린 재야문인들에 대한 재조명을 시작할 작정이다. 역사 속에 지워져 벌니 대부분의 재야문인들은 거의가 한국근현대사의 격랑 속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했을 것이고, 아마도 좌익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바로 이런 작가들을 발굴하여 지역문학사에 제대로 올려놓겠다는 생각이다. 문학의 해에 또 한 가지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은 문학과 다른 문화예술장르와의 만남에 대한 것이다. 문학은 사실 거의 모든 문화예술 행위의 기본 텍스트가 되는 까닭에 문학만큼 폭넓은 적용력을 갖는 경우가 드물다. 음악과 미술, 무용, 연극 등 모든 장르가 문학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문학의 해 사업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장르들과 더불어 표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북문협과 민문협은 모두 기발한 사업들을 준비해 두고 있다. 전북문협은 시화전을 준비하고있고, 민문협은 문학과 음악의 만남, 그리고 문학과 그림과의 만남을 기획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민문협이 좀 더 창의적인데 먼저 음악과의 만남에서는 지역 음악가들과 함께 민문협 회원들이 쓴 시에 곡을 붙이고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들은 따로 발표회에서 공연하겠다는 계획이다. 민문협은 또 3년 전에 열려 호평을 받았던 <이땅의 시화, 두 정신의 만남>전을 다시 한 번 열어볼 생각이다. 민문협은 밋밋한 시화전에서 벗어나 한 시대를 같이 아파하고 그 정신에 담아 낼 수 있는 시화전으로 민족민중적인 문제의식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밖에 전북문협이나 민문협은 각기 그야말로 ‘문학의 즐거움을 국민과 함께’할 수 있는 대중적인 프로그램 마련에도 열심이다. 문학학교가 열리고, 문학기행이나 시인캠프 등도 마련되며, 특히 전북문협은 청소년이나 어린이를 위한 사업들도 어느 때보다 충실하게 치러낼 작정이다. 이렇듯 전북문협과 민문협은 모두 서로를 의식하는 경쟁에 힘을 소모하기 보다는 각기 서로가 가진 방법론으로 올 문학의 해를 치러낼 것이다. 물론 한 해 사업을 이끌어 가면서 이런저런 문제들이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고, 서울의 사업방향에 민감하게 영향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여전하지만 아직까지는 서로가 비교적 객관적이고 여유 있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또 여기에 두 단체 모두 결정적으로 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가장 큰 어려움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전북문협과 민문협의 이같은 차이는 결국 사업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고, 그 차이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궁극적으로는 전북 문학의 폭이 넓어지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지금에 이르러 대사회적인 발언권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는 문협으로서도 ‘문학의 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전화느이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민문협으로서도 올 한 해의 사업으로 그간의 투쟁적이고 저항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 시대의 진정한 문학적 대안을 얻어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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