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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 | [세대횡단 문화읽기]
연극평 자유 의식을 일깨운 걸출한 육체 문법 연극 <아일랜드> 공연을 중심으로
글/김길수 연극평론가 순천대 교수 (2004-02-10 15:17:07)
아일랜드, 우리말로 이야기하면 섬, 아프리카 어느 낯선 섬에 갇힌 자들, 자유를 향한 끝없는 갈망, 육체를 통해 누리고자 하는 향락 욕구, 참 평안과 안식을 갈구하는 실존적 몸부린, 그 양 축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두 죄수의 고민, 극단 황토의 <아일랜드>(아돌 후가드 작,이호중 연출) 공연은 극중 인물들의 고민을 오늘의 문제로 승화시켜 자유와 관련된 우리네 실존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든다. 두 죄수가 벌이는 극중극 <안티고네>. 크레온의 독재를 질타했던 안티고네의 언어, 이는 탄압의 현실과 폭압의 현실을 질타하고자 했던 흑인 죄수들의 뜨거운 외침이자 항변을 상징하낟. “우리 조상들의 신이여! 내 나라여!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나의 살아 있는 죽음 속으로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존중해야 할 것들을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이 외침의 정점에서 두 죄수는 참 자유의 의 미를 깨닫는다. 썩어빠진 일상의 향락욕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이 들은 서로를 올바로 이해하게 되고 진정한코 하나로 합일된다. 그러나 폭압적 현실에 대한 항변, 이는 흑인 죄수들에게 돌아올 참혹한 형벌로 이어진다. 뜨거운 뙤약볕, 바위를 날라야 하는 중노동, 갈증과 아픔 속에서도 죄수들은 무언가를 힘주어 말하기 시작한다. 거기엔 관객을 사로잡는 흡인력이 부여된다. 고통 속에서도 내뱉는 이들의 음성에는 절망을 뛰어 넘으려는 강렬한 빛이 내재되어 있다. 그들의 외침은 다름 아닌 주기도문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헉! 헉!.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헉! 헉!, 나라에 임하옵시며 헉! 헉!,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헉! 헉! 헉! 헉!.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헉! 헉!.........“ 사력을 다해 외치는 주기도문, 절규와 고뇌, 황량함 속에서도 참 희망의 빛을 일깨우는 배우들의 농밀한 육체 언어에 관객은 뭉클함을 주체하지 못한다. <아일랜드>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전주의 창작 소극장, 그로토우스키의 가난한 연극 세계를 방불케 할만큼 무대는 헛간처럼 텅비어 초라하게 보인다. 이 텅빈 공간에서 무엇이 쏟아질가..... 도뎅체 어떤 연극적 향기가 이 초라한 공연 무대에서 풍겨 나올까..... 이런 의구심, 이런 무책임한 인상은 공연의 시작과 더불어 일시에 무너진다. 무대를 넓고 깊게 그리고 다양하게 활용할 줄 아는 이호중의 무대 구조물이 상호 앙상블을 이루어 빚어내는 무궁무진한 연극적 아우라, 이런 심미적 효능은 무대 외형을 접한 첫 인상이나 일부 상투적 염려를 일시에 희석시켜 버린다. 쇠사슬에 매여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두 죄수의 모습이 어둠속에서 하나의 실루엣처럼 나타나다 점차 처참한 몰골을 드러낸다. 머리는 까까중이고 다리는 절뚝거리며 죄수복은 찢겨져 있다. 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거부한 채 일정한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무신경의 사물로 변용된다. 모래를 깔아 놓은 디귿자 모양의 무대 둘레를 빙빙 돌며 배우들은 무거운 돌덩어리를 품고 상호 마주치고 교차하는 동선 구성법에 따라 힘들게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죄수의 이미지를 성실하게 창출하고있다. 커다란 돌덩어리를 들어 나르는 고통, 채찍을 맞을 때의 신음소리, 그러니 이 소리는 형이하학적인 짐스으이 소리가 이니기에 더욱 감상층의 페부를 지른다. 이를 빚어내기위해 한치 오차없이 상호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의 걸출한 연희 예술, 긴장과 이완의 맛과 멋을 일깨우는 것으로 이 작품의 최대 덕목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절망의 무대, 어둠의 무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은 가벼움과 즐거움이 재치 있게 교차된다. 안티고네 극중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죄수간에 빚어지는 재미있는 해프닝, 넉살과 입담좋은 각종 짓거리가 희극성을 발함으로써 관객은 무거운 긴장감에서 폭소를 터트리며 해방감을 맛본다. 존의 형기가 3개월로 감형되자 환호의 함성도 잠깐, 존과 윈스톤 간의 미묘한 갈등과 긴장감이 감돈다. 아, 저 친구, 나가자 마자, 마누라 엉덩이를 두들기고 친구들과 술잔을 들며 즐기고 있을 테지.... 그런데, 난 평생 이 절망의 섬에 갇혀 강제 사역에 시달리는 운명이란 말인가....‘ 존, 너의 자유는 썩어버린 자유란 말이야, 네가 즐기려는 것은 진정 참 자유가 아니란 말이야......’그러나 막판에 벌이는 극중극 <안티고네>를 통해 이들은 참 자유의 의미를 깨닫고 서로를 이해한다. 존과윈스톤이 절규하듯 내뱉는 주기도문, 실존을 잃지 않으려는 죄수들의 마지막 몸부림과 더불어 공연은 끝을 맺는다. 무대 뒷 구조물을 다양한 이미지로 변용시키는데 한 몫했던 심미적 조명 누사방식, 그 틈새를 마치 죄수들의 감방 통로로 활용한 재치있는 무대구성법, 적재 적소에 터져나오는 음향, 이와 앙상블을 이룬 배우들의 표정 연기, 무형적인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데에 일조했던 침묵과 절규의 교차, 특극과 극중극의 양 틈새에도 불구하고 이두 영역에서 골고루 양면적인 효능을 발휘한 소품(담요 및 기타 구조물)의 상징적 활용법, 이는 오랜 기간 절취부심하여 치밀하한 소극장 실험과 탐색을 거친 결과 이루어 낸 양질의 연극 메소드이다. 크레온의 독재, 매너리즘에 함몰된 부패해 버린 일상의 방종 의식, 이를 강하게 질타 하는 존(안세형 분)의 날카로운 음색, 눈빛, 언어 그리고 객석을 압도할 정도의 다이나믹한 동선 구조와 유무형의 무대 일루젼을 일구어 간 육체 문법은 감동 창출과 더불어 교훈적인 극의 메시지를 살아나게 하는데 단단히 한 몫하고있다. 안세형의 파트너인 김준의 어눌한 음색이 흑인 죄수 존의 옹골찬 이미지, 고집 세고 삐치기 좋아하는 부족한 인간형을 만들어감으로써 이 두 배우의 충돌과 만남은 전체적으로 원만한 대조의 연극성을 살리는데에 기여한 바 크다. 이 공연으느 특히 관객을 극중극의 인물 안티고네의 파트너로 자연스럽게 설정함으로써 소극장 무대는 단순한 남아프리카의 흑백 문제나 죄수들의 자유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문제의 핵심을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자유와 실존의 문제로 확대시켜나가는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공연장 문을 열고 나가는 관객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왜 ? 아, 난 저들이 당하는 육체의 질고와 채찍 소리, 살아있는 자유를 향한 저 신음 소리 하나 하나를 난 듣고 있는가? 이제부터라도, 참 자유를 갈망하는 소리, 참 실존을 추구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 언어, 그 언어를 들을 채비를 갖출 수는 없을까? 이런 성찰의 과정이 진정 사유의 생산성을 얻어냈다는 점에서 이 공연의 심미적 파장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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