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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 | [특집]
문학의 해 특별대담 문학의 예술성과 사회성 대담 : 김교선 문학평론가
정철성 문화저널 편집위원 (2004-02-10 14:50:15)
정: 선생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한녕하십니까? 김: 자리에 앉으시지요. 내가 요새 감기가 들어 조금 고생을 했어요. 나이가 드니까 조금만 무리를 해도 탈이 납니다. 정: 오늘 선생님을 찾아뵌 것은 문학을 사랑하는 ■문화저널■의 독자들에게 선생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요즈음에는 어떤 책을 읽으십니까? 김: 거의 읽지를 못해요. 최근에 젊은 사람들이 쓴 소설 중에서는, 이병천이 쓴 ■모래내모래톱■이라고 작품집이 있지요. 그건 다 읽었습니다. ■마지막 조선검■도 보았는데 좀 통속적인 면도 있고 ■모래내■가 더 낫더군요. 그전에는 ■혼불■이라고 최명희가 쓴 두권짜리 소설을 읽었습니다. 글이 좋고 구성도 좋아요. 어쩌다 너무 자잘한테 빠지기는 하지만. 무슨 음식 얘기가 나오면 지나치게 늘어진단 말이예요. ■춘향가■같은 데서도 그런 대목이 나오지만 소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정: 기법의 문제는 취향에 따라 관점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60년대에 문단에 나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문학 역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주로 호라동하시던 6.70년대와 지금의 문학적 풍토를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김: 나는 조금 늦게 문단에 나갔어요 그런데 문단이라는 것이 ‘사교’를 해야 하는 곳이란 말이예요. 내가 그걸 못하거든. 70년대 무렵만 해도 ■현대문학■이나 ■창작과비평■, ■문학과 지성■은 양심적이었습니다. 인선문제도 그렇고. 그런데 당시의 몇권 나오다가 사라진 어떤 잡지들은 원고료도 처음 쓰는 사람들에게는 안주고 그랬지요. 내가 종합잡지 등은 관계를 안해서 잘 모르는데, 내 교제 범위가 아주 좁았어요. 내가 또 몸이 약해서 원거리 여행을 못합니다. 그러다 서울하고도 관계를 끊고 말았지요. 그래서 주로 내가 보았다기보다 들은 얘기인데 잡지들이 장삿속으로 놀아서 신인들에게는 책을 떠맡기기도 한다고 합니다. 정: 문단활동이 아니라 문학활동을 원하는 젊은 작가들은 기성문단을 거치지 않고 활동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신춘문예나 문학지의 추천을 거치지 않고 직접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지요. 문단의 이면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여기서 자세히 논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방향을 돌려서 선생님께서 기억하시는 선배 문인들의 말씀을 좀 들려주시지요. 김: 나는 문단 사람들하고 과히 접촉이 없었어요. 사실은 내가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예요. 일정때는 한국사람이 대학교수가 될 수도 없었고, 그래서 문단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요. 그런데 고창에서 교장을 하다가 대학으로 옮겼어요. 남들은 말렸습니다. 성격이 그러니까 서울 사람들 술사먹인 적도 찾아간 적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상당히 늦게 문단에 나갔어요. ■이상론■도 발표는 그때 했지만 10년 전에 쓴 것입니다. 나는 ■현대문학■에 조연현 씨, ■창작과 비평■에 백낙청 씨 염무옹씨 그 정도밖에 몰라요 이쪽에서는 가람 선생이 전북대학교에 계셨고, 석정 씨, 김해강 선생, 백양촌 씨, 이런분들이 그때 있었지요. 그리고 서정주 씨는 전주에 피난을 왔어요. 같은 학교에 있어서 알지요. 석정 선생하고는 깊히 사귈 기회가 없었고, 해강 선생은 한 번 만나 뵈었더니 참 천진난만하고 자연스럽고 소탈하고 그래서 호감이 갔는데 생활에서 접촉이 없으니까 자세히 알수가 없었고. 정: 가람, 석정 두분은 전북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정신이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되 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석정 시인의 작업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산의 서곡■은 석정의 초기시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더 깊이있는 시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전북출신 작가들에게서 어떤 공통적인 특징이랄까 공감대 같은 것을 찾아본다면 지역성이라는 각도에서 전북 문학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데 선생님께서는 어쩧게 생각하십니까? 김: 글쎄요. 전북문학의 특징을 살리자고도 하고 그러는데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를 기다려야지 별 도리가 없다고 보는데요. 결국은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고 현실적인 것이 중요합니다. 전북의 특징이 이런 것이다, 이렇게 하면 특징을 살린다는 것은 이론이지요. 창작에 막연한 참고는 되겠지만 그 이상은 아니지요. 소설의 작가는 우선 인간을, 인간존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되지요 그러면 그 출발이 대상에 대해서 성실하고 정밀한 관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자신부터 관찰해야 하지요. 자기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성찰하는 성실성을 가지고 주변의 타자도 그렇고 바라보고 나아가서 인간 사회도 바라보고 그렇게 함으로써 작품을 쓰자는 것이지요. 전라북도 사람들이 쓰다 보면 전라북도의 특징도 나오겠지요. 언어단위가 다르면, 예를 들어 불란서, 일본 이러면 민족도 다르고 생활양식도 다르니까 불란서 문학, 일본 문학이 가능하겠지만 한국문학에서 지방별로 세분할 수는 없지요. 그러다 보면 전주 문학이 있고 이리 문학이 있고 이렇게 됩니까?(웃음) 정: 선생님께서 읽으신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거나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을 들 수 있겠습니까? 김: 요새는 거의 읽지 않으니까. 게다가 노쇠해서 감수성이 둔해져서 역시 20대가 제일 좋습니다. 이론을 몰라도 좋아요. 문학은 학문과는 달라서 이론으로 아는 것이 아니거든요. 20대에 좋구나 한 작품은 지금도 좋아요. 중학교 때 읽은 ■감자■는 지금 읽어도 좋아요. 김동인의 작품 가운데서도수작이지요. 학생들에게도 지금이 감수성이 가장 예민할 때니까. 그때에 읽고 감격한 작품은 좋은 작품이다, 그렇게 일단 믿어라, 비평가들이 하는 말에 좌우되지 말고,이렇게 말했습니다. 문학이 직업이 되면 어떤 의미에서 문학을 더 모르는 수도있어요. 물론 순전히 인상비평이 되어버릴 수도 있지만. 내가 젊었을 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든가 그때에는 일본말 번역으로 읽었지. 지금 생각하면 알고 있었나? 세기말적인 분위기에 취해서 자기 안에 라스꼬리니꼬프 같은 것이 있다고 착각을 한 것이지요. 세익스피어의 ■햄릿■도 그렇고. 그때는 러시아 문학이 유행이었어요. 우울한 분위기가 인식으로서가 아니라 기분으로 왔던 것 같아요. 정:선생님께서는 주로 산문에 관심을 기울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작품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김: 나는 그래요. 시는 처음에 좀 해 보았지만 버린지가 오래도 주로 산문을 , 소설평을 썼어요. 그러니 자연히 소설에 대한 얘기가 되겠지요. 내가 자라온 시대, 내 개인적인 취향이 관련되겠지만, 역시 넓게 말하면 리얼리즘 문학이 되겠지요. 젊었을대는 사회성에 대한 관심이 적었어요. 리얼리즘의 형성에 대해서도 그것이 플로베르적인 것이든지 모파상적인 것이든지 혹은 고리끼적인 것이 됐던지 그것은 나에게는 가치평가의 기준이 되지 않았어요. 늙어가면서 사회라는 문제에 무게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 작가들처럼 전적으로 사회성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고. 우선 의사라면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이 우선이지요. 사상을 찾기보다 고려하는 것은 아니고. 우선 의사라면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사상을 찾기보다 소설가는 소설을 제대로 써야 하지요. 가령 인간을 그린다면 인간을 리얼하게 그려야 하지요. 인간의심리를 예리하게 파악해야 하지요 그걸 못하고 관념만 앞세운다던지 그건 나도 지금도 인정을 안해요. 그런 능력을 가진 다음에 올바른 사회관이라든지 역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요새는 내가 그쪽으로 점점 기울어지고 있어요. 간단히 말하면 넓은 의미에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지금은 사회성에 상당히 관심을 두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화에 관심도 가지면 좋지 않으냐,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연애소설이나 읽고 있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요. 한편으로는나이가 들어 상상력이 고갈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듭니다. 상상력이 고갈되면 매달릴 다른 것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사회사상과 관련이 있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하지만 내 개인적인 문제이지요. 사회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올바른 일이라고 봅니다. 정: 리얼리즘은 7.80년대 이후 한국의 문학을 받쳐온 큰 기둥이었습니다. 리얼리즘에 대해서는 용어의 정의로부터 시작하여 적용범위와 효용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포폄이 있었지만 저는 아직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더 천착해야 할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재현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세계관 자체의 성립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쟁기가 나쁘다고 농사를 포기할 수야 없지요. 저는 리얼리즘이 단순한 모사나 세계관의 직접 투사가 아니라 언어와 세계관의 갈등을 포괄하는 작업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언어의 구사는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 그렇지요. 사회성도 소설에 예술성이 있어야 효과가 있지요. 솔직히 말하면 고리끼의 ■어머니■도 읽어보니까 별로 재미가 없데요. ■어머니■가 참으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는 의심스럽습니다. 결국은 소설에 리얼리티가 있어야 효과가 있지요. 정: ■어머니■에 나타난 리얼리즘에 대해서는 저도 선생님의 말씀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제가 번역으로 읽었고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섣부르게 말씀드릴 처지는 아니지만, 혁명 직전 러시아의 인간상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해도 작품으로서의 ■어머니■에는 한국의 독자에게 낯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독서대중은 ■어머니■를 읽을 뿐아니라 여전히 시와 소설의 충실한 독자이기도 합니다. 본격과 통속의 구분을 부정하는 경향도 있지만 본격 문학의 범주에 드는 시집과 소설이 한국에서는 베스트 셀러에 끼기도 합니다. 이것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현상이지요. 이른바 멀티미디어의 시대에도 한국의 독자는 문학을 즐기는 후원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올해를 ‘문학의 해’로 정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기간을 정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름대로의의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닐텐데 선생님께서 느끼시는 점은 어떻습니까? 김: 정부가 투자를 해서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이, 문학의 해라는 것이 우선적으로는 유쾌하게 다가오지 않아요. 그 누구야 도스토예프스키가 편안하게 글을 썼느냐, 그러면 뚜르게네프가 더 좋은 작품을 썼겠다, 톨스토이는 검열이 없어서 자유롭게 쓸때 살았느냐 이렇게 쏘아주고 싶단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원래 좋은 작품을 쓴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같은 훌륭한 작가는 날 때부터 예술가로서의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습니다. 순전히 노력만으로 예술이 가능한 것이 아니고, 이점에서 학자하고도 다르게 나는 생각하거든요. 예술가는 천품을 타고나야지, 물론 노력해야 하지만 단순히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 보통사람들은 시간 여유도 있고 안심하고 쓸 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이 있다고 금방 좋은 작품이 될까요? 특별히 재능이 있는 작가가 아니라 보통 작가들이라면 여건이 좋을 때 좀더 나은 작품을 쓸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 못하면 좌절하기도 하고 그러겠지요. 하지만 정부나 실업가들이 돕겠다고 나서는 것이 나쁠 거야 없겠지요. 요새 문학상 같은 것도 그래요. 전북만 해도 문학상 수가 상당히 많지요. 문학상이라는게 돈만 주는 것도 아니고 희소가치가 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요새는 상각이 달라져서, 저기 대학 교수들이 논문늘 내서 연구비를 받지요. 공부도 공부지만 생활보조도 되고 그러지요. 그런 걸 생각할적에 글쓰는 사람들이 20년, 30년 문학을 하다가 한 번씩 받는 것이 많다고 해도 나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창작 보조금 정도로 생각하면 좋지 않으냐 그런 생각도 들고 그러대요. 있는 사람들 눈에야 별것 아니겠지만. 그것도 잘 타는 사람은 재주가 좋아서 자주 타고 그럽디다.내가 심사해도 나가고 그러는데 요즘은 자기가 못 받았다고 항의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주시오 하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는 형편입니다. 정: 문학의 생산자라고 할 수 있는 작가쪽에서 보면 문학의 해가 자신의 창작활동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학행위를 넓은 의미로 파악하여 독서를 포함시킬 경우에 이런 전국적인 행사가 독자에게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ㅅ브니다. 그저 시가 좋아서 소설이 좋아서 읽는 독자도 있지만, 비평적인 안목을 가지고 작가의 창작에 영향을 끼칠수 있을 정도의 수준있는 독자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 속에서 배양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문학의 해를 엮어나가는 방법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우리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는 통일의 문제에 대해 한마디만 더 말씀을 듣기로 했습니다. 통일은 선생님게 남다른 관심의 대상일 거라고 짐작이 됩니다만 문학이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요? 김: 전주에도 통일지향문학을 하려는 분들도 있지요. 나는 찬성이예요. 아까 사회적인 문제에 접근한다고 했는데 그게 곧 문학 자체는 아니지만 문학의 나아가야 할 사명의 하나가 아니겠엉. 우리나라가 해야할 중요한 문제이고 기본적인 문제이니까 문학을 하는 사람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찬성이지요. 구체적으로는 언어문제도 있고 이질적인 사고의 문제도 있지요. 우선 작가는 제 구실을 할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사명감을 발휘하던지 그래야겠지요. 정 : 오랜 시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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