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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 | [문화와사람]
작품과 나 내가 그린 강변 이야기
글/송만규 화가 (2004-02-10 14:11:46)
이른 아침 정읍떡네 방문을 열어제끼니 앞산 중턱에, 진하고 옅은 구름들이 말없이 자유롭게 가벼운 몸짓을 내보이며 장구목 마을 쪽으로 꼬리를 감춘다. 공기는 이른 봄날의 새벽이라 아직은 차가웁지만 콧구멍에 드나드는 바람은 거리낌없이 맑음, 청량함 그 자체로 나를 밖으로 유인한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정읍떡의 자그마한 집에서 굴러 내려가 강변 바윗돌에 올라섰다. 좁은 뚝길가 풀섶엔 밤새 내린 이슬방울들이 아직 햇볕의 침입을 받지 않은 때라 바지끝에랑 신발이랑 흠뻑 적셨다. 물안개가 강줄기를 따라 얌전히 피어오른다. 그 사이로아스라이 보이는 미루나무 숲의 삐져나온 잔가지들이 산중턱에서 쉬고 있는 구름에 손을 내민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이름 모를 얌체 같은 새 두 마리가 그 사이로 파고들어 참견한다. 나는 이네들이 노는 것에 넋이 빠져 쳐다보기만 하다가 바보가 된채, 소매를 걷어올리고 강물에 손을 담궜다간 얼굴에 몇 번 찍어 바르고는 당산나무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예전에는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풍장 굿도 치고 음식도 마련해서 당산제를 지냈다는 것인데 지금은 그렇게 할 사람도 없다. 내가 지난 정월 열나흗날 이 마을에 왔을 때, 어스름한 밤에 당산 나무 앞에 웬 불빛이 보이기에 뭐하는건가 하고는 쳐다봤더니만 늙은 부부 둘이서 짚불을 피워 놓고 음식 가지 차려 놓고 제를 올리면서 이 마을을 지켜달라고 간절히 빌고 있었다. 현재 이 마을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열두어 집 되는데 모두가 노인네들 인데다가 남자(할아버지)가 있는 집은 여섯 집이고 나머지는 할아버지 혼자 사는집들이다. 여기저기엔 황폐한 마을 회관이랑 휑덩그레한 빈집들이 흩어져 있어 을씨년스러움을 더하기는 하지만, EKDT한 나무 오른편쪽으로 돌아서면 순창군과 진메마을로 가는 숨결을 살아 있는 오솔길이 나온다. 좌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구비치는 푸르른 강물 위로 갈색조와 푸른색조의 주변 산들이 아른거리며 물안개 속에서 입맞ㅊ움을 하고 있다. 다시 정면의 아래에서부터 위로 쫙 훑어 보면 우리네 아버지들이 강물떠 마시며, 미루나무 잘라 내고, 박힌 돌을 빼어 내고 하면서, 일구어 낸 논빼미들이 저산밑 깊숙이까지 자리하고 있는 아기자기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새벽에 논빼미 사이로 가느다랗게 흐르는 물줄기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들어보면, 그 소리가 막 돌 지난 머슴애가 빈깡통 받쳐들고 쉬아(!)하는 양 깜찍스럽기도 하고, 봄을 만들어 내는 뿌듯함과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신선함을 갖게도 한다. 이렇게 조용조용 다강ㄴ 물줄기는 불쑥 낯 내놓기를 원하지 않으며 자기가 품고 있는 젖과 꿀로 잉태한 산뜻한 풀잎과 안개로 얼굴을 대신한다. 이 물줄기 너머에서 농사짓는 박영감은 어제도 해 저물어 어둑어둑 해져서야, 강물에 삽을 씻고 발도 휘휘 두어 번 젖고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더니만, 어느새 논바닥에서 소 부리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이산저산 층층이 쌓여 있는 논배미들을 깨우고 새벽을 알린다. 강물도, 풀잎도, 안개도, 박영감도 왜 여기 사느냐고 물음도 답도 하지 않는다. 누렁소는 어깨에 동여맨 쟁기를 힘있게 당기며 앞으로만 내뺀다. 박영감과 함께..... 정읍떡이 날 불러댔았는다. 아침밥 먹으라는 걸 게다. 지난해 비봉면에 작업실을 마련하고오가면서 가슴 후련함을 자주 맛보았다. 비가 오면 오느대로 개이면 개인대로, 동틀 무렵이면, 해질 무렵이면, 눈이 오면 그대로 제맛들을 아낌없이 나에게 모조리 바치니까. 오늘은 작읍을 마치고 해가 서편에 기울쯤에 5km가량 떨어진 천호성지에 들렀다. 천호산 중턱에 자리한 이곳에는 이러저러한 시설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은 커다랗게 세워진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그곳은 수많은 돌계단을 디디고 올라가야 하는데 겨우 몇계단 올라서서는 숨소리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계단 옆쪽에는 소나무들이 버티어 주고 있고 맨 위쪽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산말랭이에 옷벗고 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붉은 햇살이 퍼졌다가 하얀 십자가 끝에 한 점의 빛으로 모아지는 엄숙한 광경이 펼쳐지고 그 아랫단에 무덤들이 둥글둥글 누워있다. 순교자 베드로 등등, 그 옆 무덤엔 이름이 적혀있지 않다. 여덟곳인가 ELH는 듯 싶다. 이름 없는 순교자들인 것이다. 가슴이 술렁거린다. 올라왔던 계단과 산 아래쪽까지 쳐다봐진다. 한국의 작은 예수들이리라.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 피흘렸다면 이들은천호 언덕에 뼈를 묻은 것이다. 저 대형 십자가를 누가 세웠다고? 그야 뻔한거지 뭐! 이들은 본래부터 바깥 세상에 이름없이 지낸 이들일 게다. 박해자들을 피해 산골짜기에서 옹기그릇을 굽고 행상을 해 가며 생계도 연명하고 복음서를 골마리에 숨겨 다니며 전도 활동을 필사적으로 실천해 낸 목자들이다.여러 상념이 교차하는 중에 어둠이 엄습해온다. 그들이 걸어왔을 이길을 한 계단씩 내려 밟는다. 한 종교를 지켜 낸 거룩한 자의 발자취를 느끼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러나 아름답고 고귀하게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듯이 내려밟는다. 역사의 창조자들은 결코 화려하지도 시끌벅적 요란스럽지도 않다. 천호산 아래 말없이 누워 있는 자들이나, 강변 마을의 정읍떡이나, 쟁기질하고 있는 박영감,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정읍떡네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가을 농사 마치거들랑 아들네가 사는 서울로 이사를 갈까 보다라고 했는데 혹시 떠나버린것이나 아닌지. 내가 그린 강변의 이야기들은 이이가 반이상은 그렸을 게다. 그의 말이 그림이 되고 질도 그림이 되고, 곧 그의 삶이 그림이니 그와 함께 하면 그림이 -그것도 살아있고 따스한 그림이 될 수밖에...... 불지펴 구들장 덮여 주고 매운탕에 매화주 챙겨 주던 정읍떡! 내일은 직접 한번 가 봐야겠다. 송만규/55년 완주생. 원광대를 졸업하고 93년 개인전을 가진 이후 지난해 12월 오랜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80년대 전북 민중미술을 선두에 서서 이끌어왔고 주고 민중과 역사에 관한 그림을 그려왔다. 95년말의 전시에서는 사람들의 일상과 풍경을 그렸다. 지금은 전북민족미술인협의회 대표를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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