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 | [문화저널]
이현배의 옹기 이야기
옹기쟁이의 궁색한 변명
이현배(2004-02-10 14:11:01)
중학생 때였습니다. 친구와 도둑질을 하다 잡혀 반성문을 쓰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서든 그 반성문으로 주인양반을 감동시켜 체벌을 면해야했기에 그럴사하게 썼지요.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데 이 시점에서 안잡혔다면 큰 도둑이 되었을 껍니다’ 하는 내용으로 스스로 생각해도 잘 쓴 반성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글솜씨를 대견해하면서 가보니까 저 스스로 도둑인걸 인정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제가 도둑인것을. 그래 깜짝 놀랬지요. 그전까지만 해도 어려서부터 도둑질을 곧잘 해왔지만 스스로는 도둑이라고는 생각을 안했으니까요. 글이 저 자신을 알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자꾸 쓰다보니 글을 통해서 저 자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글의 속성이 그런지 저 자신은 맨날 그대로인데 글이 저만치 앞서있는 거에요. 그래 글쓰기를 작파해 버렸드랬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흙으로 하는 일을 시작한 거랍니다. 어려서 양지바른 곳에 혼자앉아 사금피리 같ㅇ느 걸로 땅에다 글씨를 쓰구서는 흙으로 묻어 찾아내는 놀이를 잘해드랬습니다. 더욱이 도둑질하고나서 적당한 긴장감에서 오는 짜릿함과 그게 소멸되면서 갖게되는 공허함 같은 게 있어서 진로선택을 해야할 때면 꼭 그 놀이가 생각나 방향제시를 해주었습니다.
사금파리로 땅을 파며 쓰는 것은 볼펜으로 쓰는 것처럼 미끄러지지 않고 붓글씨처럼 고도의 수련 끝에 가능한 것도 아니어서 꼭 나만큼, 쓰는 사람의 의지대로 쓰여지니 저처럼 서툴고 부족한 사람에게 알맞은 일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흙과 땅과 사람의 관계가 옹기와 무진장과 이현배로 형성된 것입니다.
이 지면을 통해 ‘옹기쟁이 이현배입니다’ 해놓구서 그릇을 안 내놓고 글을 내놓자니 사실 쑥스럽습니다만 저에게 글이란 것은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입니다. 또 옹기쟁이한테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은 그릇을 어떻게 만드느냐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글쓰는 옹기쟁이의 궁색한 변명이기도 하고, 앞으로 무엇이 쓰여질 것인가의 얘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