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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 | [문화저널]
여성과 문화 광고의 나라, ‘죽어가는 신화’ 살리기?
글/여성문학연구 모임 (2004-02-10 14:04:22)
광고는 요리와 같다. 보고 현혹되고 소비하면 공허한 것. 그러나 광고는 요리와는다르다. 광고는 의식을 변화시키고 일상의 삶을 바꾸게 한다. 자본주의의 총아인 광고는 새로운 문화유형을 생산하고 관리한다. 상품선전이라는 애초의목적은 뒷전에 은폐되고 그것 자체가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형식을 재생산하는담론 구조로 정착되고 있다. 보다 단순했던 시대의 광고는 3천년 전 도망간 노예를 찾는 내용의 파피루스에 쓰여진 것에서부터 폼페이 유적지에서 발견된 격투장 관람 안내, 로마 원형극장의 기둥에 붙어 있는 전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고를 좀더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원시시대의동국벽화나 여타의흥미로운 것들도 광고 현상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대의 광고들은 사실적이며 특별하며 직접적이었다. 이미지도 없었고 상품의 리얼한 선전만 있었다. 그리고 일상적인 가정용품은 거의 광고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활이 단순하고 영역이 좁았기에 사람들이 어린 것을 구입하는 곳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문명사회는 대량생산이라는 특징을 띠게 되면서 광고는 새로운 현실 상황을 직접적으로받아들여 문화의 한 전망을 세우게 된다. 그리하여 광고는상품 생산 및 유통의 순환에 필수물이 되었다. 광고는 상품의 사회적 생산이 개인적 소비로 이어지게 하는 상품의 운동을 유지시키며 자본의 재생산까지 보장한다. 또한 광고는 그 자체의 상품을 생산해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무한한 욕구에 불안하고 무료한 대중, 소비자들이다. 광고는 그러한 상품, 소비자를 개인적 성취로는 달성될 수 없는 욕구를 가지도록 극단적인 방향으로 그들을 이끈다. 그리고 그 개인들의 태도, 가치, 생활, 관습, 습관을 변화시킨다. 현실 아닌 현실을 자신의 개인적 현실로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 시뮬레이션 과정들은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광고는 생산과정과 생산의 주체를 은폐시키고 이 땅 위에서 소비하는사람과 상품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 양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또한 상품 구매에 드는 비용을 버는 과정은 사라지고 상품의 이미지만 남아 소비주의와 사치풍조의 확대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또한 광고는 계급을 특정 상품의 소비를 통하여 성취되는 것으로 가늠하게 한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대중들이 따라 갈 수 없을 정도로 극도로 앞서가고 있다. 광고는 이러한 기술적 요소들, 예술적 요소들을 아울러서 탁월한 미적 효과를 표현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대중들, 우리들의생활을 뒤돌아보게 한다. 즉, 소비자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자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재구조화하여 좀더 그럴 듯하게 비현실을 현실화 한다. 광고는 대중을 불안하게 한다. 특히 여성들을 불안하게 한다. 광고 속의 아름다운 여성이 우아하게 앉아서 모차르트를 들으며 진주 목걸이를 만지작 거릴때 ,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일반 여성들은 자신이 입고 있는옷을 , 앉아 있는 공간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식기 세척기와 동양매직 쉐프 가스오븐레인지의 어여쁜 미시족들을 보면서 그런 것들을 구입하지 못하는 자신이 가엾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현란한 현실의 두시골목에 앉아 있는듯한 조심스런 기분이 든다. 광고는 이처럼 특히여성들에게 위기의식을 주면서 점차 자신의 현상을 비현실화시키고, 허구적인 욕구를 상승곡선에 얹어 놓는다. 순간적이고 과거가 없고 미래도 없고, 소비자들의 의식 속에서 변형될 수도 없는 그 형태는 다른 모든 현실의 형태들보다 우세하다. 그래서 대중들은 광고의 나라에서, CF모델처럼 생활은 우아하고 세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은 점더 일그러지고 지저분할 뿐이다. 현대의 광고 속의 여성, 현실의 여성 광고를 경제학적 외부에서 살펴본다면, 광고는 대중들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런걸 사용하면 생활이, 자신이 이렇게 달라집니다’할 뿐이다. 얼버무려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화장품 광고에서는 여성들에게 이 화장품을 쓰면 남성의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속삭이고, ANT 남성들이 자신이 지나간 자리에 멍하니 서있게 될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광고는 여성다움을 강조하면서, 마치 여성은 그럴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키면서 남성이나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여성다운 속성을 상품을 사용함으로써 얻게 된다고 강조한다. 광고에서 여성이란, 상품에 의해서만 여성다워질 수 있고, 광고 속에서 여성이란, 그녀들을 장식해주는 소품들, 상품에 불과하다. 향수, 립스틱,거들 등이 바로 여성이다. 상품과 여성이 교환되어 여성이 상품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그것은 여성이 좀더 노력하는 존재로 되기보다는 그 상품을 상ㅇ해야 비로소 여성다운 여성이 도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다운 여성이란 다름아닌 가부장제 속에서 길들여진 가사, 육아 노동의 당사자, 남성을 유혹하거나 아름다워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존재이다. 이 두 가지 함정은 훌륭하게(?)결합되어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를 긍정적으로 온존시키면서, 여성을 또한 상품을 소비하는 임무만을 가진 존재로 부각시킨다. 이것은 여성다움의 ‘이데올로기’이다. 고정적 여성의 이미지다. 실제 여성은 그 이데올로기에 제대로 맞춰지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 여성들은, 대중들은 광고를 이해하려 할 때 혼란하고불안하다. 광고속의 여성은왜곡되어고정화되고, 일반적인 상품으로 변화된다. 근래의광고 속에서 가장 부각되는 여성상은, 성적인 아름다움이 강조된 여성, 자기 주장이 강한 여성 - 남성적인 힘이 가미된 - 상들이다.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여성은 다시 그녀들의화장품과 속옷에 의해 표현된다. 그리고 하늘거리는 흰색 원피스, 넓고 푸른 초원, 빨간 포도주의 글라스가 에로틱한 나르시시즘, 성적 욕망을 보이지만 성과는 아무 관련없이 표현한다. 그리고 자립적이고 공격적인 여성이란, 긍정적으로는 남자를 유혹하는데 적극적인여성일 뿐이다. 프로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여성이 남성에게 주목받고, 자기 주장과 개성이 뚜렷한 여성에게 남성의 눈길이 다가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에게 주목받지 않더라도 광고 속의 여성은 충분히 자기도취적이다. 자신의 어깨를, 팔을 자기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스스로 만족하고‘예쁘기만 하네 뭐!’하면서 자랑스러워 한다. 그리고 광고는 사회적인 성의 차별을 그대로 고답하고 있다. 여성들은 그 속에서 진짜 피와 세포가 있는 생물적인 존재도 아니고 원시인에서 진화된 인간도 아니다. 상품으로서, 이데올로기로서, 남성에게 종속된 남근 숭배자, 시혜받는 존재일 뿐이다. 리얼리즘의 형이상학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까? 광고에서 성은 그 자체가 소비의대상이다. 그리고 전체적인 성(SEX)을 해체시키고 성관계의 진실을 퇴락시킨다. 또한 광고 속에서페미니즘은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고, 상품으로 곱게 대접받는다.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작게는 광고 속에서 자유로운 사상과 인간은 아무 것도 없다. 왜곡되지 않고 광고의 시뮬레이션에 게임이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인간은, 광고 밖에서 ‘죽어가는 신화’이다. 그렇다면 이 ‘죽어가는 신화’를 살리자고 외치는 것은 너무 무모하고 대담한 발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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