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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 | [문화저널]
다시금 역사란 무엇인가
글/박명규 서울대 교수 사회학 (2004-02-10 12:36:38)
1.카(E.H.Carr)의 유명한 책 [역사란 무엇인가]가 대학인의 필독서로 꼽힌 지는 꽤 오래 되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부터 이 책은 늘 읽어야 할 책의 앞머리를 차지하였고 그 바람에 유신정권하에서는 이 책자체가 금지서적에 포함된 적도 있었다. 이 책은 대학신입생이 처음으로 손에 주리 정도로 만만한 책은 결코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읽으면 정말 ‘역사가 무엇인지’ 다 알 수 있을 것같은 기대를 갖곤 했다. 읽으면서도 그 말뜻을 잘 몰라 지적인 낭패감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애써 그러한 내심을 감추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카의 명제를 다 이해한양 부르짖곤 했던 것이다. 작년 핸 해 동안을 돌이켜 보면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가 떠오르면서도 ‘역사’의 의미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토록 새삼스럽게 부각된 적도 없었을 성싶다. 아마도 해방 직후 ‘민좃’의 이름이 그처럼 아름답고 신성하게보였을 그때에도 ‘역사’에 대한 외경의 마음이 충일했을 것이다. 그때에 비하기는 어렵겠지만 도무지 불가능해 보였던 지나간 날의 부끄러움, 오욕의 구조가 일부나마 드러나고 그것을 제거하는 일에 착수하였을 때, 그리고 그것이 ‘역사’의 이름으로 자장될 때 그 무게와 권위가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보았던 것이다.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가 무엇이길래 그 서슬 퍼렇던 5.6공의 세력들이 정치적.사범적 단죄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 역사의 왜곡이란 무엇이며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것은 사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바로 잡는다면 누가, 어떤 방식으로 바로 잡는 것인가? 옳게 펴진 역사란 어떤 역사인가? 꼬리를 물고 물음은 이어진다. 그러나 이 물음이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것은 그만큼 구체적인 현실 상황 및 과제들과 연결되어 있는물음이었기 때문이었다. 2. 과거의 한국인들에게 역사라는 말은 현실적 삶의 현장에서 상당한 무게와 의미를 지닌 말로 받아들여졌던 것같다. 최고의 권력자인 국왕조차도 자신의 역사적으로 평가된다는 점을 늘 의식해야 했고 지식은들은 언제나 ‘청사’에 자기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을 소중히 여겼다. 지나간 역사로부터의 경험과 교훈이 선비된 자의 사상과 행동을 규제하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역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일반 민중들에게도 역사라는 것이 중요하고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적인 지식과 생활양식이 크게 확산되면서부터 역사와 현실, 과거와 현재는 점점 분리되었다. 역사는 과거사에 취향을 갖고 현재에 대하여는 다소 무감각한 사람들에게 맡겨지고 대신현재는 과거사를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자들에게 맡겨졌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역사학과 현실 사회과학은 서로 깊은 간격과 대화의 부족이 심화되었다. 세계화.정보화라는 급격한 사회변화의 속도 역시 과거에 대해 이해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정신없이 바뀌어가는 세상에서 지난 옛일에 대한 관심이 뭐 그리 대단하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가는 현실이다. 작년의 논의들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모처럼 역사와 현실, 과거와 현재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생각하게 해 준 것이었고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당위와 방향성이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는 점이다. 역사에 대한 말들이 역사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인에 의해 논의되고 그 말이 쓰이는 장소 역시 고상한 학술 행사장에서가 아니라 권력의 힘겨루기가 팽팽하게 전개되는 현실정치의 장이었다는 사실은 그런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과거의 역사는 결코 과거지사가 아니며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변형되는 것이라는 사실, 현재의 정치적 결단과 집합적 행위가 곧 앞으로의 역사가 된다는 사실, 역사의 정당한 내용을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늘 깨어있는 민중적 각성과 책임이 필요하다는 사실 등을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이름이 현실정치속에서 난무할 때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역사’가 정치적으로 오용되고 남용될 때 권력 집단이 ‘역사’를 정략적으로 이용할 때 그 결과는 가공할 만한 것이 된다.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권력욕을 치장하는 논리로 ‘역사’가 활용되고 이용된 수 많은 사례들을 알고 있다. 역사에 대한 외경심과 두려움이 없이, 마치 역사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대변하는 듯한 자신감을 토로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또다시 ‘역사’가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가능성을 보는듯한 우려가 생겨나는 것이다. ‘역사’는 결코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 만능의 힘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마나’(신성한 존재)가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 현실과 당위 사이에, 정치와 도독 사이에 끊임없이 작용하는 변증법적인 관계 자체이다. 그것은 해석과 함께 실천을 동반하며 뒤를 바라다보는 눈과 함께 앞을 내다보는 눈도 동시에 요구한다. 그 때문에 본질적으로 내적 긴장과 고민을 내포하는 것이다. 3. 그 ‘다사다난’했던 1995년을 보내고 드디어 1996년을 맞는다. 늘 새해를 맞을 때마다 기도처럼 소원했다가 연말이면 공염불이 되고 말았던 말을 그래도 다시 할 수 밖에 없다. ‘올해는 정말 억울한 사건이나 사고 없이, 풍요롭고 보람된 한 해가 되었으면’. 작년 한 해 동안 우리가 ‘역사’에 빗대어 ‘현실’의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면 이 새로운 한 해에는 ‘현실’의 개혁을 통해 ‘역사’의 내용을 알므답게 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싶다. 역사적인 인식이 없는 현실정치도 불완전한 것이지만 지나간 과거사의 재해석 속에서 현실정치의 모든 과제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무책임한 것이다. 올해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개혁을 추진하는 것 못지 않게 ‘마땅히 해야할 사회적 개혁을 실천함으로써’ 정당한 역사를 써 나가는 해가 되기를 문화저널의 독자들과 함께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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