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 | [문화저널]
꽁트
역할 바꾸기
글/ 최기인 소설가
(2004-02-10 12:35:23)
ㅈ 유통의 강남 매장 장광장 창장은 요즘 매우 심기가 불편했다. 매출고가 오르지 않아 적자 사무소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이봐, 장 장장! 연말에 적자가 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알아서 해!”
본부의 영업부에서는 걸핏하면 적자를 들먹거렸다.
이유를 대라면 못댈 것도 없었다. 장소가 나쁘다. 그런데 그걸 이유로 들면 본사에서는 입도뻥긋 못하게 했다. 이런 매장은 시장처럼 소비자들과 직접 부딪히는 장소여야 하는데 주로 백화점이나 상대하는 사람들이 사는 부유층이 대다수인 동네에 자리를 잡아놓고는 무조건 실적만 나쁘다고 야단이었다.
“뭐가 어째? 뭐가 안되면 조상 탓이라더니 뛰지도 않고 이유만 대, 공동묘지에 가서 물어봐. 이유없이 죽은 귀신 하나나 있나!”
판매촉진 부장이라는 사람은 무조건 몰아붙였다. 장 장장 아니라도 장장을 하겠다고 달라붙는 사람이 많은데 그럼 자리를 내놓을 거냐고 했다. 판매촉진 부장이라는 사람은 회장이 직접 선발한 사람이요 강남 매장을 회장이 직접 정한 장소라는 소문이데 매장의 여건이 나쁘다고 하면 불경죄나 저지른 듯 야단이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군기를 잡아야 합니다.”
“여기가 군대도 아닌데 무슨 군기를 잡아요?”
“그런 말이 안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런 말이라뇨?”
“수위의 말이 손님들한테 친절하게 굴 생각은 않고 자지가 장장을 하면 이렇게는 않는다고 한답니다.”
“뭐야?”
다른 데서는 몰라도 매장에서는 가장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했던 장광장은 그런 말을 듣게 되자 열을 받게 되었다.
“안되겠어, 그렇잖아도 그 사람 근무가 형편없다고 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내가 시범을 보여줘야 겠어. 내가 내일 일일 수위를 할테니 그 사람더러 일일 장장을 해보라고 하세요.”
“좋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이도 장장보다 더 먹은 차장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장장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그게 무슨 말씀이시냐, 아무리 화가나도 참으시라며 말리고 나와야 옳다. 그런데 차장은 신입사원처럼 곧이 곧대로 대답하고 나가느 것이었다. 실제로 수위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매장이 어수선해도 얼른 수습할 줄을 모르고 남의 아이를 안고 사탕을 사준다고돌아다니다가 유괴범으로 몰린 적까지 있었다. 이런 사람을 데려다 놓고 수없이 잔소리를 했지만 ‘네, 잘알았습니다’하고 그 한마디로 그만이었다. 이번 기회에 시범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강남매장은 수위가 친절해서 다른 데 가려던 손님도 오게 만들었다는 신화를 단 하루지만 그렇게 만들어 놓고 싶었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안 수위였다. ‘죽을 죄를 졌으니 없었던 일로 하자. 감히 수위가 일일 장장이라니 말이 되느냐.’ 이렇게 나와야 되는데 일일 명예 장장을 접수하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일일 명예 장장 명패까지 만들고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는 것이었다. 아마 사진을 찍고 뽐낼 모양이었다. 그러나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자기가 지시한 사항을 수행하지 않겠다면 몰라도 하겠다고 나서는 데야 하극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이 그렇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자기가 명령을 낼니대로 장광장 장장은 정위치에 서서 수위의 자리를 지켰다. 아니나 다를까 안정식 수위는 장장실로 들어가 온통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특히 주위에 있는 손님들을 다 불러 들였다. 주제파악이 안된 사람 같았다.
장광장은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문가에 서있다가 오는 손님마다 인사를 해 맞이하고 담당직원한테 안내해 주리라. 그리고 모르는 게 있어 물으면 막힘없이 대답해 주리라. 실무적으로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문 앞에 서 있으려니 일감이 달려들고 있었다.
“아저씨, 전화를 걸려는데 동전 좀 주세요.”아이를 안은 여자가 물었다. “네?” 말을 놓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중전화를 매장 안에 설치해 놓았으니 동전을 써야 될 것이다. 자기는 동전을 바꿔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줄까 하며 우물쭈물 하였다.
“아저씨, 먼저 여기 계시던 수위 아저씨는 어디 가셨어요? 동전도 미리 빌려주시고 또 아이도 안아주시고 했는데요,”아이를 안은 여자가 힘겹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은행에서 설치한 이 현금 인출기는 송금도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카드를 넣었다가 기계가 먹어버리고 사용을 못한 적도 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 기계의 성능을 모르는 그로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결국 자기가 대답해 줄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일일 수위를 하겠다고 자청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데 안정식이 나와 먼저 제의를 했다.
“동네에 아는 손님을 전화로 불러들일 심산으로, 들어앉아서 편안히 손님을 불러내려 했는데 안되겠습니다. 전화가 걸려 오는데 장장님이 아니면 한 마디도 대답해 드릴 수 있어야죠. 제 자리를 비켜주십쇼.”
“그래? 나도 수위자리가 쉬운 걸로 알았더니 쉬운 일이 아니군. 그동안 안 수위가 얼마나 수고했는지 알겠어. 오늘 일 끝난 뒤 나하고 한잔 꺾읍시다.”
“좋습니다.”
장광장 장자오가 안정식 수위는 편 손바닥을 마주쳐 기분좋게 약속을 했다.